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시대 선종 불교의 역사가 깃든 오색석사, 오늘날 성국사로 이어지는 옛 사찰의 자취
-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높이 약 5m의 삼층석탑, 1971년 복원돼 옛 사찰의 역사 전해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설악산 남쪽 자락에는 아름다운 계곡과 울창한 숲 사이로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주전골을 따라 걷다 보면 신라시대 불교문화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오색석사와 양양 오색리 삼층석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설악산 오색지구는 기암괴석과 폭포, 가을 단풍으로 이름난 여행지다. 하지만 이곳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에만 있지 않다. 깊은 산속에서 수행하던 승려들의 이야기와 천 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석탑은 설악산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과 신앙이 이어져 온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신라시대 불교의 역사가 깃든 오색석사
오색석사(五色石寺)는 설악산 오색지구에 자리했던 옛 사찰로, 오늘날 성국사라는 이름으로 그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현장 안내문에 따르면 오색석사는 신라 말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파를 연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구족계를 받고 귀국한 뒤 설악산에 들어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도의선사는 신라 말 한국에 선종 불교를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당시 불교는 경전을 공부하고 의례를 행하는 전통과 함께 참선과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는 선종의 흐름이 확산되고 있었다.
구산선문은 이러한 선종 불교가 신라 말부터 고려 초에 걸쳐 여러 산문을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형성된 아홉 계통을 가리킨다. 오색석사 역시 이러한 불교문화의 흐름과 관련된 사찰로 전해진다.
다만 도의선사의 창건 이야기는 사찰에 전해 내려오는 내용으로, 정확한 창건 시기와 초기 역사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색석사의 오랜 역사는 다른 기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신라의 승려 무염이 813년 설악산 오색석사에서 법성 스님을 만나 불교를 공부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를 통해 적어도 9세기 초에는 이곳이 승려들이 머물며 불교를 배우고 수행하던 장소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옛 사찰의 모습을 온전히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당시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장 안내문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양양 오색리 삼층석탑을 비롯해 석사자와 장대석, 기단석 등이 이곳에 남아 있는 유물로 소개돼 있다.
건물은 세월 속에 사라졌어도 돌로 만들어진 유물들은 오래전 이곳에 사찰이 있었음을 조용히 전하고 있다.
천 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세워진 양양 오색리 삼층석탑
오색석사의 역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문화유산은 양양 오색리 삼층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탑은 높이가 약 5m에 이르며,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돼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무너진 상태로 남아 있었으나 1971년 다시 세워져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석탑은 불교에서 부처의 사리나 유물을 모시기 위해 세우던 건축물이다. 실제 사리가 봉안되지 않았더라도 부처를 상징하는 신성한 대상으로 여겨졌으며, 사찰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양양 오색리 삼층석탑은 두 층으로 된 기단 위에 세 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다. 아래쪽 기단은 탑 전체를 받치고, 그 위로 탑의 몸체와 지붕돌이 층층이 쌓여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돌을 다듬은 석공들의 정교한 솜씨를 느낄 수 있다. 기단과 탑신의 모서리에는 기둥처럼 보이도록 조각한 부분이 있으며, 각 층의 지붕돌 아래에는 네 단의 받침이 마련돼 있다. 지붕돌의 모서리는 살짝 위로 들려 있어 단정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준다.
단단한 돌을 이용해 나무로 지은 건축물의 기둥과 지붕을 연상시키는 형태를 표현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전체적인 비례와 균형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석탑이 지닌 건축적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 석탑은 한때 무너졌던 유산이 다시 세워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석탑이 복원을 통해 본래의 형태를 되찾으면서 옛 사찰의 역사를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석탑에는 천 년 전 돌을 다듬었던 사람들의 기술과 신앙, 그리고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후대의 노력이 함께 담겨 있다.
'오색'이라는 이름에 전해지는 옛이야기
오색석사라는 이름은 오늘날 양양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오색지구의 지명과도 연결된다.
이곳에는 오래전 사찰 주변에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자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러한 전승에서 '오색'이라는 이름이 비롯됐다는 것이다.
인근의 오색약수 역시 이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다. 철분과 탄산 성분을 함유한 약수로 알려져 있으며, 예부터 설악산을 찾는 사람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사찰과 약수터, 계곡이 가까이 자리한 풍경은 이 지역의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생활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물론 지명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역사적 사실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승은 사람들이 자연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통해 장소를 기억해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설악산의 자연 속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역사
오색석사와 양양 오색리 삼층석탑이 자리한 남설악 일대는 주전골과 용소폭포로 이어지는 탐방길과 가까워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을 함께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주전골은 맑은 계곡과 웅장한 바위 절벽이 어우러진 설악산의 대표적인 명소다. 특히 가을에는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이 계곡을 따라 펼쳐지고, 회색빛 바위산과 투명한 물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 오래된 석탑을 마주하면 설악산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오랜 세월 자연이 만들어낸 바위산 곁에 사람들이 직접 돌을 다듬어 세운 탑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의 기암괴석이 지구의 긴 시간을 보여준다면, 오색리 삼층석탑은 그 자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를 들려준다. 서로 다른 시간의 흔적이 하나의 공간에 함께 남아 있는 셈이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이곳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걷다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을 만나고, 옛 사찰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한국의 자연과 불교문화가 어떻게 어우러져 왔는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궁궐이나 규모가 큰 사찰과는 또 다른 매력도 있다. 깊은 산속에 조용히 자리한 석탑과 옛 절터의 흔적은 오히려 오랜 역사를 더욱 가까이에서 느끼게 한다.
오래된 석탑이 전하는 문화유산의 가치
문화유산의 가치는 규모나 화려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시대에 만들어졌고, 어떤 사람들이 그곳에서 생활했으며, 오랜 세월을 거쳐 어떻게 오늘날까지 전해졌는지를 살펴볼 때 그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오색리 삼층석탑도 마찬가지다. 천 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면서 한때 무너졌지만, 다시 세워진 뒤 지금까지 옛 사찰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은 오래된 건축물 하나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신앙, 기술과 문화를 함께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설악산 오색지구를 여행한다면 단풍과 계곡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동안 오색석사와 양양 오색리 삼층석탑에도 잠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울창한 숲속에 자리한 오래된 석탑은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앞에 서서 천 년 전 이곳에서 수행하던 승려들과 돌을 다듬어 탑을 세웠던 사람들을 떠올리면 평범해 보이던 산길에도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설악산의 아름다움은 웅장한 산세와 맑은 계곡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연 속에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오늘날까지 남겨진 역사의 흔적도 설악산을 특별하게 만드는 소중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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