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1(수)

한국ESG경영 최고위과정, 김병준 전 청와대 비서실 정책실장 기조강연으로 3기 과정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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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의 세계오지 도보순례④] 황금불탑의 나라, 미얀마의 바간왕국
황금불탑의 나라, 미얀마의 <바간 왕국> “천불천탑 황금빛 째디들이 즐비한 나라, 매일 비손을 하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그 나라의 오랜 수도였던 <랑군(양곤)>, 우리나라 대통령과 장관들이 순방을 갔다가 아웅산 폭탄 테러를 당한 나라” 바간 왕국,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는 천 불 천 탑을 쌓아 올리고 끝 간 데 모르게 국력이 번성했던 나라. 부서진 수많은 절터, 부처님, 째디, 이라와디강을 따라 덧없이 흘러온 천 년 역사, 너른 벌판에 부서진 테라와다불교의 잔해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처럼 며칠 동안을 뙤약볕 아래에서 황톳길을 헤매어도 다 볼 수 없었다. 버마라고 부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미얀마라고 이름을 바꾼 나라, 한때 국력이 강성할 때는 이웃 나라 태국을 침공하여 아유타야, 쑤코타이 왕국의 번성했던 수많은 불교 유적들을 초토화시킨 나라. 그러나 달도 차며 이울 듯,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버마전쟁에서 패배한 직후부터 동인도 회사에게 국권을 침탈당하고, 결국은 영국의 식민지로 떨어진 나라.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 제국의 침략을 받아 잠시 동안 그들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 그러다 연합국에 의해 해방되고 우리보다 약간 늦은 1948년에 독립을 쟁취한 나라. 그러나 1962년 네윈 주도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군사 정권이 수립된 나라. 미군들처럼 자기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고 사는 군인들의 나라, 어느 날 아침 국민도 모르게 깜작 쇼처럼 수도를 <네피도>로 옮겨버린 나라, 그래도 외적으로는 조용한 나라. 독립 이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명피해를 냈다는 버마족과 소수 민족 간의 그치지 않는 전쟁, 여기에 소수 민족 간에 대한 갈등으로 종교적, 민족적 충돌까지 심한 나라, 공공연히 서방이 지원하는 샨족은 나라의 반에 분포하면서 자체 군대까지 보유하여 전쟁이 그치지 않는 나라. 2010년 군부의 지원을 받은 통합단결발전당이 승리를 거두자 2011년 3월 30일 군부가 공식적으로 해산하고 권력을 넘겨주는 듯했다. 오랜 기간 가택 연금 중이던 아웅산 수치도 풀어주자 세계적으로 경제적 제재를 완화되고, 외교, 인권, 경제 부문에서 점차 국가적 위상도가 높아지는 듯도 했다. 50년 이상 군부가 집권해온 미얀마는 지난 2015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 민족동맹이 전체 의석 59%를 차지하면서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2020년 11월 8일 또 다시 치러진 총선에서도 상, 하원 모두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군부 때 제정된 헌법에 군부는 무조건 상, 하원 의석의 25%를 사전 할당받는 불합리한 조항이 있다. 또 내무, 국방, 국경경비 등 3개 치안 관련 부처 수장까지 맡는 듯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군부는 허약해진 자신들의 당을 인정할 수 없어서인지 선거부정을 주장하며, 민 아웅 흘라잉을 중심으로 2021년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막 자라나던 민주주의 싹을 무참히 군홧발로 짓밟아 버렸다. 보석류와 석유 등 자연 자원이 풍부한 나라, 메콩강 유역 나라 중 태양열 발전률이 가장 높으며, 빈부 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 천불천탑 황금빛 째디들이 즐비한 나라, 매일 비손을 하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그 나라의 오랜 수도였던 <랑군(양곤)>, 우리나라 대통령과 장관들이 순방을 갔다가 아웅산 폭탄 테러를 당한 나라. 버마 군대의 설립자로 미얀마의 국부로 여겨지지만 암살당한 아웅 산 장군, 그의 딸로 노벨 평화상을 받으며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아웅산 수치, 하지만 소수 민족인 로힝야 학살의 방관자로 지탄을 받기도 하는 그녀. 미얀마에서 가장 큰 호수로 외발 노를 저으며 동그란 그물로 고기를 잡은 모습이 특이한 <인례호수>, 해 질 무렵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렵한 전통 배들이 모습이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호반의 도시. 널린 수상 작물들. 12-13세기에 캄보디아 지역의 크메르 제국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양대 산맥을 이룰 정도로 국력이 강성했던 <바간 왕국>, 귀족들과 왕실 인사들은 앞을 다투어 수도 자체에만 1만 개가 넘는 사찰과 문화재를 만들어 내며 찬란한 테라와다 불교 문화를 이루었던 왕국, 그러나 13세기 말, 몽골군들이 지속적으로 침공해 오면서 1287년 400년 만에 무너져 버린 나라. 찬란한 불탑 아래 우리나라 3국 시대보다 더 허망하게 무너진 왕국. 이후 몽골족과 함께 들어온 샨족은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며 미얀마 북서부와 동부 지역을 장악하며 14세기 말 ’잉와 왕국‘과 ’한따와디 왕국‘이 주류를 이루며 성장한다. 미얀마 서쪽에서는 잠시 통일 왕조가 들어서는가 하더니 벵골 술탄국의 보호령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잉와 왕국이 망하고 샨족들로 구성된 한따와디 왕국이 1555년까지 미얀마 상부 대부분을 지배한다. 그 후 250여 년 동안 수많은 왕국이 난립하며 유럽에서는 대항해 시대 군함들이 아시아를 향해 떠났지만 16세기까지 혼란기가 지속된다. 여기에 대부분 국가가 다민족 국가들이라 전쟁도 벌어졌으나, 다양한 민족 간의 교류와 문화적 통일도 일어났다. 따라서 이때를 <미얀마 문화의 황금기>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문화적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법전이 생겨나고 종교 체계가 잡히며 대규모 사원들이 세워지는 등, 가히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기도 하였다. 한때 잉와 왕국의 봉신국이었던 따웅우 왕국은 점차 힘을 길러 잉와 왕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가 싶더니, 1531년 즉위한 젊은 왕인 따빈슈웨티는 한따와디 왕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명성을 높인다. 남부의 몬족 세력들은 포르투갈 용병들을 고용해 물리쳤다. 주변의 왕국들은 이에 놀라 서로 동맹을 맺었으나 이를 모두 격파하고 통합시켰다. 여기에 1547년 몬족을 지원하던 아유타와 왕국까지 공격하여 비록 함락에는 실패했지만, 철저하게 아유타야 군을 파괴하고 사령관이었던 아유타야 왕비 수리요타이를 전사시키는 대승을 거둔다.. 그러나 버마로 돌아온 왕은 포르투갈인 근위장교와 사냥을 하다가 암살을 당한다. 그 후 다시 분열되는 듯했으나 이복형인 바인나웅이 왕으로 올라 안정을 되찾는다. 그리고 바인나웅은 지금 여행자의 천국으로 알려진 치앙마이의 란나 왕국, 그 아래에 있는 아유타야 왕국과의 백상(白象) 전쟁, 란상 왕국 등 여러 왕국을 정벌하며, 잠깐 동안 동남아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이룬다. 그러나 1581년 바인나웅 왕이 죽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그가 정복 전쟁으로 인해 지나친 세금을 부과하고 철권통치를 한 터라 귀족들과 백성들의 불만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이후 들어선 꼰바웅 왕조 6대 국왕인 보도파야의 치세에 최전성기에 달해 1784년 아라칸 왕국을 병합하고, 10만이 넘은 대군으로 지금의 태국인 시암을 침공한다. 하지만 유럽식 신식무기를 앞세운 라마 1세의 짜그리 왕조의 군대에 처참하게 무너진다. 설상가상으로 아라칸의 통치까지 실패하며 반란을 일으킨 잔당들이 이웃한 영국령 인도로 도주하자, 국경을 넘어 공격하다 영국군과 충돌하여 긴장이 증폭되게 된다. 