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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⑰] 생태계의 젠가게임, 어느 순간 인류의 식탁이 무너진다

  • 남재철
  • 입력 2026.09.21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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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물다양성이 무너지면 밥상도 무너진다…‘6번째 대멸종’이 던지는 경고
  • 탄소중립만으로 충분한가…ESG가 생물다양성과 식량안보를 봐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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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계의 젠가게임, 어느 순간 인류의 식탁이 무너진다 [사진=남재철, Ai]

  

기후변화가 심각해질수록 우리가 잃는 것은 단순히 더워진 지구만이 아니다. 지구 곳곳에서 생물종이 사라지고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결국 인류의 생존 기반인 식량 생산마저 위협받고 있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연결된 위기다.

 

과학계에서는 현재의 급격한 생물다양성 감소를 ‘제6의 대멸종’으로 부르기도 한다. 과거 대멸종이 주로 자연적인 지질학적 사건에 의해 발생했다면, 지금 진행되는 생물종 감소의 핵심 원인은 인간의 토지 이용 변화, 서식지 파괴, 과도한 자원 이용, 오염, 외래종 확산과 기후변화 등이다. 문제는 한 종의 멸종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생물종 하나가 사라지면 먹이사슬 전체가 흔들린다

 

지구 생태계는 수많은 생물종이 서로 먹고 먹히는 복잡한 네트워크로 유지된다. 식물과 미생물 같은 생산자가 에너지를 만들고, 곤충과 초식동물이 이를 먹으며, 작은 포식자와 최상위 포식자가 이어지는 먹이사슬이 거대한 생태계의 균형을 만든다.

 

농업도 예외가 아니다. 벌과 나비 같은 수분매개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야 과일과 채소가 열리고, 토양 미생물과 지렁이가 토양의 건강을 유지한다. 해양에서는 플랑크톤에서 작은 어류, 대형 어류로 이어지는 먹이망이 수산자원을 지탱한다.

 

따라서 특정 생물종의 감소는 단순히 ‘동물 한 종이 없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 종과 연결된 다른 생물의 개체수와 서식 환경까지 연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쉬운 비유가 ‘젠가 게임’이다. 처음에는 블록 하나를 빼도 탑이 그대로 서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블록을 제거하면 어느 순간 작은 변화 하나만으로도 전체 탑이 무너진다. 생태계 역시 마찬가지다. 생물종이 하나둘 사라져도 일정 기간은 겉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생태계의 연결성이 약해지면 어느 순간 연쇄적인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바로 이 지점을 생태계의 ‘티핑포인트’라고 부른다.

 

기후변화는 생태계의 젠가 블록을 하나씩 빼고 있다

 

기후변화는 생물다양성을 더욱 빠르게 훼손하는 요인이다.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 산불, 해수온 상승과 해양 산성화는 생물종의 서식환경을 변화시키고 생존 가능성을 낮춘다.

 

특히 기후변화가 기존의 서식지 파괴와 결합하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기온이 상승하면 일부 생물종은 더 서늘한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도시와 농경지, 도로 등으로 서식지가 단절되어 이동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기후변화가 생태계에 가하는 충격이 다른 환경압력과 겹치면서 복합적인 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식량안보의 관점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인류가 먹는 식량의 상당 부분은 자연 생태계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의존한다. 수분, 토양 건강, 해충 조절, 물 공급, 유전적 다양성 등이 대표적이다.

 

생물다양성이 감소하면 농업 생산성이 장기적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특정 품종과 지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기후재난에 더욱 취약해진다. 결국 기후위기가 생물다양성을 훼손하고, 생물다양성 감소가 식량 생산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식량 부족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다. 식량 가격 급등과 공급 불안은 사회적 갈등을 키우고 국가 간 자원 경쟁을 심화시킬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 식량과 물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의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

 

1.5℃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경고선이다

 

여기서 한 가지 정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파리협정이 ‘산업화 이후 2℃ 상승을 생태계의 티핑포인트로 규정했다’는 것은 아니다.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억제하고, 1.5℃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국제적 약속이다.

 

1.5℃와 2℃ 사이의 차이는 숫자로 보면 불과 0.5℃에 불과하지만, 실제 생태계와 인간사회가 받는 위험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온난화가 심해질수록 극한기후와 생태계 손실의 위험은 커지고, 일부 기후·생태계 시스템에서는 비가역적인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따라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특정 온도에 도달하는 순간 지구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단일한 ‘마지노선’이 아니다. 여러 생태계가 서로 다른 임계점을 넘으면서 연쇄적으로 취약해지는 과정이다. 젠가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어떤 블록이 빠졌느냐가 아니라, 이미 얼마나 많은 블록을 빼놓았느냐인 것과 같다.

 

ESG 역시 이제 탄소배출량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환경(Environmental)의 핵심에는 탄소중립뿐 아니라 생물다양성 보전과 자연자본 보호, 그리고 식량안보가 함께 들어가야 한다. 기업의 공급망 역시 기후재난뿐 아니라 토양·물·생태계의 훼손으로부터 안전한지 살펴봐야 한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자연을 정복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이다. 탄소를 줄이는 것과 동시에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농업의 회복력을 높이며, 안정적인 식량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지구의 생물종 하나하나는 거대한 생명의 젠가를 이루는 하나의 블록이다. 지금 하나씩 빠지고 있는 블록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자연보호를 넘어 인류의 식량과 경제, 그리고 미래 세대를 지키는 ESG의 핵심 과제다.

 

어쩌면 6번째 대멸종이 인류에게 던지는 가장 무서운 질문은 “어떤 동물이 멸종하는가”가 아닐 것이다. “먹이사슬이 무너진 뒤에도 인류가 안정적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덧붙이는 글 ㅣ 남재철 (서울대학교 특임교수, 前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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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장을 역임하며 국가 기후 관측과 재해 대응 정책을 총괄했다. 국립기상과학원장, 수도권기상청장, 기상청 차장 등을 거치며 기상·기후 분야 전반에서 정책과 연구를 수행해 왔다. 세계기상기구(WMO) 집행이사 및 대기과학위원회 부의장을 맡아 국제 기후 협력에도 참여했다.  

 

마르쿠스 Who’s Who 과학기술인명사전에 등재된 바 있으며,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6번째 대멸종 시그널, 식량 전쟁』의 저자이며, 현재 기후변화 대응, 기상재해, 식량안보 분야에서 연구와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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