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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년 전 도자기 문양에 담긴 수학... 문자 이전 인류의 사고력을 보여주는 단서일까?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01.2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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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Halaf), 기원전 약 5600~5000년, 할라프 도공들은 옅은 황갈색 바탕에 산화철 안료로 붉은색과 검은색의 정교한 문양을 구현한 뛰어난 품질의 도자기를 제작했으며, 이 토기 조각은 두 개의 메토프 장식과 내부의 붉은 띠가 그 기술적·미적 우수성을 잘 보여준다. [사진=The Met homepage]


인류는 언제부터 수학적 사고를 하기 시작했을까.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문자와 숫자가 기록으로 남기 시작한 기원전 3000년경 이후를 수학의 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 고고학 연구는 이 통념을 더 먼 과거로 끌어올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연구진은 기원전 6200~5500년 사이, 약 8,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살았던 할라피안(Halafian) 문화권 사람들이 제작한 도자기 문양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이미 기본적인 수학적 사고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세계 선사시대 저널(Journal of World Prehistory)에 게재됐다.


연구진이 조사한 대상은 1899년 이후 약 100년에 걸쳐 발굴된 29개 할라피안 유적지에서 출토된 토기 조각이다. 이 가운데 식물, 특히 꽃을 묘사한 문양이 눈에 띄게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꽃들이 무작위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꽃잎의 개수가 일정한 수적 규칙을 따른다는 사실이었다.


연구진에 따르면, 분석된 375개의 조각 대부분에서 꽃잎의 수는 4개, 8개, 16개, 32개, 때로는 64개로 나타났다. 이는 모두 2의 거듭제곱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러한 숫자 배열은 원형 공간을 정확히 반으로, 다시 반으로 나누는 방식 없이는 구현하기 어렵다. 연구진은 이 점에 주목해, 해당 문양들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대칭과 반복에 대한 인식, 그리고 공간을 균등하게 분할하는 사고 능력을 반영한다고 해석했다.


연구를 이끈 고고학자 요세프 가르핀켈 교수는 “수백 킬로미터에 걸친 여러 지역에서 동일한 숫자 규칙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는 “의도적인 선택과 사고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공동 저자인 사라 크룰위치 연구원 역시 이러한 패턴이 “문자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에 수학적 사고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특히 연구진은 이 문양들이 수메르 문명에서 사용된 60진법이나, 그 이전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10진법 체계와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신 할라피안 토기에서 나타난 수 개념은, 보다 원초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사고, 즉 ‘나누기’와 ‘균형 맞추기’에서 출발한 수학의 초기 단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당시 사회 구조와도 연결된다. 연구진은 할라피안 문화가 약 4,000년에 걸쳐 지속된 비교적 안정적이고 복잡한 마을 공동체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수확물을 나누거나 공동 경작지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공간과 자원을 공정하게 나누는 감각이 필요했고, 이러한 실용적 필요가 시각적·예술적 표현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토기에 그려진 식물들이 곡식이나 과일 같은 식용 작물이 아니라, 꽃과 같은 순수한 자연 형태라는 사실이다. 이는 농업이나 의례보다는 미적 표현에 가까운 선택으로 보이며, 연구진은 이를 “인류가 식물 세계를 예술적 가치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초기 사례”로 해석한다. 대칭적인 꽃의 형태는 인간의 인지 구조와 잘 맞아떨어지며, 수학적 사고를 시각화하기에 적합한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학계의 모든 전문가가 이러한 해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메소포타미아 수학사를 연구해온 일부 학자들은, 이 문양들이 수학 체계라기보다는 대칭을 선호하는 미적 감각의 결과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원을 반으로 나누고 다시 나누는 행위는 매우 직관적인 작업이며, 이를 곧바로 기하급수적 수열이나 체계적 수학으로 해석하기에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수학은 과연 숫자와 문자로 기록되었을 때 비로소 시작된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질서를 부여하려는 과정 속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사고 방식일까.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고등 수학의 기원을 보여주는 증거는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대신 이는 수학이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점진적으로 진화해 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실생활과 예술, 대칭과 균형에 대한 감각 속에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한다.


8,000년 전 도자기에 새겨진 꽃 문양은, 숫자도 문자도 없던 시대의 사람들이 이미 세상을 ‘나누고’, ‘맞추고’, ‘반복하며’ 이해하고 있었음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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