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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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ngyo Housing-Riken Yamamoto, 성남시, 한국 [출처=archdaily]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현대 주택은 사생활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밀폐형 구조로 발전해왔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이러한 공간 설계는 한편으로는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보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연결성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인구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로 인해 가족의 형태는 더욱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기존의 가족 공동체가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대가족이 중심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핵가족으로 분화되었고, 이제는 핵가족에서 다시 1인 가구로 세분화되는 추세이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이 독립적인 존재로서 사회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족이라는 전통적인 울타리가 약화된 시대에는 개인이 단순히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구성해 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거 공간의 역할도 새롭게 정의될 필요가 있다. 이제 주거는 단순히 사적 공간을 넘어, 이웃과 함께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 변모해야 한다. 현대의 집합 주거는 단순한 물리적 집합체가 아니라, 공동체적 가치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적 배치와 관계를 담아내야 한다. 즉, 건축은 단순한 건물 설계를 넘어, 구성원들이 공동체적 경험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판교 하우징은 위와 같이 변화하는 현대 주거에 따라 기존의 문제점을 타파하고, 새로운 개념의 주거 형태를 선보인 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의 작품이다. 3-4층 규모의 건축물을 약 9-13개의 주거 단위로 구성한 클러스터가 9개로 구성된 판교 하우징은 2층의 공동 데크를 통해 각 주거 단위의 투명한 공간을 연결한다. 다양한 용도로 활용 가능한 거대한 현관 역할을 하며, 클러스터 주변 환경의 특성에 맞춰 구성이 가능하다.


공간을 여는 주거


자녀 교육을 위해 학교나 학원을 이용하고, 고령자는 요양 시설에 의탁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는 주거 공간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외부 시설이 보완하는 구조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주택의 한계가 외부와의 연결을 유도하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이는 가족 단위에서 사회로 시선이 확장되는 하나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생활 방식의 차이를 넘어, 거주자들이 주거 공간에 기대하는 기능과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전에는 주택이 단순히 먹고 자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재택근무, 여가, 공동체 활동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따라 주택의 공간 구성도 변화하고 있으며, 특히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명확히 구분되던 과거 주거와 달리, 판교 하우징은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형태로 설계되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와 연결되는 주거 공간의 역할로서 지역사회 구성원과 더욱 풍요롭고 조화로운 생활 환경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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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방적인 마당 [출처=archdaily]

 

관계를 설계하는 건축


야마모토 리켄은 기존의 건축이 지나치게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분리함으로써 개인을 사회로부터 단절시키는 문제를 지적하며, 개별 주거 공간이 지역사회와 적극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일정 부분 공유 가능한 영역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교 하우징에서도 이러한 철학이 반영되어 공공 공간을 단순한 부대시설이 아닌,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활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전통적인 아파트나 주거 단지처럼 개별 유닛이 독립적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주거와 커뮤니티 공간이 자연스럽게 엮이는 구조를 취한다. 각 세대의 경계를 엄격히 나누기보다, 공동 마당, 공유 복도, 개방형 테라스 등을 통해 입주민들이 서로 마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소통을 유도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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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F, 투명한 거실 공간 [출처=건원건축 홈페이지]

 

이는 야마모토 리켄이 강조하는 ‘공간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단순히 벽을 허물고 개방적인 구조를 만든다고 해서 지역사회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건축은 가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건축은 단순한 공간의 창조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람과 환경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매개체이다. 건축물이 완성된 이후에는 그 공간이 삶의 다양한 조건과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인간 생활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야마모토 리켄의 저서 『건축은 가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에서 “건축물은 가설을 바탕으로 지어지며, 지어진 건물은 역으로 그러한 가설을 강화시킨다. 가설은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하기 때문에 틀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건물로 지어지고 나면 … 가설이 더 이상 가설이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만든 객관적인 근거로 받아들 여지는 것이다. … 단순한 가정이 건축물이라는 용기를 통해 보여질 때 하나의 당당한 근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 우리는 그러한 바탕을 의심해야만 한다. 가설이 객관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기 시작할 때, 우린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를 통해 건축은 단순히 제공된 환경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당연한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물리적 기반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건축 공간은 생활의 기반으로써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하며, 건축가는 공간을 구현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의 주거 공간은 단순한 주거 기능을 넘어, 다양한 관계를 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건축이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작용할 때, 우리는 더 따뜻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현동훈 (Hyun Dong Hun)


유니버설 디자인, 친환경 건축 등 사회적인 가치를 연구하는 공간디자이너이다. 국민대학교 공간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공간디자인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사회적 가치가 포함된 건축과 이를 표현하는 공간을 탐구하고 있다. 미래사회의 건축 방향성과 트렌드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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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동훈의 공간언어 ①] 공간철학이 담겨진 공동체의 공간언어 ‘판교 하우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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