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cm 나무에 새긴 강렬한 남성상, 둥근 눈과 얼굴의 표식, 강조된 가슴과 신체
- 음바라 사람들은 왜 인간의 몸을 조각했을까, 해외 박물관 소장품 통해 문화적 배경 살펴봐
- 모자상과 북 연주자 ‘핀디’, 족장의 권위와 공동체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한 조각
[편집자주] 〈아프리카 예술을 읽다〉는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의 소장·전시 작품을 하나씩 만나며 작품에 담긴 아프리카 각 지역의 역사와 자연, 삶과 문화를 들여다보는 ESG코리아뉴스의 문화 연재시리즈이다. 조각과 가면, 생활 도구와 장신구 등 한 점의 작품에서 출발해 하나의 이미지로 뭉뚱그려 바라보기 쉬웠던 아프리카의 다양한 문화와 이야기를 보다 상세하게 소개한다.
두 눈을 크게 뜬 한 남자가 앞을 바라보고 있다.
둥근 눈은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말할 듯 선명하다. 그러나 입은 굳게 다물려 있다. 얼굴에는 선으로 된 표식이 남아 있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넓은 가슴과 단단하게 표현된 상체가 나타난다. 남성의 신체 역시 숨김없이 조각돼 있다.
강원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음바라(Mbala) 조각’이다.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이 작품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88㎝이다. 작품 정보에는 과거 콩고민주공화국의 국명이었던 ‘자이르(Zaire)’도 함께 적혀 있다.
박물관은 크게 뜬 두 눈과 얼굴의 ‘Tribal Mark’, 엄숙하게 다문 입, 탄탄한 앞가슴과 강하게 표현된 남성의 신체를 작품의 특징으로 꼽는다. 한 덩어리의 나무에서 사람의 얼굴과 몸을 이처럼 강렬하게 끌어낸 모습은 음바라 사람들의 풍부한 조각 전통을 보여준다.
그런데 작품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외형적인 특징보다 한 가지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음바라 사람들은 왜 인간의 몸을 나무에 새겼을까.
사람의 모습을 닮았지만 초상화는 아니다
아프리카의 전통 인물 조각을 오늘날의 인물사진이나 초상화처럼 바라보면 작품이 만들어진 문화적 배경을 놓칠 수 있다.
음바라 조각 역시 눈앞의 특정 인물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해외 박물관에 소장된 음바라 작품을 살펴보면 사람의 몸은 단순한 외모를 넘어 공동체의 권위와 혈통, 의례와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는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는 19~20세기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분류된 음바라의 ‘앉아 있는 북 연주자(Seated Drummer·Mbundi-Ngoma)’가 소장돼 있다. 높이 22.9㎝의 작은 목조상이지만 북을 연주하는 사람의 모습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아프리카미술관에도 19세기 말~20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음바라의 북 연주자상이 남아 있다. 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실제 북 연주자가 족장을 수행했던 것처럼 이러한 조각 역시 족장의 권위를 나타내는 물품들과 함께 보관됐다.
사람을 조각했지만 단순히 ‘그 사람의 모습’을 남기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크게 뜬 눈과 얼굴에 남겨진 선
다시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의 작품을 바라보자.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얼굴이다. 두 눈은 실제 사람의 비례보다 크게 느껴질 만큼 둥글게 표현돼 있고, 입은 그와 대조적으로 단단히 다물려 있다.
얼굴에는 박물관이 ‘Tribal Mark’로 설명하는 선과 무늬도 새겨져 있다.
아프리카 여러 지역의 전통 조각에서는 얼굴이나 몸에 실제 공동체의 신체 장식이나 흉터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표식은 민족과 지역,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 작품에 나타난 선을 특정 신분이나 의례의 상징이라고 곧바로 해석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눈여겨볼 부분은 조각가가 사람의 얼굴을 사진처럼 재현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눈은 크게 만들고 입은 절제했다. 몸에서는 넓은 가슴과 남성의 신체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사람의 모든 부분을 똑같이 묘사하기보다 특정한 특징을 선택해 강조한 것이다.
그 과장과 생략이 오히려 이 작품의 강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왜 남자의 몸을 이렇게 강하게 표현했을까
얼굴에서 아래로 시선을 옮기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 나타난다.
가슴은 넓고 상체는 단단하다. 남성의 성징도 그대로 표현돼 있다.
현대의 관람객에게는 다소 낯설거나 직접적인 표현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인체 조각을 오늘날의 성적인 이미지와 같은 기준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사람의 몸은 어느 문화에서든 힘과 생명, 성장과 세대의 지속,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표현하는 중요한 대상이 돼 왔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넓은 가슴이 반드시 ‘힘’을, 남성의 성징이 곧바로 ‘다산’이나 ‘권력’을 의미한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자료만으로 영월 작품의 개별 요소에 특정한 상징을 부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조각가가 인간의 몸을 감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얼굴에서 가슴과 몸통, 남성의 성징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인간을 나무 위에 온전히 세웠다.
음바라 조각을 이해하는 단서 ‘핀디’
해외 박물관에 남아 있는 음바라 조각을 따라가다 보면 ‘핀디(Pindi)’라는 이름을 만나게 된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아프리카미술관은 1915년 현지 조사 기록을 바탕으로 음바라의 중요한 인물 조각들이 핀디로 불렸다고 설명한다.