토지에 비해 인구가 부족한 동남아에서는 지배의 개념은 땅보다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국경을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개념은 중동, 유럽과 동북아에서 형성되어 관료제가 발달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얀마의 귀족층들은 쇄국을 고집하고 주변에서 물결치던 서구 문물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지만, 왕실 자체적으로 서구식 공장을 지으며 시암의 근대화 개혁 모습을 보고 무기도 서구식 체제로 생산시도도 하였다. 그러나 귀족들은 그것을 개혁의 발판이 아닌 돈줄로만 보고 오히려 공장을 짓는 데 도움을 준 서구인들과 유착하면서 개혁에 실패하고 만다. 그다음 왕에 오른 버기도 역시 이러한 사태들이 계속되고,버마가 아쌈의 타이계 왕국인 아홈 왕국까지 복속시키자 긴장은 극에 달한다. 그리고 마침내 1824년1차 영국-버마 전쟁 이 일어난다. 이것은 당시 대영제국이 청나라 침략을 위해 미얀마를 전략 요충지로 보고 있었는데, 좋은 빌미가 생긴 셈이다. 신무기를 앞세운 영국군은 버마에 선전포고를 내리고 1824년 2년간 첫 전쟁에서 물메인 지방을 빼앗고, 1852~53년에 벌인 2차 전쟁에서는 저지대 삼각주를, 마침내 1885년에는 고지대까지 점령하면서 미얀마를 병합해 버린다. 이후 인도 제국의 한 주로 편입되었다가 1837년 버마인들이 자치를 허용해달라고 하여 다시 떼어낸다. 식민지의 중심도시 역시 영국에 의해 원래 수도였던 만달레이에서 바다에 가까운 양곤으로 옮겨졌다. 꼰바웅 왕조 최후의 임금인 티바 왕은 인도 서해안의 작은 어촌인 라트나기리로 끌려가서 31년간 유폐 당한 채 그곳에서 숨을 거둔다. 1942년 태평양 전쟁 중에는 일본과 태국의 침공으로 일본 군정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남부 일부 영토는 태국에게 병합를 당하게 된다. 그러나 1943년 일본이 버마을 버마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를 시켜주자 ’아시아의 구세주‘라 환영하였으나, 곧 일본의 지령을 받는 친일파 바 마우에 의해 꼭두각시 괴뢰(傀儡) 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아웅 산과 우누, 네윈에 의한 ’30인의 동지’라는 반파시스트 인민 자유 동맹이 결성된다. 이들은 일본군과 협력했으나 전쟁 말기, 영국군이 버마를 재탈환하고 만달레이 인근까지 진격해오자 바로 편을 바꿔 영국군에게 붙어 일본군을 몰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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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경제진흥상생일자리재단, 조선이공대학교와 청년 일자리 창출과 소상공인 디지털 전환 위한 협약 체결

광주경제진흥상생일자리재단(이하 경제일자리재단, 대표이사 김현성)과 조선이공대학교(총장 조순계)는 청년 일자리 창출과 취·창업지원 협력 및 소상공인 디지털 전환을 위해 상호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광주지역 청년 일자리 창출 및 구직자 역량 강화 지원을 위한 협력체계 구축 ▲청년 진로·취업 교육 프로그램 공동 추진 ▲ 소상공인 교육 및 지원사업 추진 협력체계 구축 ▲ 양 기관이 추진하는 중점사업 및 정책의 홍보 등이다. 경제일자리재단 김현성 대표이사는“디지털 경제,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창직을 통한 디지털 뉴딜을 지역 자원과 적극적으로 연계하고 협력하여 시너지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하고, 지역 소상공인의 디지털 전환에 대학이 중간지원조직이 되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조선이공대학교 조순계 총장은“광주의 경제진흥, 상생, 일자리를 이끄는 광주경제진흥상생일자리재단과 함께 지역 청년 취·창업과 지역 소상공인 지원 분야를 협력하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과 관련 네트워킹·커뮤니티 구축을 비롯한 여러 공동 프로젝트를 함께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써큘러랩스, 스마트하게 즐기는 프리미엄 다회용 컵 서비스 '아란테' 출시

써큘러랩스가 RFID 기술을 적용해 다회용 컵의 대여 및 사용, 반납 과정을 스마트하게 관리하는 프리미엄 다회용기 '아란테(ALANTE)'를 출시했다고 밝혔다. SK텔레콤 환경 플랫폼 해피해빗과 협업한 이 서비스는 사용자 편의성과 환경 보호를 동시에 실현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아란테는 RFID 기술을 활용해 다회용 컵을 언제, 어디서, 누가 대여하고 반납했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복잡한 절차 없이도 다회용 컵을 편리하게 사용하고 사업자는 효과적으로 다회용 컵 관리가 가능하다. 아란테는 크게 3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환경부의 탄소중립포인트와 연동해 다회용 컵 반납 시마다 300원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이 포인트는 연간 최대 7만원까지 현금으로 고객이 등록한 계좌에 입금된다. 탄소중립포인트 적립은 SK텔레콤 해피해빗 플랫폼을 통해 고객의 이용 실적을 전송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써큘러랩스는 인센티브 제공이 사용자의 참여를 독려하고 지속 가능한 소비 문화를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둘째,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은 장애인고용부담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 장애인표준사업장 인증을 받은 써큘러랩스가 장애인연계고용제도를 활용해 환경 보호뿐 아니라 장애인 고용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셋째, RFID 기술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다. 아란테 다회용 컵 시스템은 모든 사용 데이터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수집해 기업들이 ESG 실천에 필요한 Scope3 데이터를 제공한다. 서비스 이용 기업들은 다회용 컵 사용을 통한 탄소 배출 저감 효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으며, 환경 목표를 체계적으로 달성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써큘러랩스 한 관계자가 "아란테는 장애인 일자리 창출과 환경 보호를 동시에 실현하는 혁신적인 모델이다."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큰 기여를 할 것이다."고 말해다. 한편, 써큘러랩스는 앞으로도 RFID 기술을 활용해 다회용 컵 서비스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더욱 높이고, 환경 보호와 사회적 가치 실현을 동시에 추구하는 아란테의 프리미엄 다회용 컵 서비스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표준으로 제시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환경 보호에 동찰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LG생활건강 비욘드, 종이로 분리배출 가능한 '프로페셔널 디펜스 샴푸 리필' 출시

LG생활건강이 스킨 릴리프 뷰티 브랜드 비욘드에서 제품 용기를 종이로 분리배출할 수 있는 '프로패셔널 디펜스 샴푸 리필'을 출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신제품은 제품을 다 쓰고 남은 용기를 종이로 분리배출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한국환경공단'으로부터 종이 분리배출 지정 승인을 받았다. 재생 용지인 '크라프트지' 소재로 제작된 부분은 종이의 원료로, 일부 합성수지 필름 부분은 열에너지원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종이 재질 용기로 바꾼 뒤 플라스틱 사용량도 대폭 줄었다. 비욘드 프로페셔널 디펜스 샴푸 리필 제품은 펌프가 포함된 500ml 동일 용량의 본품 대비 플라스틱 사용량은 약 80% 감소했다. 무게 기준으로 제품 1개당 70g의 플라스틱이 덜 사용된 것이며, 연간 약 2.5톤에서 3톤 가량의 플라스틱 사용량 저감 효과가 기대된다. 지난해 초 비욘드는 국내 업계 최초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원료로 만든 재활용 용기를 적용한 수분 크림을 출시한 바 있다. 비욘드 한 관계자는 "종이 분리배출이 가능한 샴푸 리필을 출시하면서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제품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며, "성분부터 용기까지 클린뷰티를 지향하는 자사 브랜드 철학을 담은 제품들로 차별화된 고객가치를 제공할 것이다."고 전했다. 한편, 비욘드는 지난해 5월 실천 가능한 친환경 활동 체험을 제공하는 'Less plastic, Paper is enough(플라스틱은 적게, 우리 일상은 종이로도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캠페인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등 행동하는 클린뷰티 브랜드로서의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ESG데이터, 공공기관의 인권경영 내재화 필요성 강조

