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오랜 기간 수도권 중심의 성장 전략을 통해 압축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지역 간 격차라는 구조적 문제가 고착화되었다. 서울·경기·인천으로 대표되는 수도권에 인구와 산업, 교육·의료 인프라가 집중되면서 지방은 점차 활력을 잃어갔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났고, 기업 역시 시장과 인재가 몰린 수도권에 둥지를 틀었다. 그 결과 지방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상권 붕괴, 학교 통폐합이라는 복합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지방 소멸은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수도권 집중은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역시 과밀로 인한 부작용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거 비용 폭등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 가격 상승은 신혼부부와 청년층의 내 집 마련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었다.
주거 불안은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저출산과 인구 감소라는 국가적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 붕괴는 서로 다른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 속에서 맞물린 결과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는 ‘국가 균형발전’을 핵심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수도권 집중 구조를 완화하고, 지역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상징적인 조치로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이전하고, 추가적인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추진했다.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정책의 취지와 달리 현실에서는 여러 한계가 드러났다. 일부 공공기관이 수도권과 지방을 오가는 통근버스를 운영하면서 ‘이전은 했지만 정착은 하지 않는’ 기형적 구조가 나타났다. 이는 지방 이전의 상징성은 유지하되 실질적 인구 분산 효과는 제한적인 결과를 낳았다.
지방에 근무하되 가족은 수도권에 남는 이른바 ‘기러기 이전’ 현상은 정책의 명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정주 여건인 주거, 교육, 의료, 문화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관만 이동시키는 방식은 근본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한 균형발전 정책을 총괄하기 위해 김경수를 지방시대위원장으로 임명했지만, 아직까지 국민이 체감할 만한 구조적 전환 전략은 뚜렷하게 제시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교육개혁, 지역 특화 산업 육성, 대학과 기업의 연계 강화, 대기업 본사 이전 유도, 세제 개편 등 보다 과감한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기회의 재배치’에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양질의 일자리, 교육 기회, 의료 서비스, 문화 인프라가 지역에서도 동등하게 제공될 때 비로소 사람들은 이동을 강요받지 않게 된다. 단순한 행정기관 이전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조성, 정주 환경 혁신, 지역 대학 경쟁력 강화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그래야 “어디서나 살고 일할 수 있는 나라”라는 구호가 현실이 된다.
역사를 돌아보면,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함으로써 지식의 접근권을 소수에서 다수로 확장시켰다. 문자라는 도구를 통해 백성 모두가 배움의 기회를 누리게 한 것이다. 오늘날 균형발전 역시 같은 철학을 요구한다.
특정 지역에만 집중된 기회를 전국으로 확장하는 국가 설계가 필요하다. 만약 현 정부가 수도권 과밀과 지방 소멸이라는 이중 위기를 구조적으로 해결해 낸다면, 5년이라는 짧은 임기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전환점을 만든 정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균형발전은 단기간에 완성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격차로 굳어질 수 있다. 지방이 살아야 수도권도 지속 가능하다. 결혼과 출산이 가능해지고, 청년이 고향에서 꿈을 펼칠 수 있으며, 노년층이 안정적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진정한 균형 국가의 모습이다. 만약, 이재명 정부가 이 구조적 난제를 해결해 낸다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모두의 기회’를 제도화한 지도자로 기억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I 윤재은(Yoon Jae Eun)
예술, 문학, 철학적 사유를 통해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공간철학자이자 건축가이다. 현재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간디자인학과, 테크노전문대학원 공간문화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학사, 미국 뉴욕 프랫대학 인테리어디자인 석사,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단법인 한국ESG위원회 이사장, 한국토지주택공사 LH 이사회 의장, LH ESG 소위원회 위원장, 2022년 대한민국 ESG소통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미국의 UC버클리대학 뉴미디어 센터에서 1년간 방문학자로 있었다. 저자는 ‘해체주의 건축의 공간철학적 의미체계’ 박사 논문을 통해 공간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영역을 개척하였다. ‘공간철학’이란 반성을 통해 지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직관을 통해 무형의 공간과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 건축 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 철학 인문 서적 ‘철학의 위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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