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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은의 ESG건축산책 ⑧] 그린월 실시티(Green Wall Sihlcity), 도시 인프라에 자연을 입히다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03.1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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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월 실시티(Green Wall Sihlcity) [사진=jakob]

 

도시에서 가장 기능적인 건물은 종종 가장 비생태적인 건물이 되기 쉽다. 주차장, 물류 시설, 교통 인프라와 같은 건물은 도시의 필수 시설이지만 대개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남아 주변 환경과 단절된 채 존재한다. 그러나 스위스 취리히 남부의 실시티(Sihlcity)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대형 주차장 외벽을 따라 거대한 녹색 벽이 형성된 ‘그린월 실시티(Green Wall Sihlcity)’는 도시 인프라를 생태 시스템으로 전환한 대표적인 사례다. 약 600㎡ 규모의 외벽이 덩굴식물로 덮인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녹화 디자인이 아니라 건축 기술과 조경 시스템이 결합된 ESG 건축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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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월 실시티(Green Wall Sihlcity) [사진=jakob]

 

건물 외벽을 지지하는 ‘로프 숲’


그린월 실시티의 핵심은 외벽에 설치된 독특한 식물 지지 구조다. 약 25m × 24m 규모의 거대한 외벽에는 ‘야콥 로프 시스템(Jakob Rope System)’이라 불리는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블 구조가 설치되어 있다.


수평 방향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스테인리스 스틸 가닥이 기본 골격을 이루고, 그 사이에 수직 로프가 연결되어 식물이 타고 오를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이 로프는 특수 클램프를 통해 건물 구조에 고정되며, 끝단에는 장력 완화 장치가 설치되어 강풍이나 식물 성장으로 인한 하중이 건물 외벽에 과도하게 전달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시스템은 건물 외벽에 토양을 대규모로 설치하지 않고도 식물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즉, 구조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자연적인 녹색 외피를 만드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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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월 실시티(Green Wall Sihlcity) [사진=jakob]

 

덩굴식물이 만드는 자연 냉각 시스템


식재가 이루어진 이후 덩굴식물은 빠르게 성장해 몇 년 만에 건물 상부까지 도달했고, 주차장 외벽은 완전히 녹색 식물로 덮이게 되었다.


이 녹색 외피는 단순한 미관 요소가 아니라 건물의 환경 성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식물은 여름철 강한 태양빛을 차단해 외벽의 열 축적을 줄이고, 증산 작용을 통해 주변 공기의 온도를 낮춘다. 그 결과 건물 내부 온도 역시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냉방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또한 녹화된 외벽은 도시 대기질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식물은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하며, 곤충과 새들이 서식할 수 있는 작은 생태 공간을 제공한다. 이는 고밀도 도시에서 점점 사라지는 생물다양성을 회복하는 데도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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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월 실시티(Green Wall Sihlcity) [사진=jakob]

 

복합 도시 개발 속의 생태 인프라


그린월 실시티가 자리한 실시티는 취리히 남부에 조성된 대규모 복합 개발 지구다. 약 10만㎡가 넘는 부지에는 레스토랑, 바, 카페, 영화관, 문화센터, 디스코텍, 호텔, 쇼핑센터, 건강 및 웰니스 시설, 그리고 주거 공간이 함께 들어서 있다.


이 지역은 단순한 상업 지구가 아니라 문화와 생활, 여가가 결합된 새로운 도시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그린월 프로젝트는 이러한 복합 도시 속에서 환경적 균형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특히 대형 주차장과 같은 시설은 도시 경관에서 종종 부정적인 요소로 인식되지만, 외벽 녹화를 통해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능 중심의 인프라가 도시 생태계의 일부로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건축 기술과 자연의 협력


이 프로젝트는 건축가 그룹 라더샬파트너 AG(raderschallpartner AG)와 조경 건축가들의 협업으로 완성되었다. 설계 과정에서는 식물의 성장 속도, 바람 하중, 구조 안전성, 유지 관리 방식 등이 모두 고려되었다.


특히 로프 기반 녹화 시스템은 향후 다양한 건물 유형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적 모델로 평가된다. 대규모 구조 변경 없이도 기존 건물 외벽에 녹지를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도시 재생이나 노후 건물 리모델링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높은 접근 방식이다.


도시 인프라의 ESG 전환


그린월 실시티는 초고층 랜드마크 건물처럼 화려한 프로젝트는 아니다. 그러나 이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도시의 지속 가능성은 반드시 거대한 친환경 건물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차장, 상업시설, 교통 인프라 같은 일상적인 도시 구조물도 자연과 결합할 수 있다.


ESG 시대의 건축은 이제 건물 내부의 에너지 효율을 넘어 도시 전체의 생태 구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취리히의 한 주차장 외벽에서 시작된 이 작은 숲은 도시 인프라가 어떻게 환경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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