한국ESG데이터는 공공기관의 2022년 경영실적 평가보고서를 전수조사한 결과 2018년 이후 인권경영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왔으나 아직 조직 내의 내재화 단계에는 충분히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공공기관들이 인권경영의 첫 단계인 인권경영체계는 대체적으로 도입해 운영하고 있지만 인권영향평가와 고충처리절차, 인권경영교육, 인권경영위원회 운영 등 인권경영의 요체라고 볼 수 있는 다른 영역에서는 개선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권경영에 관한 경영실적 평가에서 인권영향평가(26.6%)와 고충처리절차(21.1%)에 관한 의견이 가장 많아 내재화가 필요한 주요 영역으로 분석됐다. 이와 같은 조사 및 분석 결과는 한국ESG데이터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ALIO)’에 공시된 297개의 공기업, 준정부기관, 그리고 기타공공기관의 2022년 경영실적 평가보고서를 분석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ESG데이터는 총 1113개(264만 토큰)의 평가의견을 인공지능(GPT-4o) 기술을 이용해 분석했다고 전했다. 본 조사의 상세 분석 결과 리포트는 한국ESG데이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국ESG데이터는 한국철도공사, 한국전력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수력원자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등 국내 주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인권영향평가 컨설팅을 수행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공급망실사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등 높은 인권경영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는 한편, IT 기술력을 결합해 국내 인권경영 컨설팅 분야에 새로운 방법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윤회, 순환패션 스타트업 'CARE ID' 서비스로 프리 시리즈A 투자유치 성료

디지털 케어라벨 솔루션 'CARE ID'를 서비스하는 순환패션 스타트업 윤회(대표 노힘찬)가 프리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이번 라운드는 기존 투자자인 엠와이소셜컴퍼니(MYSC)와 한국투자엑셀러레이터가 후속으로 참여했다. 윤회는 2021년 설립한 순환패션 스타트업이다. 순환패션이란 옷을 상품 가치가 다할 때까지 고쳐 입고, 버려지는 폐의류를 재활용해 다시 상품으로 재창출하는 등 자원 절약과 환경 보호에 초점을 둔 패션 산업 모델이다. 패션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환경오염의 해결점을 찾기 위해 고안됐으며, 최근 EU와 미국을 중심으로 패션 업계에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윤회는 순환 패션의 전 과정을 다루는 솔루션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개별 의류를 데이터화해 생산과 폐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관리하는 디지털 케어라벨 솔루션 'CARE ID'가 있다. 'CARE ID'는 2030년까지 약 650억 벌 규모로 예상되는 EU의 DPP(디지털제품여권) 연관 시장을 타깃으로 개발됐다. 150여 개 패션 브랜드와 제휴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2023년 연 매출 10억 원을 돌파했다. 윤회는 앞으로의 순환패션 시장이 DPP 중심으로 라벨, 솔루션 뿐만 아니라 재판매 등의 부가적인 영역까지 큰 규모로 형성시킬 계획이다. 또한 EU의 규정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가변 QR 시스템과 디지털 서명 보안 방식을 통해 더욱 빠르고 쉽게 DPP와 정보를 연동할 수 있다. 이러한 전 과정에서 저감되는 탄소 배출량의 산출 및 고객의 소비 동향 등의 정보를 제공해 국내 시장을 선점하고 나아가 글로벌 시장의 점유율까지 확보하는 사업을 목표로 전개 중이다. 엠와이소셜컴퍼니(MYSC)는 윤회의 솔루션이 순환패션의 활성화를 통해 소셜 임팩트를 창출하는 효과를 보고 이번 투자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윤회는 이번 투자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순환패션 전 영역의 솔루션 고도화 및 서비스 확장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우선 'CARE ID'의 고도화 버전과 자체 개발한 오픈소스 기반의 패션-탄소발자국 계산기 'CIRCLE'을 3분기 내 출시한다. 또한 다양한 브랜드와의 제휴를 바탕으로 구독형 서비스, 의류 재판매 등 다양한 영역으로 매출 포트폴리오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한 지표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 시리즈A 투자 라운드를 마감할 예정이다. 윤회 노힘찬 대표는 "순환패션 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차별화된 솔루션을 개발하고 이를 통한 매출을 기반으로 성공적으로 투자 유치를 할 수 있었다."며, "향후 시대가 패션산업에 요구하는 문제를 윤회가 앞장서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순환패션 스타트업 윤회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고 MYSC가 주관하는 2024 엑셀러레이터연계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윤회는 'CARE ID'를 통해 순환패션 시장을 활성화하며 프리 시리즈A 투자 유치를 바탕으로 솔루션 고도화와 서비스 확장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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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테인플루언서,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리사이클 파우치' 자원순환

지속가능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모인 서스테인플루언서 단체가 지난 3일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리사이클 원단을 활용한 파우치를 직접 제작하는 자원순환 활동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2017년 개관한 서울새활용플라자는 새활용 관련 전시 및 실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 디자인 스튜디오, 업사이클링 편집 매장과 공방 등을 운영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새활용 복합 문화 공간이다. '새활용'이란 업사이클링(Up-Cycling)의 순우리말로, 버려지는 자원을 새롭게 디자인하여 완전히 다른 가치를 창출하는 제품을 의미한다. 서스테인플루언서는 도슨트와 함께 서울새활용플라자 내부 공간을 둘러보며 제로웨이스트의 가치와 지구를 위한 실천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막대한 자원의 에너지가 소비되며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꼽히는 '의류 생산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과 버려지는 옷이 어디로 가서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새활용 교육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은 '도슨트와 함께하는 새활용 투어' 탐방 활동으로, 올해 12월까지 접수가 가능하며 하루에 두 번,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각각 50분씩 진행된다. 서스테인플루언서가 직접 제작한 파우치의 원단은 '리사이클 폴리에스터'로 버려지는 생수병(페트병)을 수거해 잘게 부숴 알갱이로 만든 후, 실로 뽑아 원단으로 재생산하는 과정을 거쳐 제작됐다. 또한 막대한 물의 양을 사용해야 원단의 패턴이 만들어지는데, 이는 자원의 소비 없이 패턴까지 디자인됐다. 