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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사람들 ㊹] 땅을 지키는 목소리, 조안 칼링(Joan Carling)… 자연과 권리를 연결하다

  • 김지원 기자
  • 입력 2026.03.2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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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을 지키는 목소리, 조안 칼링(Joan Carling) [사진=UNEP]

 

개발의 이름으로 사라지는 것들


필리핀 북부 코르딜레라 산악지대. 금과 구리, 망간이 풍부한 이 지역은 오랜 시간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는 압력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 땅은 단순한 자원 지대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원주민 공동체의 삶과 문화, 정체성이 축적된 공간이다.


조안 칼링은 바로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원주민 인권 활동가다. 그녀는 지난 20여 년간 토지 권리와 환경 보호를 위해 지역과 국제 사회를 넘나들며 활동해 왔다.


그녀의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질문은 오늘날 ESG 논의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자연’과 ‘삶’을 분리할 수 없는 사람들


칼링이 속한 칸카네이 부족을 비롯한 코르딜레라 원주민들에게 자연은 자원이 아니라 삶 그 자체다. 숲은 식량과 의약품을 제공하고, 강은 공동체를 연결하며, 땅은 정체성과 역사로 이어진다.


하지만 대형 광산 개발과 댐 건설 프로젝트는 이러한 관계를 단절시켜 왔다.


그녀가 젊은 시절 목격한 치코강 수력발전 댐 계획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 만약 프로젝트가 진행됐다면 수십 개 마을과 약 10만 명의 원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을 뻔했다. 실제로 개발에 반대한 지도자들이 투옥되고, 일부는 목숨을 잃기도 했다.


칼링은 이 경험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환경 파괴는 곧 공동체의 붕괴다.”


경제가 보지 못한 것들


이 지점에서 파르타 다스굽타의 문제의식과 맞닿는다.


다스굽타가 자연을 ‘자산’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칼링은 그 자산이 실제로 어떻게 훼손되고 있는지를 현장에서 증언해온 인물이다. 광산 개발은 단기적으로 GDP를 증가시킬 수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토양 오염과 수질 악화, 생물다양성 손실, 그리고 공동체 붕괴와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손실은 기존의 경제 지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개발의 비용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다. 이 지점에서 칼링의 문제의식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우리가 무엇을 가치로 삼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칼링의 활동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비용’을 드러내는 데 있다. 그녀에게 자연은 단순히 보호해야 할 환경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존엄, 그리고 권리와 직결된 문제다. 다시 말해 자연의 파괴는 곧 인간의 권리가 침해되는 과정이며, 이는 환경 문제가 아닌 인권의 문제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경제와 환경, 그리고 사회적 정의를 분리해서 볼 수 없음을 보여주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현실을 바라봐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환경 보호’에서 ‘권리 보호’로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환경 문제를 기술과 정책 중심의 과제로 다뤄왔다. 그러나 조안 칼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환경 보호의 출발점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땅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의 권리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녀는 유엔 원주민 문제 상임포럼 위원으로 활동하며 원주민의 목소리를 국제 의사결정 구조 안으로 끌어올리는 데 힘써왔고, 유엔 기후변화협약REDD+ 논의 과정에서도 원주민 권리가 배제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이는 환경 정책이 단순한 규제나 기술적 해법을 넘어, 정의와 권리의 문제로 확장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녀는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을 찍히는 등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링은 물러서지 않는다. 그녀의 실천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존재들을 가시화하고 배제된 목소리를 중심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지속적인 노력이다. 결국 그녀의 행보는 환경 보호가 곧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며, 우리가 어떤 기준과 가치 위에서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지 다시 묻게 만든다.

 


“우리는 개발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미래를 지키고 있다.”


ESG의 ‘S’를 다시 묻다


ESG에서 환경(E)은 비교적 명확하다. 탄소 배출, 에너지 전환, 자원 효율성 등 측정 가능한 지표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회(S)는 여전히 모호하다. 칼링의 활동은 이 ‘S’의 본질을 다시 정의한다.


누가 개발의 이익을 얻는가

누가 비용을 감당하는가

의사결정 과정에 누가 참여하는가


원주민 공동체는 개발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에서는 배제되는 모순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한, ESG는 겉으로만 그럴듯한 기준에 머물 뿐 실제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지속가능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환경 지표를 개선하는 것을 넘어, 누구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누가 배제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결국 공정성과 참여가 결여된 ESG는 그 본래의 의미를 온전히 실현할 수 없다.

 

칼링은 반복되는 위협과 탄압 속에서도 ‘회복력(Resilience)’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회복력은 단순히 어려움을 견디고 살아남는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의 기억과 연대,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삶을 पुन구성해 나가는 힘이다. 다시 말해 회복력은 개인의 생존 전략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실천의 방식이다.

 

공동체 간 연대

전통 지식의 계승

자연과의 관계 유지


이 세 가지가 결합된 구조다.


이는 현대 경제가 말하는 회복력과는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경제 시스템이 충격 이후 얼마나 빠르게 회복하느냐를 묻는다면, 그녀는 애초에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연을 지키는 사람들


 

 

최근 연구들은 원주민이 오랜 시간 관리해온 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생물다양성이 더 잘 보존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나 외부 개입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을 대하는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주민 공동체는 자연을 소유하거나 개발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과 자연이 상호 의존하는 관계 속에서 이해해왔다. 이러한 인식은 자연을 지속 가능하게 이용하고 보호하는 삶의 방식으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더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게 만든다.

 

 

칼링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연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단순히 환경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충분하지 않으며, 오히려 오랜 시간 자연을 지켜온 사람들과 그들의 지식, 삶의 방식을 함께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이다. 즉, 생태 보존은 문화와 공동체의 존중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고, 그 관계를 실천해온 이들을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환경 보호가 가능해진다.

 

경제와 권리가 만나는 지점


다스굽타가 경제의 언어로 자연의 가치를 설명했다면, 칼링은 삶의 언어로 그것을 증명한다. 한쪽은 ‘자연자본’이라는 개념을 통해 제도와 시스템의 변화를 이끌어내려 하고, 다른 한쪽은 현장에서 실제로 그 기반이 무너지고 있음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두 흐름은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며, 바로 오늘날 ESG가 나아가야 할 중요한 지점을 형성한다. 이는 단순히 수치와 지표를 개선하는 것을 넘어, 현실의 삶과 공동체를 함께 고려하는 통합적인 दृष्ट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보이지 않던 목소리를 드러내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조안 칼링의 이야기는 단순한 환경 운동가의 개인적 서사를 넘어, 우리가 어떤 경제를 선택하고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둘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결국 지속가능한 미래는 숫자와 정책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경험이 함께 반영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자연을 자산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삶의 기반으로 이해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


보이지 않던 자연을 드러낸 것이 다스굽타였다면,

보이지 않던 사람들을 드러내는 것이 조안 칼링이다.


그리고 이 두 질문이 만나는 순간,

ESG는 비로소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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