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아이티 대표팀 유니폼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디자인 수정 사건을 넘어 올림픽 정신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균형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아이티계 이탈리아 디자이너 스텔라 진이 디자인한 스키복에는 1804년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 아이티를 이끈 혁명 지도자 투생 루베르튀르의 기마 초상이 담겨 있었다. 해당 이미지는 아이티 출신 작가 에두아르 뒤발-카리에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아이티의 독립과 저항 그리고 자긍심을 상징하는 요소였다.
그러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무대에서의 정치적·종교적·인종적 선전 금지 원칙을 근거로 문제를 제기했다. 혁명 지도자의 이미지는 역사적 의미와 별개로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는 최근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상징과 메시지 표현을 둘러싼 기준이 한층 엄격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개막식을 하루 앞두고 유니폼은 전면 수정됐다. 이탈리아 장인들이 기능성 원단 위에 밤새 손으로 다시 그림을 그려 넣었고 최종 승인된 디자인에는 기수가 사라진 말과 푸른 하늘만이 남았다. 인물은 지워졌지만 그 부재는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겼다.
스텔라 진은 “유니폼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책임의 표현”이라며, 짧은 원단 안에 아이티의 예술과 문화 그리고 회복의 역사를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직접적인 인물 묘사는 사라졌지만 수정된 의상 곳곳에는 여전히 아이티의 정체성이 스며 있다. 서아프리카 전통에서 유래한 여성용 머리쓰개 ‘티뇽’, 노예들이 아프리카에서 가져올 수 있었던 소지품에서 영감을 받은 장신구, 시장 중심의 공동체 문화를 상징하는 커다란 주머니 등은 식민의 기억과 회복의 서사를 상징적으로 담아냈다.
선수들 역시 이 옷을 단순한 경기복이 아닌 ‘존재의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 스티븐슨 사바트는 세계 무대에서 작은 나라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전했고 알파인 스키 선수 리처드슨 비아노는 이를 “용감한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이번 사례는 올림픽이 지향하는 ‘정치적 중립’과 개인·국가의 ‘정체성 표현’ 사이의 긴장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올림픽은 전 세계가 모여 경쟁을 넘어 우정과 평화를 나누는 장이다. 동시에 선수와 참가국에게는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소개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외신에 따르면 스텔라 진은 IOC의 결정을 비판하기보다 “규칙이 오히려 창의성을 높였다”고 해석했다. 제한이 있었기에 더 깊이 고민했고 더 상징적인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동계올림픽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맞닿는다.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지닌 이들이 같은 규칙 아래 경쟁하면서도 각자의 이야기를 존중받는 자리가 중요하다.
결국 이번 논란은 표현이 완전히 사라진 사건이 아니라 표현의 방식이 변화한 사례로 남았다. 인물의 초상은 지워졌지만 그 정신은 디자인 곳곳에 스며들어 새로운 상징으로 재탄생했다.
동계올림픽 정신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존중과 연대 그리고 다양성의 공존을 의미한다. 아이티 대표팀의 유니폼은 그 가치가 때로는 긴장 속에서 그러나 대화를 통해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BEST 뉴스
-
자연과 전통을 아이들의 시선으로…제4회 청소년환경예술전 ‘Memory for Tomorrow’
▲2026 제4회 청소년환경예술전 [사진=셀리맘아트] 인공지능이 이미지와 예술작품까지 만들어내는 시대, 아이들은 미래에 무엇을 기억하고 남기고 싶어 할까. 자연과 생명,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청소년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제4회 청소년환경예술전 ‘Memory for Tomorrow’가 서... -
[현장] 제4회 청소년환경예술전 《Memory for Tomorrow》, 청소년들이 지키고 싶은 것들에 대하여
▲2026 제4회 청소년환경예술전 1층에 전시된 작품들 [사진=ESG코리아뉴스] 사라져가는 자연과 생명, 잊혀가는 전통과 문화를 예술로 기억하고 미래로 이어가려는 청소년들의 시선이 한자리에 모였다. ‘2026 제4회 청소년환경예술전 《Memory for Tomorrow》’ 개막식... -
[문화의 현장] 이경미 박사가 기획한 ‘도시시작’…평창동의 길, 몸으로 다시 만나다