옷을 생산하는 과정은 물의 자원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불에 태워 폐기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그러나 현재 의류 소재의 재활용 비율은 약 12% 밖에 되지 않는다. 이번 활동을 통해 서스테인플루언서는 페트병 4~5개 분량의 자원을 순환할 수 있었다. 이번 활동의 한 참여자는 "새활용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는 기회였다."며, "많은 기업들이 환경을 위해 새활용품 제작에 열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서스테인플루언서(Sustainfluencer)는 '지속가능한'을 의미하는 영어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과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의 의미를 지닌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합성어로, '지구의 지속가능성'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 가능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과 정보들을 공유하고 서로 실행하며 '나로부터 시작되는 변화'를 추구한다. 또한 매주 새로운 '생활 속 탄소 배출 줄이기 챌린지'를 진행하고 있으며, 환경과 소외된 이웃을 위한 프로그램을 매월 활발하게 진행해 나가고 있다. 서스테인플루언서 활동 희망자는 ESG코리아뉴스 인스타그램 SNS 계정으로 문의하면된다.

[ESG인터뷰] 건강한 소비문화와 친환경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CH하모니 최성철 대표

(주)씨에이치하모니는 화장품 원료 추출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친환경 기업이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 살리기 운동, 건강한 땅 만들기 운동, 지속가능한 지구 만들기에도 진심인 최성철 대표는 소비자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을 모두 지켜보겠다며 유기농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유기농 화장품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온 최성철 대표를 만나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는 씨에이치하모니의 행보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Q. (주)씨에이치하모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2006년에 천연 화장품, 유기농 화장품, 친환경 생활용품 이렇게 3가지 콘셉트로 시작했어요. 메인 상품은 천연 유기농 화장품류, 의약외품류, 친환경 생활용품류를 제조합니다. 생활용품은 식물성 원료 기반 플라스틱으로 즉, 자연환경에 의해 썩는 플라스틱으로 석유화학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상품군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화장품을 만드는 공장은 화장품 우수 품질 제조 ISO-22716(CGMP) 인증 제조공장이며, 천연∙유기농∙할랄∙비건과 같은 인증 제품을 전문으로 연구 개발 생산 유통하는 회사입니다. 국내에서는 2013년부터 가장 많은 유기농 및 천연화장품 국제 인증을 받았고, 국내 유기농 인증 농산물 원물을 기반으로 원료 추출 제조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과정을 진행하는 한국에서는 거의 유일한 회사입니다. 현재 약 50여 가지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OEM/ODM으로 다른 브랜드 제품들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온라인 시장의 확대와 플랫폼 광고효과 저하로 인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자사 화장품 브랜드로 '카페찹스(Cafe CHOBS)'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유기농 화장품 분야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나요? 사실 자연스럽게 인연이 됐어요. 학부시절 무역학을 전공했고 2000년대 되기 전에 수출을 위한 해외영업이 주된 업무였고 수입대행 업무도 병행했습니다. 그 때 소비자나 고객사들 요구가 주로 유럽, 호주, 미국 시장의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를 수입해달라는 거였죠. 그 당시 해외에서는 유기농 화장품이 한창 인기였거든요. 한국의 화장품 법은 2000년에 발효가 됐는데요. 그 전에는 약사법 산하에 있었고 화장품 법이 발효되면서 공산품화됐습니다. 화장품 법이 따로 떨어져 나왔던 시기에 화장품 수입 의뢰가 급증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유럽은 굉장히 많은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들이 있었지만, 한국은 유기농 화장품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었던 시기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화장품은 화학으로 만드는 것으로만 생각했죠.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해외 여행을 많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유기농 화장품을 알기 시작했고 유럽의 유기농 화장품을 수입해달라는 업체도 많아졌죠. 어느 날, 수입 업무를 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이걸 왜 다 수입에만 의존할까? 국내에서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국내에서도 화장품 잘 만드는 데, 왜 유기농 화장품은 못 만들까?' 라는 생각으로 유기농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도전의식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Q. 원료 추출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18년 전에 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 한국에서 유기농 화장품이라고 하면 다 거짓말이라고 했어요. 그 이유는 원료를 만들어 준 회사가 이미 그 원료 안에 화학 방부제를 넣어서 유통한 이력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직접 유기농 화장품을 만들려고 보니, 유기농 원료를 공급해 주는 회사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원료 추출부터 직접 시작하게 됐죠. 또한, 농산물을 해외에서 사 오면 유기농 검증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국내산 유기농산물을 가져다가 추출해서 만들기 시작했고, 국내 최초로 유기농 원료 추출부터 시작하게 된 회사가 됐습니다. Q. 유기농화장품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시장에서 유기농은 1%에 불과해요. 비건과는 달리 유기농 인증 기준이 법제화로 명시되어 있어 허위 사실 및 과장 광고 등은 불법으로 처벌받게 되죠. 심지어 유기농 인증을 받기 위한 기준이 나름 까다로운데요. 3년 동안 화학비료나 농약(제초제 등) 사용 없이 농사를 지어야지만 유기농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요. 유기농으로 인증 받은 농산물 원물을 기반으로 유기농 화장품을 만듭니다. 유기농 화장품에는 최소한의 사용 가능한 화학 성분이 정해져 있어서 일반적인 화장품에 많이 사용하는 보통의 화학 성분은 쓸 수가 없죠. 합성방부제, 합성계면활성제, 인공향료, 인공색소 등의 사용을 할 수 없어 사실상 유기농 화장품을 만드는 일이란 참 어렵습니다. 소비자 또한 완제품의 표기사항만을 보고 제조 과정을 머리 속에 연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거기다가 유기농은 식물로 추출한 것들이 유기농 함량의 국내법 기준으로 10% 이상이여야 하고, 유럽은 20% 이상을 넣어야 해요. 이게 말로는 10%, 20% 하니깐 쉽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잘 체감이 안되실거에요. 예를 들면, 100ml 용량의 화장품 한개를 만들 때 10ml는 국내 유기농 인증을 받은 농산물에서 추출돼야 하죠. 장미 100송이 해봤자 에센스는 한 방울 밖에 나오질 않는데 말이죠. 그럼 100ml 한 병을 만들기 위해 약 10만 송이가 있어야 돼죠. 이렇게 생각하면 엄청나게 고가이고 귀한 제품이 되겠지요. 실제 유럽에 가면 물 없이 순수하게 유기농 화장품을 만드는 브랜드 중 E.O 전문 생산업체는 1리터에 5천만 원에서 1억 원 하는 제품도 있어요. 그럼 우리가 쓰고 있는 향수같은 화장품은 어떨까요? 