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 해법은 어촌에서 시작될 수 있다
해 뜨기 전, 중국 저장성 연안의 어부들은 여느 때처럼 바다로 나간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물고기만이 아니다. 오늘은 그물에 걸린 플라스틱 병과 버려진 어망이 또 하나의 ‘수확’이 된다.
2019년 시작된 해양 플라스틱 회수 프로그램 ‘블루 서클(Blue Circle)’은 이 평범한 어업 풍경을 기후 행동의 현장으로 바꿔놓았다. 어부와 지역 주민들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플라스틱을 분류·수거하고 그 대가로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 폐기물은 더 이상 짐이 아니라 소득이 되고 환경 보호는 생계와 직결된다.
이는 최근 COP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공정한 전환(Just Transition)’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블록체인으로 추적되는 플라스틱의 여정
블루 서클은 저장성 생태환경부와 저장란징기술(Zhejiang Lanjing Technology)이 공동 개발한 디지털 기반 해양 플라스틱 관리 시스템이다. 중국 최대 규모의 해양 플라스틱 재활용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이 이니셔티브의 핵심은 블록체인과 인터넷 기반 추적 기술이다. 플라스틱이 바다에서 수거되는 순간부터 항구, 운송, 보관, 재활용, 재제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실시간 영상과 인터랙티브 지도에 기록된다.
소비자는 QR 코드를 스캔해 자신이 구매한 제품이 실제로 해양에서 회수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투명성은 신뢰를 낳고, 신뢰는 다시 시장을 만든다.
저장란징기술 해양사업부 총괄 매니저 천위안(Chen Yuan)은 UNEP 인터뷰에서 “우리는 세계적으로 확장 가능한 디지털 모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블루 서클은 2025년 이후 이 시스템을 개방형 플랫폼으로 전환해 정부, 중소기업, 비공식 수거 부문, 시민단체까지 통합할 계획이다.
‘해양 청소부’가 된 어부들, 그리고 소득의 변화
블루 서클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환경 성과와 사회적 성과를 동시에 달성했다는 점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10,240척의 어선과 6,300명의 어부·지역 주민이 참여해 약 2,500톤의 해양 플라스틱을 재활용했다. ‘해양 청소부’로 등록된 참여자들은 플라스틱 병 한 개당 0.2위안(약 3센트)을 받는데, 이는 시장 가격의 약 7배다.
또한 참여자들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사회보장 보험, 농촌 신용조합의 저금리 대출에 접근할 수 있다. 현재까지 최대 1억3천만 위안(약 1,800만 달러)의 대출이 제공됐다.
플라스틱 재활용 수익으로 조성된 ‘번영 기금’을 통해 수거업자들은 월 평균 1,200위안의 추가 소득을 얻고 있다. UNEP는 이 모델이 비공식 폐기물 노동자를 제도권으로 포용하는 대표 사례라고 평가한다.
UNEP가 주목한 이유
이러한 성과로 블루 서클은 2023년 유엔 최고 환경상 중 하나인 ‘지구 기업가 비전 챔피언(Earthshot-style Visionary Champion)’에 선정됐다.
UNEP 사무이사 잉거 안데르센은 “인류의 플라스틱 중독은 지구의 건강과 우리의 번영을 동시에 위협한다”며 “블루 서클은 기술과 지속 가능성이 결합될 때 무엇이 가능한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의 90% 이상이 매립되거나 소각되거나 단 한 번 사용된 뒤 환경으로 유출된다. 이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은 2040년까지 전 세계 배출량의 약 5분의 1을 차지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플라스틱 문제는 더 이상 ‘해양 쓰레기’ 차원의 이슈가 아니라 기후 위기의 핵심 변수다.
도시와 바다를 잇는 기후 행동
앞선 기사에서 소개한 COP31 기후 고위급 챔피언 사메드 아기르바시가 “기후 행동은 도시의 폐기물 관리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면 블루 서클은 그 명제를 바다로 확장한다.
도시에서 배출된 플라스틱은 결국 해양으로 흘러들고 해양 오염은 다시 식량 시스템과 지역 경제를 위협한다. 블루 서클은 이 단절된 고리를 디지털 기술과 지역 공동체로 다시 연결했다.
저장성 생태환경부의 천위안 과장은 “블루 서클의 성공은 깨끗한 바다라는 환경적 이익과 소득 창출이라는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공정한 전환의 또 다른 얼굴
중국은 여전히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의 약 30%를 차지하지만, 2018년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 금지 이후 국내 관리 책임을 강화해왔다. 정부는 2025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블루 서클은 이러한 국가 정책을 지역 단위의 실행 모델로 구현한 사례다. 현재 이 모델은 9개 연안 성과 2개 직할시, 289개 항구로 확대될 예정이다.
UNEP와 전문가들은 이 접근이 단순히 오염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 포용성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점에서 ‘공정한 전환’의 실질적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기후 행동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기후 위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의 문제다. 저장성 어부들이 플라스틱을 건져 올리는 이 장면은 기후 행동이 회의장 밖에서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COP31을 향해 세계가 다시 한 번 목표와 수치를 논의하는 지금 블루 서클은 조용히 묻는다.
누가 행동의 주체인가, 그리고 그 행동은 누구의 삶을 바꾸는가.
기후 해법의 다음 장은, 어쩌면 가장 오래된 풍경 속에서 이미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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