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가 일하는 시대, 인간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 일자리의 소멸과 탄생 사이에서 다시 생각하는 노동의 가치
인공지능(AI)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림을 그리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몇 시간씩 걸리던 자료 조사와 분석이 몇 분 만에 끝나기도 하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작업을 AI와의 대화만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우리가 일하는 방식도 그만큼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와 불안이 공존한다. 누군가는 AI 덕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일자리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됐던 질문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과거의 기계가 주로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했다면, AI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겼던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의 일부까지 수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가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 앞으로의 노동시장은 어떤 모습으로 바뀌고,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사라지는 일자리와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
기술이 발전하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기술은 기존의 직업을 사라지게 하는 동시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자리를 만들어왔다.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마부의 역할은 줄었지만 운전기사와 자동차 정비사, 도로 설계자와 같은 새로운 직업이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
AI 역시 노동시장에 비슷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25년 발표한 『미래 일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기술 발전과 인구구조 변화, 경제적 환경의 변화 등으로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약 1억70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9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전체적으로는 약 7800만 개의 일자리가 증가하는 셈이다.
물론 이 숫자가 AI만의 영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구 고령화와 경제구조 변화, 친환경 산업의 성장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반영된 결과다. 또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고 해서 기존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모두 그 자리로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목할 부분은 일자리의 수보다 일의 내용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AI와 데이터 분석, 사이버보안 분야에서는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반복적인 자료 입력이나 단순 행정 업무는 점차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사람을 직접 돌보고 가르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의료와 돌봄 분야의 수요가 늘어나고, 교육 역시 사회가 지속되는 한 필요한 활동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의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직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AI가 어떤 직업을 대체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실제 변화는 조금 더 복잡하다. 하나의 직업에는 여러 종류의 업무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AI가 그중 일부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해서 직업 전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25년 발표한 연구에서도 이러한 점을 강조했다. 전 세계 노동자 네 명 중 한 명가량이 생성형 AI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직업은 완전히 사라지기보다 업무의 내용과 수행 방식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기자의 일을 생각해 보자. 과거에는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 이제는 AI를 활용해 방대한 자료를 빠르게 분석하고 기사의 초안을 작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사안을 보도할 가치가 있는지, 정보가 사실인지, 보도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기자의 몫이다.
의료 현장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난다. AI가 의료영상이나 검사 결과를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환자가 겪는 고통을 이해하고 치료 방향을 결정하며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일에는 의료인의 전문성과 판단이 필요하다.
이처럼 AI는 인간이 수행하던 업무의 일부를 대신하면서 동시에 인간이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주고 있다.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일을 직접 처리했는가보다 어떤 문제를 발견하고, 어떤 판단을 내렸으며, 그 결과에 얼마나 책임 있게 대응했는가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AI와 함께 일하는 새로운 동료의 등장
최근 기업들은 AI를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도구가 아니라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시스템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것이 '디지털 노동(Digital Labor)'이라는 개념이다.
디지털 노동은 소프트웨어와 AI가 인간의 업무를 자동화하거나 일정한 범위에서 스스로 처리하는 형태를 말한다. 특히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일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AI 에이전트가 등장하면서 조직의 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025년 발표한 『업무 동향 지수』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기업 리더의 82%는 향후 12~18개월 안에 디지털 노동을 활용해 조직의 업무 역량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했다.
예를 들어 한 직원이 시장조사 보고서를 작성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전에는 관련 자료를 찾고, 통계를 정리하고, 내용을 분석해 보고서로 만드는 과정 대부분을 직접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AI 에이전트가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 결과를 정리하며 초안을 작성할 수 있다. 직원은 그 결과가 정확한지 확인하고, 조직에 필요한 방향을 결정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면서 AI 에이전트에게 업무를 배분하고 결과를 관리하는 '에이전트 보스(Agent Boss)'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업무를 조율하듯 AI의 업무를 관리하는 역할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모든 조직이 이러한 방식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업무의 성격과 기술 도입 비용, 보안과 책임 문제에 따라 변화의 속도는 다를 것이다. 다만 앞으로의 직장에서는 AI를 얼마나 능숙하게 사용하는가뿐 아니라, AI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역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직업은 어디에서 만들어질까
AI가 일상과 산업 전반에 확산되면서 이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AI를 관리하고 검증하는 일이다. AI가 제시한 결과가 정확한지, 특정 집단에 불리한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지, 개인정보를 침해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만들어내지는 않는지 확인하는 전문가가 필요해지고 있다. AI 모델 평가, 위험관리, 윤리와 거버넌스 관련 업무가 여기에 해당한다.