확산제인 알코올같은 용매나 부용제로 양을 왕창 늘리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시중에서 만나는 천연 향수도 알코올이 80~90%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특히, 유기농 화장품은 알코올도 모두 유기농 인증을 받은 알코올만 쓸 수 있거든요. 이것도 정말 어려운 부분이지만, 유기농 알코올은 주정, 즉 먹을 수 있는 알코올입니다. 이 시대의 사회구조는 훌륭하고 좋은 일을 해서 성장하기가 쉬지 않은 현실입니다. '올바른 상식으로 인생을 살기가 어렵다'라는 말처럼 지금 사회는 적절히 잘 타협하고 광고해서 대충 만들어도 잘 성장해 가거든요. 하지만 유기농은 달라요. 국가관리의 법적으로 유기농 인증제도가 있어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유기농에 대한 신뢰성이 높아지겠죠. 반면, 이걸 안 좋게 보면 기존의 시장에서는 규제라고 하겠죠. 하지만 이 규제가 있어야 진실되게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이렇게 부딪히는 사회 현상이 누가 옳은지는 잘 몰라요. 우리는 당연히 유기농이 옳다고 하지만 반대쪽에서는 유기농만 해서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겠냐고 말해요. 만약 반 이상이 유기농이라 하면 이해하겠지만, 우리나라 유기농 시장은 약 1%에 불과하거든요.실제로 우리나라 화장품 소매규모는 2023년도에 약 35조 시장이였고 생산 실적은 대략 18조 이상인데요. 유기농 화장품 시장은 지금 천 억도 못 미칩니다. 일반 화장품을 제조하는 업체들은 유기농을 하고 싶어도 수십년 간 일반 화장품만 해왔기에 갑자기 유기농을 하기에는 어렵겠죠. 소비시장에서 선택되어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똑똑한 소비자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유기농 화장품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철학과 성향인 것 같아요. 사람들한테 '우리는 유기농 화장품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내뱉었고, 그로 인해 소비자가 구매를 한다면 소비자와 약속을 한 거잖아요. 스스로의 철학과 논리를 사람들한테 얘기하고 지키고 있기 때문에 저의 자존감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천 명의 고객과 한 약속이니 갑자기 제 철학과 논리를 다 버리는 것은 배신행위라고 여겨지고요. 사업가나 기업 경영자로서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또 제가 녹색 소비자 연대에서도 활동해오고 있고, 지금도 생협(소비자 생활협동조합)에 주로 생활재를 공급해오면서 친환경 유기농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대학에서 석사 시절부터 연구한 것도 유기농 인증제도에 관한 것이였고 대학에서 겸임교수 시절에도 천연 유기농 관련 수업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탄소를 줄이는 저탄소 문제와 지속가능한 농업, 유기농까지 관심이 이어진 것 같습니다. Q. 유기농에 대한 오해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실제로 유기농을 하는 이유가 다들 건강 때문이라고 하시는데요. 그것은 광고∙마케팅을 통해 소비자한테 쉽고 빠르게 접근 시키기 위해 일으킨 착각입니다. 유기농을 해야 하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물 살리기 운동'이고 두 번째가 '공공의 영역'이거든요. 우리나라는 '농사에 화학비료나 농약을 주지 말자'가 주된 목소리잖아요. 땅에 식물이 자라는 영양분을 주기 위해서는 퇴비를 발효시켜 땅속에서 발효된 영양분을 먹어야 하는데요. 화학비료를 주는 것은 사람한테 음식물을 씹어서 삼키고 소화시키는 과정없이 포도당 링겔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과투입에 대한 문제도 심각한데요. 식물이 먹을 만큼 먹고 남은 것 화학비료는 비가 오면 땅속으로 침투돼서 지하수로 가겠죠. 사람은 지하수에 있는 물을 먹어야 하는데 말이죠. 사실, 요즘 등산로에 가면 대부분의 약수터에 음용금지라고 써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표층수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상식이지만 지하수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공공의 이익 영역으로 보면요. 지구촌의 물의 구조가 약 70%는 바다에 있고 약 30%는 대기와 육지에 있습니다. 담수는 지구 전체에 약 2.5%이고, 고체상태(빙하) 약 2% 그리고, 지하에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사람이 먹는 물은 담수와 지하수이니 앞서 말한 것처럼 지하수가 오염이 되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쉽게 예를 들어보면, 독일에서 마을1(유기농 하는 마을), 마을2(유기농과 비유기농 함께), 마을3(관행농업-화학비료 사용)이 있었는데요. 정부가 유기농 하는 사람들한테 도움을 지원해주겠다고 한 거예요.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마을3'은 같이 농사를 짓는데 왜 '유기농하는 마을1' 에만 지원하냐고 물었죠. 국가가 하는 말이 "마을3은 화학비료를 쓴 물이 지하수로 가기 때문에 정제해서 물을 먹으려다 보니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을1은 유기농업으로 화학비료를 안 쓰다보니 정제 처리비가 상대적으로 안들어가게 되지요. 동등하게 하기 위해서 지원하는 겁니다."라고 한거죠. Q. (주)씨에이치하모니 건물 맞은 편에 카페도 운영중이신데, 어떤 카페인가요? 저희 화장품 브랜드를 어떻게 광고할지 고민하다 카페를 시작하게 됐는데요. 저희 회사가 유기농에 진심이고 원료 쪽하고 연관성이 있어서 카페를 통해 홍보하면 좋겠더라고요. 카페에서 판매하는 메뉴 대부분이 저희가 개발한 유기농 메뉴인데요. 실제로 상당히 좋은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또한, 친환경 농산물 자조금 협의회로부터 친환경 식당으로 최초로 지정받은 카페입니다. 카페에서 쓰는 모든 것이 50%이상 친환경 인증을 받았고 국내산을 사용해야 하는 기준이 있다보니 보통 카페에서는 쉽게 받을 수가 없죠. 흔히 유기농 카페라고 하면 커피만 유기농이여서 50% 기준치를 넘기기 힘든데요. 저희는 커피뿐만 아니라 시럽, 친환경 농산물(토마토, 딸기 등), 설탕 등 다 유기농으로 사용하고 있어 친환경 식당으로 인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개업할 때부터 'Cafe CHOPS(카페찹스)'에서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생분해수지 컵을 사용하고 있고요. 종이컵과 빨대 모두 식물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만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카페에서 일어난 매출의 일부는 '세이브 더 칠드런'에 전달해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지정 기부 중인데요.소비자들이 저희 제품을 구매하고 카페를 이용했을 때 나오는 수익의 일부 금액을 매년 기부하고 있고 저희 제품 모두 '세이브 더 칠드런'을 표기해놨습니다. '세이브 더 칠드런'이 좋은 점은 기부자가 기부처와 기부받을 사람을 지정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저희 회사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Q. (주)씨에이치하모니의 모든 제품들이 다 소중하겠지만, 특히나 자랑스러운 제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네, 유독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제품이 있죠. 저희 회사가 국내 최초로 여성 위생용품인 '여성 청결제'에 유기농 인증을 받았거든요. 기존 시장은 여성 위생용품을 화학적 성분으로 만들어냈지만, 저희는 최초로 유기농으로 바꿨습니다. 지금은 다른 브랜드 4-5곳에 OEM을 해주면서 다른 업체들 또한 이렇게 따라오게 만들었죠. 원래, 의약외품으로 분류되던 여성청결제가 2010년에 의약외품에서 화장품으로 법이 바뀌었어요. 그 타이밍에 저희 회사가 유기농 여성청결제를 최초로 만들었고, 그 전에는 우리나라 의약외품 제조회사나 제약회사에서만 여성쳥결제를 만들 수 있었거든요. 그 상황에서 저는 여성청결제를 유기농으로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해 '찹스 유기농 순한 거품 여성청결제'를 론칭했어요. 지금도 가장 많이 팔리고 있고 회사 매출 중 상위권에 있습니다. OEM도 제일 많이 해주고 TV홈쇼핑에도 출연한 제품이에요. Q. 대표님이 가지고 계신 브랜드 철학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씨에이치하모니의 브랜드 철학은 무엇인가요? CH Harmony의 'CH'는 Charm & Healthy를 의미하며 매력과 건강의 조화의 의미가 담긴 회사이름입니다. 'CHOBS'는 Charm & Healthy Organic Beauty Store의 약어로 매력과 건강의 유기농 화장품 상점을 의미합니다. 