대표적으로 두 종류의 인물상이 한 쌍을 이뤘다. 하나는 아이를 안은 어머니인 ‘기할루 기웨니(gihalu giwenyi)’, 다른 하나는 음악가를 표현한 ‘림바(limba)’이다.
스미스소니언이 소장하고 있는 모자상을 보면 어머니와 아이의 몸이 서로 맞닿아 있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매달리듯 안겨 있고 어머니의 팔 역시 아이를 감싼다.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두 사람의 몸이 하나의 형태처럼 이어져 보인다.
또 다른 조각에서는 남성이 북을 연주한다.
한쪽에는 어머니와 아이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음악가가 있다.
서로 다른 두 장면이지만 음바라 사회에서는 하나의 조각 체계 안에 존재했다.
공동체가 중요한 순간을 맞을 때 조각도 함께했다
핀디가 흥미로운 이유는 조각의 형태뿐만 아니라 실제 사용 방식에 있다.
스미스소니언 자료에 따르면 핀디 조각은 음바라의 토지 족장들이 소유했으며 평범한 장식품과는 다른 위치를 차지했다.
새로운 족장이 지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사용됐고, 전쟁이나 큰 분쟁이 발생하거나 수확이 좋지 않을 때, 전염병과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에도 등장했다. 사냥감이 부족해지는 것과 같은 공동체의 어려움과도 관련돼 있었다.
조각은 족장의 의자와 도끼, 지팡이, 파리채 등 권위를 나타내는 물건들과 함께 특별한 장소에 보관됐다. 관련 기록에는 콴고강의 흙과 조상의 뼈, 흰색 광물인 카올린 등이 함께 보관됐다는 내용도 남아 있다.
벨기에 아프리카박물관의 음바라 소장품 자료에서도 핀디가 음악가상과 모자상으로 구성됐으며 족장의 계승 의례나 공동체가 위기를 맞은 상황과 관련돼 있었다는 설명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박물관 진열장 안에서 한 점의 ‘예술품’으로 바라보는 조각이 당시에는 공동체의 삶 속에서 기능했던 물건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어머니와 아이, 북 치는 남자 그리고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의 남성상
해외에 남아 있는 음바라 조각은 한 가지 모습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스미스소니언에는 북을 연주하는 남성상이 있고, 브루클린미술관에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 핀디상이 남아 있다. 넬슨앳킨스미술관 역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제작된 음바라 인물 조각을 소장하고 있다.
어머니와 아이가 등장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나타나며, 남성과 여성의 신체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조각됐다.
이를 통해 음바라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중요한 조형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는 분명한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에 있는 88㎝ 남성상이 핀디인지, 특정 족장을 나타낸 것인지, 혹은 어떤 의례에 사용됐는지는 현재 확인된 자료만으로 알 수 없다.
해외 박물관에 남아 있는 다른 음바라 조각의 의미를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 작품에 그대로 옮겨 붙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그럼에도 해외 자료는 음바라의 인물 조각이 만들어지고 사용됐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일부 조각은 족장의 권위와 연결됐고, 어떤 작품은 혈통과 세대의 지속을 표현했으며 공동체가 위기를 맞았을 때 의례의 일부로 등장했다.
작품에 남은 ‘자이르’라는 이름
영월의 작품 설명에 적혀 있는 ‘Zaire’라는 단어도 이 작품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단서다.
현재의 콩고민주공화국은 1971년부터 1997년까지 ‘자이르 공화국(Republic of Zaire)’이라는 국명을 사용했다. 1997년 이후 다시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따라서 ‘Mbala, Zaire, Congo(D.R.)’라는 표기에는 작품의 출신 지역뿐 아니라 한 나라의 이름이 바뀌어 온 현대사의 흔적도 함께 남아 있다.
박물관에 있는 오래된 유물의 역사는 그것이 만들어진 순간에서 끝나지 않는다. 원래의 공동체를 떠나 수집되고 다른 나라로 이동해 새로운 박물관에 자리 잡는 과정 역시 한 작품이 지나온 시간의 일부다.
그 남자는 왜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을까
〈아프리카 예술을 읽다〉에서 지금까지 만난 작품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보여줬다.
첫 번째 나이지리아의 ‘조화로운 세계’에서는 세 사람이 함께 하나의 세계를 떠받쳤다.
두 번째 코트디부아르의 ‘구로 마스크’에서는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 위로 동물의 형상이 이어졌다.
세 번째 음바라 조각에서는 한 남자가 홀로 정면을 바라본다.
두 눈은 크게 열려 있고 입은 굳게 닫혀 있다. 넓은 가슴과 몸은 숨김없이 드러나며 얼굴에는 선명한 표식이 남아 있다.
그가 누구였는지, 커다란 눈과 신체에 각각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는 지금의 자료만으로 모두 알 수 없다.
그러나 음바라 사람들이 남긴 다른 조각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에게 인간의 몸을 나무에 새기는 일이 단순한 외모의 재현만은 아니었다는 사실과 만나게 된다.
어머니와 아이를 함께 새겼고, 북을 연주하는 사람을 만들었다. 일부 조각은 족장의 권위와 함께했고 전쟁과 흉작, 질병과 같은 공동체의 위기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영월에 서 있는 88㎝의 남자는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을까.
크게 뜬 두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정확한 답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질문에서 작품을 읽는 일이 시작된다. 낯선 나무 조각 하나가 콩고민주공화국 음바라 사람들의 삶과 인간에 대한 시선을 들여다보는 창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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