인간과 AI가 함께 일하는 방식을 설계하는 역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업의 업무 가운데 어떤 부분을 AI에 맡기고, 어떤 부분은 사람이 직접 수행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조직과 사람, 업무의 흐름을 함께 이해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교육과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AI가 학생의 수준에 맞춰 학습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면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학생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을 이끄는 데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예술가 역시 AI를 창작 도구로 활용하면서 무엇을 표현하고 어떤 의미를 전달할 것인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역할이 모두 독립된 직업으로 발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업무는 새로운 직업이 되겠지만, 어떤 업무는 기존 직업 안에 자연스럽게 포함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직업의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요구되는 능력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기술을 다루는 능력과 함께 사람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석하며, 서로 다른 생각을 연결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일을 배우는 기회마저 사라진다면
AI가 가져오는 변화에는 한 가지 우려도 있다. 바로 일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의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대부분 작은 일에서 출발해 경험을 쌓는다. 신입사원은 자료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조직의 업무를 이해한다. 신입 기자는 보도자료를 검토하고 기사를 쓰면서 취재와 편집의 원칙을 익힌다. 개발자 역시 비교적 단순한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복잡한 시스템을 다룰 수 있는 역량을 키운다.
그런데 AI가 이러한 기초 업무를 빠르게 대신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업의 입장에서는 업무 효율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처음 일을 배우는 사람에게는 경험을 쌓을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숙련된 전문가가 되기 위해 거쳐야 했던 과정이 사라지는 것이다.
OECD의 『Skills Outlook 2025』에서도 생성형 AI가 일부 온라인 노동시장에서 초급 업무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키는 현상이 소개됐다. 기술이 노동을 편리하게 만드는 동시에 새로운 인력이 성장할 수 있는 경로를 좁힐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는 단순히 청년 일자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의 초급 인력이 경험을 쌓지 못한다면 미래에 필요한 숙련된 전문가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기업은 AI를 통해 업무를 효율화하는 것과 함께 사람을 교육하고 성장시키는 과정도 고민해야 한다. 기술이 대신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더라도 인간이 직접 경험하고 배우는 과정의 중요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앞으로의 노동시장에서는 같은 직업에 종사하더라도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업무의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
AI를 활용해 자료를 분석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사람은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기술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거나 새로운 업무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변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2030년까지 노동자가 보유한 핵심 직무 역량의 약 39%가 변화하거나 활용 방식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AI와 데이터 관련 역량이 중요해지는 동시에 창의적 사고, 유연성, 협업 능력도 미래의 핵심 역량으로 제시됐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동일한 환경에 놓여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교육 여건이 다르고, 세대와 지역에 따라서도 디지털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에는 차이가 있다.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AI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격차가 커진다면 기술 발전이 오히려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AI 시대의 교육은 특정 전문가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청년뿐 아니라 중장년층도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어야 하고,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노동자가 변화에 적응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AI를 배우는 일이 일부 사람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에 머물지 않고, 누구나 변화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인간의 가치
AI가 더 많은 일을 수행하게 되면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게 될까.
오랫동안 우리는 일을 잘한다는 것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능력과 연결해 왔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해내고, 실수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AI가 이러한 영역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일, 복잡한 갈등 속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일은 단순히 처리 속도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교사가 학생의 작은 변화를 발견하고, 의료인이 환자의 두려움을 살피며, 상담자가 상대방의 말 속에 담긴 감정을 이해하는 과정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관계의 가치는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인간적인 능력이 중요하다고 해서 관련 직업의 처우가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돌봄과 교육처럼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결국 AI 시대에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일이 기계보다 우수한가만이 아니다. 사회가 어떤 노동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가치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AI 이후의 시대, 인간은 어떻게 일하며 살아갈까
AI는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다. 지금은 인간이 직접 수행하는 많은 업무가 언젠가는 자동화될 수 있고, 아직 이름조차 없는 새로운 직업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곧바로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생산성이 높아져도 그 성과가 일부에게만 집중된다면 많은 사람은 기술의 혜택보다 불안을 먼저 경험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더라도 그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지 않다면 변화는 또 다른 격차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AI 시대의 노동 문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기업은 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성장과 고용을 함께 고려해야 하고, 정부는 직업 전환과 재교육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교육기관도 변화하는 환경에서 스스로 배우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와 경쟁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기계보다 빠르게 계산하고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AI가 잘할 수 있는 일은 기술의 도움을 받고, 인간은 그 기술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고민할 수 있다. 더 많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노동시장에서 중요한 질문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얼마나 빼앗을 것인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AI가 만들어내는 변화 속에서 인간은 어떤 기회를 얻고, 그 기회를 어떻게 함께 나눌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AI 혁명이 진정한 진보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이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야 한다.
결국 미래의 노동시장을 결정하는 것은 기술의 능력만이 아니다. 그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하고, 변화의 성과를 누구와 나눌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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