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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동훈의 공간언어 ④] 반만 짓는 건축, 하프 하우스

  • 현동훈
  • 입력 2025.06.18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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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yun Donghoon's spatial language ④] half-built architecture, ‘Half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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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uinta monroy 준공 [출처=archdaily.com]

 

건축은 단지 공간을 짓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공간은 인간의 일상과 밀접하게 얽혀 있으며, 집은 단순한 거처를 넘어 삶의 기반이 된다. 특히 주거는 사회적 계층, 경제적 조건, 공동체와의 관계 등 다양한 요소와 맞닿아 있다. 그렇기에 건축은 기술이나 미학 이전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칠레의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건축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주거 불평등, 도시 내 빈곤, 비공식 정착지(슬럼가) 문제 등은 건축가가 외면해서는 안되는 현실이라고 비판하며, 예술이나 시각적 아름다움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이슈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라베나의 건축 철학 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건축을 전문가의 산물이 아닌 거주자의 삶과 밀착된 협력의 결과로 바라보는 점이다. 집의 궁극적인 주인은 건축가가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거주자들이 직접 자신의 공간을 증축하고, 변화시키고, 가꾸는 시간과 노력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거주자의 자율성과 자긍심을 자극하며, 결과적으로 집에 대한 애착과 커뮤니티에 대한 책임감을 키우는 참여 구조를 만들었다.


소유 : 공간의 주체가 되는 시작


반만 짓는 건축은 임대 개념에서 벗어나, 주민이 직접 주택을 소유하도록 설계된 점에서 출발한다. 이는 단순한 재산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삶의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권리와 책임을 부여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소유권은 거주자의 자긍심을 높이고, 공간을 관리하는 주체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가능하게 한다. 단순히 거처를 제공받는 입장에서 벗어나, ‘나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공동체에 대한 애착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자신이 소유한 공간은 꾸미고, 보완하고, 증축해 나가려는 동기를 유발한다. 이런 공간적 변형은 단지 개인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거주자들이 주거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려는 행동으로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웃들과의 상호작용도 생겨나고, 도시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로 발전하게 된다. ‘소유’는 이처럼 물리적, 심리적 차원에서의 안정과 사회적 연결성의 씨앗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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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uinta monroy 입주 이후 [출처=archdaily.com]

 

임대는 쉽게 떠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소유는 정착과 장기적인 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소유자가 된다는 것은 그 지역과의 관계가 지속된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 도시 내 정체성과 삶의 연속성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소유는 아라베나 건축의 근간이자,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강력한 도구로 작용한다.


손해 상쇄 : 구조적 불평등에 맞서는 설계 전략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문제의 핵심은 인플레이션과 주택 가격 상승에 따라 점점 더 불리해지는 구조적 환경이다. 아라베나는 이 구조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반만 짓는’ 방식을 도입했다. 정부 지원금으로는 제대로 된 집 한 채를 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구조적이고 기능적인 절반만 완성된 집을 제공하고 나머지는 거주자가 직접 증축하도록 설계했다. 이렇게 하면 정부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집을 제공할 수 있고, 거주자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자신의 집을 완성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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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lla verde housing 준공 [출처=archdaily.com]

 

이 방식은 경제적 손해를 상쇄하는 강력한 구조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나중에 집을 짓는 비용이 더 들게 되지만, 최소한의 구조가 확보된 상태에서 출발하면 재료와 노동을 점진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어 비용 부담이 줄어든다. 동시에 증축 과정에서 거주자가 스스로 필요한 공간을 설계하게 되므로 불필요한 낭비 없이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자율적인 건축 참여는 비용 절감과 공간 효율화라는 이중 효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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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Villa verde housing 준공 도면 [출처=archdaily.com], (우)Villa verde housing 입주 후 도면 [출처=archdaily.com]

 

더 나아가, ‘반만 짓는’ 구조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서 빈곤 계층의 자립 기반을 만들어 주는 전략이기도 하다. 소득이 불안정한 가구에게는 대출을 통한 전면 건축이 큰 부담이 되는데, 이러한 점진적 주택 완성은 주민 스스로의 자산 형성을 유도하는 현명한 방식이다. 결국 아라베나의 접근은 경제적으로 약한 사람들에게도 ‘살면서 발전하는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혁신적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커뮤니티 : 집을 함께 만들어가는 이웃


아라베나의 건축에서 ‘공동체’는 단지 주택의 배치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주민들이 자신의 공간을 가꾸는 과정에서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구조를 설계한다. 동일한 구조로 시작한 집들은 시간이 지나며 각자의 방식으로 확장되고 개성이 드러나게 된다. 이런 변화는 단지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거주자 간의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연결되는 공동 감각을 만들어낸다. 즉, 변화의 다양성 속에서 공통의 가치가 형성된다.

 

주민들은 직접 동네를 가꾸고, 정원이나 마당, 담장을 만들며 이웃과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이런 상호작용이 반복될수록, 단순히 같은 단지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으로 인식하게 된다. 커뮤니티는 강제된 것이 아니라, 거주자 개개인의 참여로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공동체의식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생활의 반복성과 공동의 경험을 통해 점진적으로 쌓여가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지역 전체를 ‘살아있는 공간’으로 바꾼다. 처음에는 단순히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던 공간이, 시간이 지나며 주민들 간의 유대와 협력 속에서 좋은 동네로, 더 나아가 자랑스러운 커뮤니티로 발전하게 된다. 이는 곧 도시가 지속 가능하려면 개인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실제 사례가 된다.


정착 : 도시의 일원이 되는 길


빈민가를 철거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세우는 기존의 방식은 사람들의 삶의 연속성을 끊는 단절적 방식이었다. 아라베나는 이와 반대로, 사람들이 원래 살던 지역에서 머물 수 있도록 주택을 개선하고 확장하게 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자신이 속한 장소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되었고, 도시에서 배제되지 않고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정착’은 단순한 거주의 개념을 넘어, 사회적 통합과 도시권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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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uinta monroy 준공 내부 [출처=arch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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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uinta monroy 정착 내부 [출처=archdaily.com]

 

정착은 결국 사람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다.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아끼고, 이웃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자연스럽게 주변 환경도 개선되기 시작한다. 주민들은 길거리 쓰레기를 줄이고, 벽화를 그리고, 골목을 안전하게 가꾸는 등의 활동을 시작한다. 이런 참여는 외부의 개입이 아닌 내부의 자발성으로 이루어지며, 진정한 도시 정착의 기반이 된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주거 환경이 좋아지고, 범죄율이 낮아지며, 주택 가치가 상승하면서 자산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는 주민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이고, 도시 전체의 건강성과 지속 가능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착은 단지 머무는 것을 넘어, 도시에 뿌리내리고 사회적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건축은 더 많은 이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공정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저소득층을 위한 ‘싸고 빠른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질과 가능성을 설계하는 것이다. 집이 곧 자산이 되고, 공동체가 형성되며, 삶이 자리잡을 수 있는 기반이 될 때 비로소 건축은 사회 변화의 촉매가 될 수 있다.


이는 단지 집을 짓는 기술적 문제나 정책적 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공간 속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그리고 그 공간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관계망과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아라베나의 건축은 이러한 고민에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응답한다.



덧붙이는 글ㅣ현동훈 (Hyun Dong Hun)


유니버설 디자인, 친환경 건축 등 사회적인 가치를 연구하는 공간디자이너이다. 국민대학교 공간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공간디자인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사회적 가치가 포함된 건축과 이를 표현하는 공간을 탐구하고 있다. 미래사회의 건축 방향성과 트렌드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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