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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입자물리연구소에 춤추는 시바신…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곳

  • 김지원 기자
  • 입력 2026.10.14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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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가 2004년 CERN에 기증한 2m 높이의 청동 조각상 ‘나타라자’
  • 우주의 생성과 소멸을 표현한 춤, 현대 물리학의 입자 운동과 상징적으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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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RN에 설치된 청동 조각상 ‘나타라자(Nataraja)’ 모습. [사진=Physics in History+commons]

 

스위스 제네바 인근에 자리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는 조금 특별한 조각상이 있다.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우주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연구하는 공간에 힌두교의 신인 시바가 춤추는 모습으로 서 있다. 첨단 과학시설과 고대 인도의 종교예술이 함께하는 이곳에는 우주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오랜 호기심이 담겨 있다.


과학과 역사를 소개하는 엑스(X) 계정 ‘Physics in History’는 13일 오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설치된 청동 조각상 ‘나타라자(Nataraja)’를 소개했다. 높이 약 2m의 이 조각상은 연구소의 39번 건물과 40번 건물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인도 정부가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와의 과학 협력을 기념해 2004년 기증한 작품이다.


‘나타라자’는 산스크리트어로 ‘춤의 왕’을 뜻한다. 힌두교에서 시바신은 우주의 생성과 소멸, 변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나타라자는 이러한 시바신의 모습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다.


조각상 속 시바신은 여러 개의 팔을 펼친 채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고 원형의 불꽃 고리 안에서 춤추고 있다. 주변을 감싼 불꽃 고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를, 손에 든 북은 창조의 리듬을 상징한다. 다른 손에 든 불꽃에는 소멸과 변화의 의미가 담겨 있다. 발아래 놓인 작은 형상은 무지를 나타내며, 이를 딛고 춤추는 모습은 지식과 깨달음을 향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고대 인도의 종교적 상징물이 현대 물리학 연구소에 놓이게 된 데에는 흥미로운 연결점이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물리학자이자 저술가인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는 1975년 출간한 저서 『물리학의 도(The Tao of Physics)』에서 시바신의 춤을 아원자 입자들의 끊임없는 운동에 비유했다.


물질을 이루는 작은 입자들은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카프라는 이러한 현대 물리학의 관점을 우주의 생성과 소멸을 표현한 시바신의 춤과 연결해 설명했다.


조각상 아래 설치된 명판에도 카프라의 저서에서 인용한 글이 새겨져 있다. 고대 인도 예술가들이 청동 조각으로 표현한 우주의 춤과 현대 물리학자들이 연구하는 입자의 움직임을 나란히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다.


다만 두 세계의 연결은 과학적 증명이 아닌 철학적 비유에 가깝다. 시바신의 춤이 입자물리학의 원리를 설명하거나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의 종교예술과 현대 과학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연의 변화와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2004년 6월 18일 이 조각상의 제막식을 열었다. 인도에서 전통적인 밀랍 주조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당시 로베르 에마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사무총장과 인도 측 관계자들이 행사에 참석했다.


인도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인연은 1960년대부터 이어져 왔다. 오랜 과학 교류와 공동 연구를 바탕으로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왔으며, 인도는 2017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준회원국이 됐다. 나타라자 조각상은 이러한 국제 과학 협력의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 참여해 물질의 기본 구조와 우주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국제 연구기관이다. 대형강입자충돌기(LHC)를 비롯한 첨단 연구시설에서는 입자들이 충돌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관찰하며 자연의 원리를 밝혀내고 있다.


수천 년 전 인도의 예술가들은 춤추는 신의 모습에 우주의 생성과 변화를 담았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정밀한 실험 장비와 수학적 이론을 통해 물질과 에너지의 움직임을 연구한다.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변화하는지 알고자 하는 관심은 시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현대 물리학의 중심에 서 있는 춤추는 시바신은 과학과 예술, 철학이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때로는 같은 질문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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