저희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행복을 느끼고 건강하게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기업을 만들고 싶어요. 저희 회사에 직원들이 면접을 보러 오면 하는 얘기가 있거든요. '화장품 업계에서 (주)씨에이치하모니 명함을 갖고 다니면 절대 창피할 일은 없다.' 또 다른 곳과는 달리 화학 성분을 안 쓰고 천연 추출물을 쓰다 보니 향기도 좋고 일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돼있죠. 저희 회사 매출의 1등을 차지하고 있는 '찹스 유기농 순한 거품 여성청결제'를 보면요. 예전에는 여성청결제가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천연, 유기농 컨셉을 소비자가 원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여성청결제가 상당히 진화해서 화학성분이 다 사라졌어요. 거의 대부분 천연 컨셉 제품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요. 이런 사회적 소비현상을 보면 누군가 시장의 흐름을 바꿔 소비자의 건강 수준이 높아지는 좋은 현상을 볼 수 있어요. 이런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제품을 통해 사람이 사는 방법과 문화를 바꾸기도 합니다. 또 건강한 사회적 영향력도 발휘하죠. 이러한 영향을 발휘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소비재로 많은 걸 변화시키는 구조가 저는 '친환경화'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바로 생산자의 철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Q. 현재 (주)씨에이치하모니에서 개발 중인 상품은 무엇인가요? 최근 유럽에 수출했을 때, 판매자들이 포장 용기도 친환경으로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많았어요. 저희는 현재까지 화장품 용기를 친환경 구조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하죠. 그렇게 하고 있는 업체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고 해요. 용기에 대한 고민은 늘 많았어요. 그래서 최근 개발하려고 하는 것은 저희 회사에서 숫자로 가장 많이 팔리는 유기농 립밤입니다. 그 립밤 용기를 100% 나무로 만들려고 해요. 또 디자인까지 샘플로 만드는 중이에요. 아마 내년 정도에 나무로 만들어진 립밤 용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립밤 용기 나무는 국내산 편백나무로 만들어지는데요. 편백나무는 항균 작용을 하잖아요. 립밤은 90%가 다 오일이기 때문에 다른 원료와 다르게 썩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죠. 기름은 산패가 되지 쉽게 부패가 되지 않지요. 앞으로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온 적 없는 최초의 100% 나무로 만든 립밤이 탄생될 예정입니다. 다 쓰고 나서는 씻어서 악세서리 용기 혹은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을거예요. Q. 요즘 기업의 화두인 ESG경영에 대해서는 어떻게 의견을 가지고 계신가요? 저희 회사는 ESG경영이라는 단어가 명시화되기 전부터 친환경 원료로 유기농 제품들을 사용해왔어요. 기본적으로 유엔에서 만든 SDGs 17가지를 실현하려고 합니다. 현재 저는 안양의 지속가능 발전협의회에서 4년째 활동하고 있고, 생태분과에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SDGs 17개 항목 중에 저희가 하는 역할은 12번 (지속가능 생산과 소비)과 14번(해양오염에 관한 플라스틱과 연관돼 있는 쓰레기 문제)이에요. 이 17가지 항목이 다 합해져 함축적으로 만든 단어가 ESG경영이잖아요. 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고민인데요. 각각 하고 있는 산업사회에서의 역할인 'UN의 지속가능 발전 목표 17가지'는 E(envoriment) : 친환경적으로 생산하고 관리하고 있는가, S(social) : 사회적으로 인권 문제나 노동 문제까지 포함해서 소셜적인게 있는가, G(governance) : 정책이나 노동조합을 할 때 거버넌스가 돼 있는가 로 3가지의 카테고리를 17가지로 쪼개 놓은 거거든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해양 오염의 원인은 미세 플라스틱을 통해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심각한 재해로 발생됐어요. 이 재해를 극복할 대안을 찾지 못해 정부가 일단은 플라스틱 사용을 규제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미세플라스틱이 토양에서 오염돼 비가 오면 지하로 침탈돼 강으로 가고 바닷가로 흘러가요. 흘러간 플라스틱은 미세하게 나노화돼있기 때문에 가라앉지 않고 흘러가 바닷가에 몰리고 있는 상황이죠. 이렇게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들에게 미세 플라스틱이 노출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식약처를 포함해서 국제적으로 미세 플라스틱 입자 농도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지 못하고 있어요. 심지어 해조류 및 바다생선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나오게 되면 먹기 어려워 질 것인데요. 이러한 이유로 요즘 해양 심층수 깊은 곳에서 소금을 뽑아온다는 소문이 있더라고요. 이런 상황들로 인해 요즘 기업들이 ESG 경영을 한다고 '옥수수 전분'을 많이 활용해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실제로 옥수수 추출을 위해 얼만큼의 옥수수가 필요한지 측정해보면요. 추출한 옥수수 15g의 양을 얻기 위해 1.5kg 정도는 발효시켜야 하는데요. 그럼 아프리카 난민의 식량난을 걱정하는 사회구조에 문제가 생기게 돼요. 옥수수 전분을 여기저기서 많이 활용하면 굶는 사람이 늘어나 기아 문제가 제기되거든요. 세상에는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구조가 있어요. 자기가 아는 만큼 얘기하다 보면 실수하게 되죠. 그래서 뭐든지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정의하는 논리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아요. Q. 대표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요? 후세에게 희망과 기대치를 안겨주고 싶어요. 요즘 애들이 "저도 늙어서 죽고 싶어요."라고 말한대요. 늙어서 편하게 죽고 싶은데 자연재해나 전쟁, 핵폭탄 등이 뉴스에서 자주 보도되니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지고 있다는 거죠. 아이들이 오늘만 살기 위한 삶을 살고 있다는거예요. 이러한 아이들의 생각을 알게 되니, '지속가능한 사회'를 펼쳐서 아이들의 미래에 희망과 기대 가치를 높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아이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제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ESG최고위리더](사)한국장애인복합문화센터 이상곤대표 "예술로 하나되는 세상을 위해"

(사)한국장애인복합문화센터는 2018년 부산광역시청 문화예술과로부터 허가받은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장애인에게 자유로운 창작활동과 평생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장애인복합문화센터는 장애인과 지역사회가 온전히 결합하는 공동체 삶을 지향한다. '열정', '느낌', '자유'라는 핵심가치 아래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나가는데 힘쓰고 있는 이상곤 대표를 만나 센터의 이모저모를 들어봤다. Q. (사)한국장애인복합문화센터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한국장애인복합문화센터(이하 센터)는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예술향유의 주체자로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장애인이 예술을 한다고 하면 시혜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장애예술에 대한 시선이 포용성과 다양성으로 확장되고, 모두의 예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센터를 이끌어나가는 대표로서, 장애인의 능동적 예술활동에 대해서는 여러 아이디어를 나누고, 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기업이나 개인이 인식의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요. 