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재명 정부와 한성숙 국무총리가 주택 신속공급을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한 채라도 더, 하루라도 빨리”라는 표현에는 정부의 의지가 압축돼 있다. 인허가부터 착공까지 일정을 관리하고, 여러 기관에 걸쳐 지연되는 문제를 풀어 약속한 주택을 실제 공급으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주택 부족과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공급 확대는 분명 필요하다. 서울과 수도권의 수급 불균형을 외면한 채 주택가격 안정만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 채라도 더 공급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한 채를 과연 누가 살 수 있는가’가 아닐까.
대한민국의 주택 문제는 단순히 주택의 숫자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만은 아니다. 어디에 주택이 공급되는지, 얼마에 공급되는지, 그리고 정작 주거 안정이 절실한 계층이 그 주택에 접근할 수 있는지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
특히 LH·SH·GH 등 공공기관이 공급하는 주택이라면 이 질문은 더욱 중요해진다. 공공주택의 존재 이유는 민간시장이 해결하기 어려운 국민의 주거 문제를 보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수도권 공공분양 가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26년 공급된 남양주왕숙2 A-3블록 공공분양주택의 분양가는 전용 59㎡가 최고 5억2793만원, 74㎡ 6억4611만원, 84㎡는 7억3245만원에 이른다.
물론 주변 민간 아파트 가격과 비교하면 공공분양의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고 특별공급과 각종 금융지원 등을 통해 실수요자의 진입 가능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도 있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 청년과 신혼부부의 통장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이나 이제 가정을 꾸리는 신혼부부가 5억원, 6억원, 7억원에 이르는 주택을 구입하려면 얼마의 자기자본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부모의 지원이나 상당한 자산 축적 없이 가능한 일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대출이 가능하다는 것이 곧 주거 문제가 해결됐다는 뜻도 아니다.
자기자본이 부족한 청년과 신혼부부가 수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한다면 이후 수십 년 동안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 소득의 상당 부분이 주거비와 금융비용으로 빠져나가면 결혼과 출산, 육아, 교육은 물론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와 소비까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집 한 채를 마련했다는 안정감 대신 평생에 가까운 부채를 떠안아야 비로소 주거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과연 건강한 주거 시스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우려되는 것은 공공택지에서조차 주택가격이 실수요자의 소득 수준과 멀어질 경우다.
공공이 공급하는 주택마저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과 소득을 가진 사람만 접근할 수 있다면 청년·신혼부부·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사다리의 역할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 공공주택이 장기적인 주거 공간보다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생긴다.
물론 공공분양에는 전매제한과 거주의무 등 투기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장치가 존재한다. 따라서 공공분양이 곧바로 기성세대의 ‘갈아타기’나 투기 수단이 된다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정책은 제도의 취지만으로 평가해서도 안 된다. 실제로 누가 당첨되고, 누가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난 뒤 누구에게 자산가치 상승의 혜택이 돌아가는지까지 살펴봐야 한다.
공급량에서 ‘주거 접근성’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제 우리 주택정책의 목표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몇 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숫자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국민이 소득 수준에 맞춰 실제로 거주할 수 있는 ‘주거 접근성(Housing Affordability)’을 정책의 핵심 지표로 삼아야 한다.
특히 청년·신혼부부·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다면 5억~7억원짜리 주택을 공급하고 대출을 연결하는 방식만이 답인지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공이 토지를 확보하고 개발이익을 최소화하며 토지임대부 주택, 지분적립형 주택, 장기 공공임대, 환매조건부 주택 등 다양한 방식을 결합해 2억~3억원 안팎에서도 접근할 수 있는 주택 모델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다만 2억~3억원이라는 가격을 전국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다. 수도권의 높은 토지가격과 건축비를 고려하면 재정 투입이나 토지 소유구조의 변화 없이 가격만 낮추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주택 건설비 산정의 기초가 되는 기본형건축비와 주요 자재 가격도 정부가 정기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단순한 ‘분양가 인하’가 아니라 주택을 소유하고 이용하는 방식 자체의 혁신이다.
국가는 토지를 보유하고 국민은 건물만 소유하는 방식, 처음부터 집 전체를 사는 대신 일정 지분을 취득하고 소득 증가에 따라 지분을 늘려가는 방식, 시세차익 일부를 공공이 회수하는 대신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는 방식, 20~30년 이상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는 방식 등 여러 선택지를 검토할 수 있다.
핵심은 하나이다. 집을 사기 위해 먼저 큰돈을 가진 사람이 될 필요가 없는 주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의 주거 문제가 수도권에 집을 더 짓는 것만으로 해결될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주택 문제를 계속 서울과 수도권 안에서 공급을 늘리는 방식으로만 해결하려 한다면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라는 또 다른 구조적 문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일자리와 교육, 의료, 문화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이동하면 주택 수요가 증가한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신도시를 건설하고 교통망을 확충하면 수도권의 생활권은 다시 넓어진다. 그리고 더 많은 인구와 자본이 수도권으로 모인다.
이러한 순환을 끊지 못한 채 수도권 주택 공급량만 늘리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주택정책은 국토균형발전, 지역 일자리, 교육과 의료 인프라, 교통정책과 함께 설계돼야 한다. 사람들이 서울에 살지 않아도 삶의 기회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한 주택정책이다.
정부가 “한 채라도 더, 하루라도 빨리” 공급하겠다는 것은 국민에게 필요한 약속이다. 그러나 이제 그 문장 뒤에 하나를 더 붙여야 한다. ‘청년, 신혼부부, 저소득 층의 서민도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집을 공급하겠다’는 약속이다.
공급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급의 목적이다. 공공주택 정책의 성공은 몇 만 호를 지었느냐만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집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 과도한 부채 없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됐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청년이 자신의 미래를 담보로 잡혀야 집을 얻고, 신혼부부가 수십 년의 소득을 금융기관에 약속해야 비로소 주거 안정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완성된 주거복지라고 보기 어렵다.
집은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는 공간이어야 한다. 집 때문에 삶의 다른 가능성을 포기하게 만드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주택정책도 이제 ‘얼마나 많이 공급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하면 평범한 국민이 큰 빚 없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가’로 질문을 바꿀 때이다.
그 질문에서 한국형 주거혁신은 시작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I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과 예술, 문학,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인간과 공간의 본질을 탐구해 온 공간철학자이자 건축가이다. 대학에서 31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과 학문 연구에 헌신하였고, 그 공로로 국가로부터 근정포장을 수훈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며, 홍익대학교 건축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 「해체주의 건축의 공간철학적 의미체계」를 통해 ‘공간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을 개척했으며, 이를 통해 직관과 반성을 바탕으로 공간과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철학적 사유 체계를 제시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ESG위원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약 2년 7개월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사회 의장과 비상임이사, LH ESG 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UC버클리) 건축대학 뉴미디어센터 방문학자로 디지털 건축을 연구하며 미래 건축과 기술, 인간 감성의 융합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 『건축은 나무다』·『건축은 선이다』, 건축 전문서 『Archiroad』 1권(Hyun)·2권(Sun)·3권(Hee), 철학 인문서 『철학의 위로』, 공동연구 저서 『시그널 코리아 2024』·『시그널 코리아 2025』 등이 있으며, 건축과 철학, 문학을 아우르는 깊이 있는 통찰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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