
인공지능 시대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는 알고리즘만이 아니다. 그 알고리즘을 움직이게 하는 원천 바로 ‘데이터’가 새로운 문명의 중심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오늘날 데이터는 단순한 정보의 축적을 넘어 경제, 정치, 산업 전반을 재편하는 결정적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산업사회에서 석유가 생산과 권력의 핵심 자원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데이터는 디지털 경제의 핵심 연료로 비유된다. 실제로 데이터는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다’라는 표현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유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석유는 소비될수록 사라지는 자원이지만 데이터는 사용될수록 축적되고 확장되는 특성을 가진다. 또한 동일한 데이터라도 어떻게 결합하고 분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를 만들어낸다. 이 점에서 데이터는 단순한 ‘연료’라기보다 지속적으로 활용 가능한 ‘기반 자산’에 가깝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에는 데이터가 ‘토지’에 가깝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토지가 생산 활동의 기반이자 경제 구조를 형성하는 공간이었던 것처럼 데이터 역시 다양한 산업과 서비스가 구축되는 ‘디지털 기반’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기업과 개인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며 그 위에서 경제 활동을 확장해 나간다.
특히 플랫폼 기업들은 데이터를 단순히 수집하는 수준을 넘어 이를 통해 생태계를 구축한다. 사용자 행동 데이터는 서비스 개선과 맞춤형 추천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구조를 만든다. 이러한 순환 구조 속에서 데이터는 ‘생산 수단’이자 ‘시장 공간’으로 동시에 작동한다.
데이터의 가치가 커질수록 그 소유와 통제에 대한 문제도 함께 부각된다.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개인이 생성한 데이터는 개인의 자산인가, 아니면 이를 수집·가공한 기업의 자산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법적 논쟁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권리 구조를 재정의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또한 데이터는 경제적 자산일 뿐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자원이다. 의료, 금융,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확대되면서 데이터의 질과 접근성이 개인의 삶의 기회와 직결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데이터 격차는 곧 정보 격차를 넘어 ‘기회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가 차원에서도 데이터는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각국 정부는 데이터 주권을 강화하고 자국 내 데이터 활용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무역과 규제, 기술 표준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데이터는 더 이상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요소로 확장되고 있다.
ESG 관점에서 보더라도 데이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 방식은 개인정보 보호와 공정성이라는 ‘사회(S)’ 이슈와 깊이 연결되며,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는 ‘지배구조(G)’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는다. 또한 대규모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소비는 ‘환경(E)’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데이터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따라 정책과 산업의 방향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데이터를 단순한 자원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할 기반으로 볼 것인지는 향후 디지털 질서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결국 데이터는 석유와 같은 ‘소비되는 자원’이 아니라, 토지처럼 ‘구조를 형성하는 기반’에 가깝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더욱 근본적이다. 이 새로운 기반 위에서, 누구에게 얼마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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