센터의 원활한 업무를 위해 물적, 인적자원을 지원하는 일 외에도 장애인 예술활동에 대한 사회적 흐름을 알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장애인의 예술활동의 의미를 홍보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Q. 산소공급시스템을 개발하는 (주)NF의 대표이사로 더 알려져 있는데, 한국장애인복합문화센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교때 전국 지체부 자유대학생 연합회인 '디딤돌'이라는 장애인 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사회 내 차별 받고 있는 장애인 문제에 대해 눈을 떴죠.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차별이 있고, 그 차별에 대해 공부하고 알리는 일을 하는 동아리 활동이 제게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 '장애인참배움터'라는 전국 최초의 장애인 야학교에서 교사를 하면서 장애인의 사회적 차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장애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당당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2023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 장애인의 50% 이상이 중학교 졸업 이하이고, 이전부터 평생교육의 사각지대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통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요. 특히 평생교육 분야 중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상적 욕구에 대한 지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정말 이 사업을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애인을 사회에서 포용하고 차별없이 소통하며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술'이라고 확신했고요. 센터는 장애인의 사회포용적 관점에서 '예술과의 소통을 통한 장애인' 그리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으로의 확장을 위해 예술 매개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설립하게 됐습니다. Q. 한국장애인복합문화센터에서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현재 발달장애인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이 매우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데요. 특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한 정은혜 작가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시각예술에 대한 부분은 더욱 관심이 많아졌어요. 센터에서는 시각예술 뿐만 아니라 공연예술, 그리고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발달장애인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데요. 단순한 콜라보레이션이 아니라 각자의 예술 감수성을 확장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워크숍을 기반으로 다른 장르와의 융복합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시도를 하려고 합니다. 이런 콜라보레이션은 작품 교류뿐만 아니라 관계적 예술, 사회적 가치확장이라는 측면에서도 꼭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적당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도, 이를 보는 관객도 어우러져 감수성을 교류하고 지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장애인, 예술 등의 키워드는 참여자로서 함께 하는 시공간이 많아질 때 서로에 대한 이해 접점이 생긴다고 봐요. 현재 많이 부각되고 있는 키워드인 '돌봄', '통합', '소통' 등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Q. 한국장애인복합문화센터가 추구하는 문화 또는 나아가고 싶은 방향은 무엇인가요? 저희 센터는 장애예술인의 창작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비장애 예술인과 다양한 소통을 하고 있어요. 회화, 설치미술, 무용, 연극, 문학, 문화기획자 등과도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서 장애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예술 매개체로서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장애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예술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비장애 예술인들에게 장애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리는거죠. 대부분 장애예술인 지원 사업을 한다고 하면 당사자에 대한 지원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차별 없이 즐겁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센터에 관심있는 분이나 후원자분들이 기부금을 후원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예술인들의 활동을 함께 즐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예술적 소통이라는 주제를 관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2022년에 정은혜 작가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을 상영하고 토크쇼를 진행했던 일이 생각나는데요. '정은혜 작가는 덥고 추운 리버마켓에서 왜 몇 년 동안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가', '정은혜 작가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을 묻고 답하는 토크쇼는 단순한 토크쇼가 아니라 사람의 인정에 대한 욕구와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되는 자리였어요. 정은혜 작가에게 그림은 삶을 전환시키는 아주 중요한 매개도구였다고 해요. 그런 이야기는 영화를 관람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정은혜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소중한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2023년에는 '우리 삶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물'이라는 주제로 비장애예술인과 장애예술인이 함께 공연하는 것을 직관했는데요. '발달장애인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이 나왔는데, 대답은 예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증의 발달장애인이 얼마나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저마다 선택을 하고 저마다의 고민으로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자 합니다. 이 날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추는 춤을 보면서 함께 참여한 분들의 얼굴에 다양한 표정이 오고 감을 느꼈습니다. 예술은 이런 것이 좋습니다.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저 서로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죠. 이것이 제가 예술을 지원하고자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Q. 한국장애인복합문화센터를 운영하시면서 보람되거나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센터에서 매년 정성껏 진행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KT&G 상상마당에서 진행하고 있는 장애예술인 지원사업에 지역에서 발굴한 시각예술 장애인을 추천하는 거에요. 이 지원사업은 서울, 춘천, 부산 전시뿐만 아니라, 작가 멘토 지원, 200만원 상당의 컬렉션을 하는 사업입니다. 그래서 학교, 장애인거주시설, 협동조합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장애예술인을 발굴하여 추천하고 있습니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발달장애인을 추천해서 선정된 적이 있는데요. 