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키워드

  •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예술과 문화를 읽다 ㉛] 웃음과 욕망, 그리고 노동계급의 초상… 베릴 쿡(Beryl Cook)은 왜 지금 다시 소환되는가

  • 유연정 기자
  • 입력 2026.05.11 13:56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1.jpg
▲ 아직 본격적인 여름은 아니지만, 오늘처럼 햇볕을 쬐니 정말 좋았어요. 마치 이 두 햇살 애호가들처럼요! 베릴 쿡의 인스타그램 작품 설명[사진=Beryl Cook 인스타그램]

 

2026년 영국 미술계는 한동안 ‘대중적이지만 가볍다’는 이유로 미술사의 주변부에 머물렀던 화가를 다시 주목하고 있다. 바로 베릴 쿡(Beryl Cook)이다.


영국 상자(The Box)에서 2026년 1월 24일부터 5월 31일까지 개최되는 '베릴 쿡: 자부심과 기쁨(Beryl Cook: Pride & Joy)'은 그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추억의 전시가 아니다. 오히려 영국 사회가 그동안 외면해왔던 노동계급 문화와 여성의 일상, 그리고 주변부의 욕망을 다시 읽어내는 문화적 재평가에 가깝다.


이번 전시에는 80여 점 이상의 회화 작품과 희귀한 개인 소장품, 가족 아카이브 자료들이 공개된다. 특히 플리머스 시내 곳곳에는 그녀의 그림 속 인물들을 실제 크기의 3D 조형물로 재현한 설치 작업도 함께 진행되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베릴 쿡 세계’로 확장된다.


베릴 쿡의 그림을 처음 보면 사람들은 대개 웃음을 터뜨린다.


통통한 몸매의 여성들이 술집에서 춤을 추고, 친구들과 떠들고, 시장을 거닐고, 담배를 피우며 웃고 있다. 남녀노소는 물론 LGBTQ+ 커뮤니티의 인물들까지 등장하는 그녀의 화면은 언제나 시끌벅적하고 생생하다. 전통적인 미술이 이상화된 몸과 고상한 취향을 추구했다면, 베릴 쿡은 오히려 ‘평범하고 과장된 인간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대표작인 '거리 시장 1985(Street Market1985)' 역시 그렇다. 시장을 가득 채운 인물들은 우아하거나 세련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 있다. 떠들고, 소비하고, 구경하고, 웃는다. 베릴 쿡은 바로 그 활기 속에서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녀는 독학 화가였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고, 런던 화단의 엘리트 네트워크에도 속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평범한 시민들의 삶 속에서 예술의 소재를 발견했다. 영국 남부 항구도시 플리머스에서 생활했던 그녀는 술집과 거리, 시장과 클럽, 노동계급 여성들의 모임 같은 공간들을 집요하게 관찰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랫동안 미술계의 평가절하를 받아야 했다.


당시 영국 미술계는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 지적인 담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다. 반면 베릴 쿡의 그림은 지나치게 대중적이고 유머러스하며 ‘키치(Kitsch)’하다는 이유로 본격 미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녀의 그림 속 과장된 신체와 익살스러운 장면들은 종종 가벼운 삽화 정도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2026년의 시선은 다르다.


오늘날 미술계는 오히려 베릴 쿡의 작품 안에서 당대 영국 사회의 중요한 문화 기록을 발견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젠더와 계급, 성적 정체성, 지역 문화라는 관점에서 그녀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한다.


그녀가 그린 여성들은 전통적인 미의 기준에 순응하지 않는다. 날씬하지도 않고, 조용하지도 않다. 대신 웃고 떠들며 자기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이는 당시 영국 중산층 문화가 요구하던 여성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LGBTQ+ 공동체에 대한 그녀의 시선이다. 베릴 쿡은 게이 바와 나이트클럽 문화를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묘사했다. 그것은 사회적 소수자를 exotic한 대상으로 소비하는 시선이 아니었다. 오히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으로 바라보는 태도에 가까웠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연구자들은 그녀를 단순한 대중 화가가 아니라 “영국 도시문화의 사회적 기록자”로 재평가하고 있다.


이번 전시가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베릴 쿡: 자부심과 기쁨'은 단지 한 화가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누가 예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를 다시 묻는다. 귀족과 엘리트, 이상화된 몸과 고급 취향만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 혹은 술집에서 웃고 떠드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역시 예술이 될 수 있는가.


베릴 쿡은 오래전 이미 자신의 그림으로 대답했다.


예술은 위대한 영웅의 역사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웃음과 욕망, 그리고 살아 있는 하루의 기록이어야 한다고.


그래서 그녀의 그림은 지금 다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삶은 완벽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시끄럽고 우스우며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고.


ⓒ ESG코리아뉴스 & esgkorea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전체댓글 0

추천뉴스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⑳] 치유산업, 농촌의 미래를 바꾸는 새로운 성장동력
  • 세계 최대 입자물리연구소에 춤추는 시바신…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곳
  • 교황 레오 14세, 폐암 진단으로 수술…바티칸 “합병증 없이 마무리”
  • 美 재무부, 뱅크오브아메리카에 12억 달러대 제재…자금세탁 방지체계 부실 드러나
  • [이슈 포커스] 조희대 대법원장 잇단 고발, 사법부의 독립과 책임을 묻다
  • 서울 서남권 청소년 위한 ‘잇다 페스타’ 개최…음악·스포츠·환경 등 체험 프로그램 운영
  • 서울시, 광화문광장서 찾아가는 취업지원 서비스 운영…AI 면접·맞춤형 상담 제공
  • 남도예술정원, 완도·해남 잇는 ‘인문 정원 투어’ 선보인다…18일 시범운영
  • 국립극장, 24일 파주 헤이리서 가을 공연예술축제 개최…전 프로그램 무료
  • 美 아마존 데이터센터 확장에 지하수 오염 논란…주민 건강 우려 확산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예술과 문화를 읽다 ㉛] 웃음과 욕망, 그리고 노동계급의 초상… 베릴 쿡(Beryl Cook)은 왜 지금 다시 소환되는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