▲ 이경미 박사가 기획한 ‘도시시작’ 평창동의 길, 몸으로 다시 만나다중 가나아트센터 계단에서의 머포먼스 모습. [사진=이경미 박사 제공] 늘 걷던 길도 걷는 방식을 바꾸면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계단에서 몸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고, 손끝으로 산등성이의 선을 따라가며, 오... -
[초콜릿, 문명을 만나다 ①] 초콜릿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마야 신화 속 카카오
[편집자주] 〈초콜릿, 문명을 만나다〉는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의 전시와 소장 자료를 따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초콜릿의 뿌리를 찾아가는 ESG코리아뉴스의 기획연재이다. 카카오의 기원에서 출발해 마야의 신화와 문화, 아즈텍 사회의 카카오, 유럽으로 건너간 뒤 달라진 초콜릿, 오늘날 한 조각의 초콜릿... -
[갤러리] 청년 환경예술가 오유나의 'Fragments of Self'
▲오유나 作, Fragments of Self [사진=오유나] 〈Fragments of Self〉를 처음 구상했을 때 저는 무의식과 내면에 존재하는 여러 모습의 ‘나’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나의 얼굴만으로는 경험과 기억,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저 자신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여러... -
[초콜릿, 문명을 만나다 ②] 카카오는 왜 ‘신의 선물’이 됐을까…아즈텍 신화(Aztec Mythology)와 케찰코아틀(Quetzalcoatl)
[편집자주] 〈초콜릿, 문명을 만나다〉는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의 전시와 소장 자료를 따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초콜릿의 뿌리를 찾아가는 ESG코리아뉴스의 기획연재이다. 1편에서는 약 5,300년 전 남미 상부 아마존에서 확인된 카카오 이용의 흔적과 마야 문명에서 카카오가 음식과 의례, 신화적 세계관 속에...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추천뉴스
사람들
more +-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①] “내가 맡긴 돈은 어디로 갈까”…이상진 대표가 그리는 가치금융의 미래
[편집자 주] 세상의 변화는 익숙한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로... -
인류의 달 착륙 뒤에 있었던 여성 과학자…마거릿 해밀턴, 90세로 별세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처음 달에 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에는 보이지 ... -
오바마 “책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인생 바꾼 6권 다시 읽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책들을 다시 펼친다... -
UN 인권사무소, 말리 원주민 지도자 우무 디코 조명… “기후 정의와 원주민 권리 향상에 앞장”
유엔 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가 7일 저녁 공식 X 계정을 통해 말리 출...
오피니언
more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㉝ CP 우수기업 인센티브 활용 전략: 혜택을 넘어 기업 가치 상승의 엔진으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등급평가에서 AA 이상의 우수 등급을 획득한... -
[강윤영의 사람을 살리는 콘텐츠] ② 불안의 시대,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를 만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 -
[이경미의 AI와 미래공간 ①] AI가 바꾸는 공간, 인간의 삶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인공지능(AI)과 함께 제안서를 작성하는 풍경은 이...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㉜ CP 우수기업 인센티브 체계와 과징금 감경 규정: 준법경영이 가져다주는 강력한 재무적·행정적 혜택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는 상징적 포상이...
기획 / 탐방
more +-
[ESG탐방] 농업 생산지가 관광 자원으로… 홋카이도 ‘패치워크 로드’와 ‘팜 토미타’가 보여준 농촌 경관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의 ‘패치워크 로드’와 나카후라노의 ‘팜 토미... -
[ESG탐방] 화산 지질이 만든 지하수의 흐름… 비에이 ‘시로가네 폭포’가 보여준 자연자산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의 시로가네 온천 지역에는 화산 지질과 지하수가 ... -
[ESG탐방] 방재시설에서 관광자원으로... 자연과 함께 만들어진 홋카이도 비에이 ‘청의 호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에 위치한 청의 호수(아오이이케·青い池)는 처... -
[ESG탐방] 아사히카와 디자인센터, 지역 산업을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연결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는 가구와 목공산업이 발달한 도시다. 홋카이도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