이 발달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생활하는 동안 최고의 활력소가 되는 시간이었다고 해요. '작가님'이라는 호칭에 전시회 내내 상기되고 기뻐하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시설 내에서도 자신감있는 모습으로 누구보다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고 전해들었을 때 매우 기뻤습니다. 정신장애인 재활시설에 있는 정신장애인을 추천하여 선정되었던 때도 생각나네요. 평소 위생관리가 조금 소홀했던 당사자는 작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무엇보다 청결하고 깔끔하게 자기관리를 하고, 주위 동료들에게도 훨씬 더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는 원장님의 말씀이 참 기억에 남고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자립한 장애인이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춤을 예술인과 함께 준비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가르쳐 주고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는데요. 이후 장애인 당사자가 자립하여 지역사회에 한 발 더 나가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지역주민들이 장애인을 이웃으로 환대하며 함께 살아가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저희 센터가 추구하는 비전과 맞닿아있는 모습입니다. Q. 센터를 운영하다보면 뜻깊고 보람되는 날도 많지만, 어렵고 힘든 상황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각종 장애예술인 실태조사에도 나와 있는데요.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뿌리 깊은 차별이 있어요. 예술을 예술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장애인이 하면 동정과 시혜의 수준에서 본다는거죠. 장애예술인의 창의력, 속도 등을 이해하는 철학이 기반이 되어야 해요. 그래야만 장애예술인들이 창작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기반이 마련될 수 있는데, 아직까지 장애인의 장애특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예술 아카데미나 예술인들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센터에서는 장애예술에 대한 이해와 협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획적인 업무도 하지만, 다양한 예술인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유대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나서 직접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것 만큼 깊은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속도가 느리다는 생각은 하지만 이 또한 예전보다 많이 변화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장애예술인과의 평등한 관계에서 당사자성을 기반한 창작활동이 진행된다면 더욱 다양한 작품들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활동 자체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장애감수성 및 장애이해를 위한 워크숍(장애유형별, 예술장르별), 예술매개인 양성을 위한 중요기반 형성 프로그램이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이러한 예술활동이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경제활동에까지 이어져 장애인들의 독립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활발히 하기 위해서는 후원자들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Q. 대표님을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었던 강력한 동기가 됐던 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철강왕 카네기가 소장하고 있었던 개인 그림이 있어요. 모래 위에 배 한 척이 비스듬하게 있는 그림인데요. 그 그림 아래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The high tide will come. On that day, I will go out the sea.” (반드시 밀물은 오리라. 그날, 나는 바다로 나갈 것이다.) 언젠가 올 큰 파도를 배는 기다리고 있고, 그날을 위해 인내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나타내는 그림인데요. 지금은 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바뀌어야 하고, 같이 가고자 하는 부분이 힘들고 때로는 어렵기도 하지만, 카네기의 이 말을 떠올리면서 언젠가 '사회의 인식개선'이라는 큰 밀물이 올 때를 대비해 우리 센터는 존재하고자 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장애예술인들의 작품을 큰 규모로 기획하고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오티즘 엑스포에서 장애예술인 작품이 전시되었습니다. 전국의 발달장애인 관련자들이 그 그림을 보고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해요.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소규모로 전시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그런 기회를 가지는 장애예술인뿐만 아니라 기회를 갖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포함해서 큰 규모의 전시회를 열어보고 싶습니다. 그 전시회에서 많은 장애예술인들이 어떤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서 하는가를 경험하고, 그 작품들이 컬렉터들에게 모두 판매되고, 그 판매되는 과정 속에서 더 큰 선순환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예술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테마를 가지고 누구나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같이 생활할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4 셀리맘아트 전시회] 대학생 이서현 씨의 '한계'를 만나다

「제2회 셀리맘아트 전시회」에서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에 입학 예정인 이서현 씨를 만나 보았다. 이서현 씨는 이번 셀리맘아트 전시회에서 '한계'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서현 씨는 "어린 시절에 불상을 봤을 때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불교에 대해 학문적인 관심을 갖다보니 두려움이 존경의 감정으로 바뀌었다"며, "그렇지만 여전히 제 안에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이번 작품을 그리게 된 배경에 대해 전했다. 또,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가 존경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 사이에 벽은 허물어졌지만 여전히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한계라고 느껴졌다. 이런 한계의 감정을 녹여내고 싶었다"고 작품에 담긴 미지의 존재에 대한 감정과 인간의 한계에 대해 덧붙였다. 특히, "보통의 불상은 눈을 감고 웃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제 작품의 눈은 좋은 느낌만을 주지는 않는다. 눈을 통해서 숭배나 존경같은 긍정적 감정을 넘어 공포의 감정을 담아서 표현하고 싶었다"며 이번 작품에서 눈 부분에 집중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한계'라는 작품을 그릴 때 일부러 큰 캔버스를 사용했다. 그 이유는 평생을 살아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와 경외심의 감정을 충분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한계를 압도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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