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원이 15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출생 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을 둘러싼 심리에 들어가며 미국 헌법 제14차 수정조항에 대한 오랜 해석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이 비시민권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의 시민권을 제한하려 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지를 두고 벌어지는 법적 공방으로, 그 파장이 미국의 시민권 제도 전체에 미칠 수 있다.
2시간 넘게 이어진 구두 변론에서 대법관들은 행정명령의 법적 근거뿐 아니라 전국적인 가처분 명령의 타당성과 집단 소송의 적절성 등 다양한 쟁점을 놓고 깊은 고심에 빠졌다. 보수와 진보 양측의 대법관들이 서로 다른 법적 원칙과 헌법 해석을 내세우며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습이었다.
출생 시민권과 미국 헌법 제14차 수정조항의 핵심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이른바 '속지주의(Birthright Citizenship)'는 1868년 제정된 헌법 제14차 수정조항에 근거한다. 이는 남북전쟁 이후 노예 출신 흑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되었고, “미국에서 태어나고 관할권에 속하는 모든 사람은 미국의 시민이다”라는 문구를 담고 있다.
이 조항은 1898년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v. 웡 킴 아크사건에서 대법원에 의해 명확히 해석되었으며,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도 시민권을 가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후 20세기 동안 양당 정권은 이 조항을 대체로 그대로 유지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부터 지속적으로 출생 시민권 폐지를 주장해 왔고, 퇴임 전 서명한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부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에게 여권 및 시민권 서류 발급을 금지하고자 했다.
대법원, 전국적 금지 명령과 집단 소송 사이서 갈등
CNN과 외신에 따르면 이번 소송의 핵심은 단순한 정책의 위헌 여부를 넘어, 하급 법원이 행정명령을 전국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가? 하는 사법권의 경계에 대한 것이다.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전국적 가처분 명령보다는 집단 소송(class action)을 통한 대응이 더 법리에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집단 인증만으로도 원고들이 충분히 광범위한 구제를 받을 수 있다”며, 현재처럼 하나의 판사가 전국 정책을 중단시키는 ‘패치워크식 판결’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나 진보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트럼프 행정명령이 대법원 판례 4건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며 “헌법 질서를 훼손하는 명령에 대해 법원이 손을 놓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행정부 대리인에게 행정명령의 법적 근거가 ‘참신하고 민감하다’는 양보를 이끌어냈으며, “그렇다면 이는 명확하지 않다는 것 아닌가요?”라며 압박했다. 배럿은 최근 트럼프 관련 사건들에서 결정적인 캐스팅보터로 부상하고 있다.
현실적 실행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
일부 보수 대법관들도 정책의 현실적인 실행 가능성을 우려했다. 캐버노 대법관은 “명령이 내일 발효된다면 병원에서는 신생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며 행정부 측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사우어 법무차관이 “연방 관료들이 방법을 고안할 것”이라 답하자, 캐버노는 실소를 머금은 듯 “예를 들어요?”라며 재차 캐물었다.
사뮤엘 알리토와 클래런스 토마스 대법관 등 일부 보수파는 전국적 금지 명령 자체가 지나치게 사법 권력을 확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토마스는 “우리는 1960년대까지 전국 명령 없이 살아남았다”고 지적하며 사법권의 자제를 주문했다.
결론은 아직… 판결 시점은 불확실
이번 사건은 행정부의 권한, 사법부의 권한, 그리고 시민권이라는 미국 사회의 근본 원칙이 충돌하는 드문 사례다. 케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제 생각에 진짜 우려되는 점은 당신의 주장이 적어도 제 생각에는 우리 사법 제도를 '날 잡아봐' 식의 체제로 바꿔놓는 것 같다는 점"이라며, “정부가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누구나 변호사를 선임하고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변론은 긴급하게 다뤄졌지만, 대법원이 언제 판결을 내릴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복잡한 헌법적 해석이 얽힌 이번 사건은 다음 달 말까지도 결론이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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