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억 달러 넘는 의심거래 적기 보고 누락, 미국 금융당국, 내부통제·고객확인 의무 위반 지적
-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통화감독청·해외자산통제국 공동 제재, 독립적 검증과 감시체계 개선 요구
미국 대형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가 자금세탁 의심거래를 제대로 감시하거나 보고하지 않고 금융제재 대상과의 거래를 적절히 차단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 미국 금융당국으로부터 대규모 제재를 받았다. 수년간 내부통제의 문제점이 확인됐음에도 개선 조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금융기관의 준법경영과 경영진의 책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13일(현지시간)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자금세탁방지 및 경제제재 관련 법규 위반에 대해 총 12억1천만 달러 이상의 제재를 발표했다. 재무부에 따르면 이번 조치에는 재무부 역사상 세 번째로 큰 규모의 제재와 미국 통화감독청(OCC)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 포함됐다.
이번 제재에는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 통화감독청(OCC),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참여했다. FinCEN은 자금세탁 의심거래 감시와 보고 의무 위반에 대해 12억 달러의 제재금을 부과했고, OCC는 자금세탁방지 프로그램의 부실을 이유로 7억5천만 달러의 민사 과징금을 결정했다. OFAC는 러시아와 이란 등 여러 제재 프로그램과 관련된 위반 혐의에 대해 1천160만 달러의 합의금을 발표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금융기관이 경제와 국가안보를 보호하는 최전선에 있다며, 대형 은행이 자금세탁방지와 제재 준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그 영향이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규모가 큰 금융기관도 법의 적용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50억 달러 넘는 의심거래, 제때 보고하지 않아
FinCEN 조사에서 드러난 핵심 문제는 의심거래를 식별하고 보고하는 내부통제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 은행비밀법(Bank Secrecy Act·BSA)에 따라 금융기관은 자금세탁이나 불법 금융활동이 의심되는 거래를 감시하고, 필요한 경우 의심거래보고서(SAR)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고객확인 절차와 거래 모니터링 체계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고, 위험 신호가 확인된 이후에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재무부에 따르면 은행이 적시에 보고하지 않은 의심거래 규모는 50억 달러를 넘었다. 이 가운데 10억 달러 이상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주요 불법 금융 위험과 연관된 거래로 분류됐다. 중국계 자금세탁 네트워크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거래, 미국 남서부 국경 지역과 연계된 불법 금융활동, 무역 기반 자금세탁 및 사기 가능성이 있는 거래 등이 포함됐다.
은행은 내부 시스템을 통해 의심거래를 선제적으로 찾아내기보다 수사기관의 문의나 다른 금융기관의 통보에 상당 부분 의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의심거래는 장기간 조사되지 않은 채 누적됐으며, 뒤늦게 보고가 이뤄져 수사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의 가치도 떨어졌다.
특히 내부 점검을 통해 문제점이 확인됐음에도 실질적인 개선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됐다. 재무부는 은행이 규제 준수에 필요한 자원 투입보다 수익을 우선시하면서 내부통제의 취약성이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2024년 개선 명령 이후에도 내부통제 부실 지속
OCC는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자금세탁방지 관련 규정을 위반했으며, 기존 감독 조치 이후에도 주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OCC는 앞서 2024년 12월 은행의 자금세탁방지 프로그램에 결함이 있다고 판단해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의심거래를 조사 담당자에게 적시에 전달하지 못하는 문제가 이어졌고, 거래 감시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도 충분히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의 거래 모니터링 시스템은 수조 달러 규모의 거래를 적절하게 감시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거래와 관련된 의심거래보고가 지연됐다.
인력과 조직 운영의 문제도 확인됐다. 자금세탁방지 업무를 담당하는 일부 직원은 의심거래 식별과 조사, 보고에 필요한 전문성과 교육이 부족했고, 내부 감사 기능 역시 오랫동안 지속된 문제를 적절하게 발견하지 못했다.
OCC는 은행 경영진이 자금세탁방지 프로그램의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심각한 결함을 충분히 개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이란 등 제재 관련 거래 475건도 문제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여러 경제제재 프로그램과 관련해 총 475건의 위반 혐의를 해결하기 위한 합의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해당 거래에는 러시아, 벨라루스, 이란, 미얀마, 소말리아와 마약 및 국제 테러 관련 제재 프로그램이 포함됐다.
은행은 기술적 오류와 직원의 실수로 제재 대상 은행을 통한 결제를 처리하거나, 제재 대상자로 지정된 개인의 지급 및 인출 거래를 허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재 대상자 명단을 제때 갱신하지 않거나 거래 경고 시스템을 적절히 설정하지 못한 문제도 확인됐다.
OFAC는 관련 위반을 중대한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했으나, 대부분 자발적으로 신고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1천160만 달러의 합의금을 결정했다.
은행은 이번 합의에 따라 직원 교육과 내부 점검, 감사 기능을 강화하고 향후 감독당국과의 협력을 개선하기로 했다.
금융기관의 준법경영, 제도보다 실행이 중요
이번 제재는 금융기관이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준법경영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대규모 금융기관은 수많은 거래와 고객 정보를 관리하는 만큼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운영해야 한다. 특히 자금세탁이나 국제 제재 위반 가능성이 확인됐을 때는 관련 정보를 단순히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조사와 보고, 시정 조치로 연결해야 한다.
미국 재무부는 금융기관의 자금세탁방지 프로그램이 사업 규모와 위험 수준, 금융상품과 서비스의 특성에 맞게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객의 거래 유형과 활동 지역, 새로운 위험 정보를 지속적으로 반영하는 고객확인 절차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에 따라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기존 감시체계의 결함으로 발견하지 못한 의심거래를 다시 확인하고 보고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외부 전문가를 통한 독립적인 검토도 실시해야 하며, 거래 모니터링과 고객확인, 해외 금융기관 계좌 관리, 관련 데이터 거버넌스의 실효성도 평가받게 된다.
이는 금융기관의 내부통제가 단순한 규정 준수 업무를 넘어 경영진의 의사결정과 위험관리, 조직 운영 전반에 연결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금융기관은 자금의 흐름을 관리하는 동시에 불법 금융활동이 금융시스템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내부통제의 실패는 개별 은행의 법규 위반에 그치지 않고 금융시장과 사회 전반의 신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뱅크오브아메리카 제재는 금융기관의 규모나 수익성보다 중요한 것이 위험을 관리하고 법적 책임을 이행하는 능력임을 보여준다. 준법경영의 실효성은 규정의 존재가 아니라 위험을 발견하고 대응하며 문제를 개선하는 실제 운영 과정에서 확인된다는 점에서 금융기관의 거버넌스와 내부통제 체계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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