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e Su-ok's Spatial Resilience⑩] Where Culture Begins Again... Daegu Art Factory
중심이 이동한 도시, 남겨진 시간의 자리
도시는 늘 방향을 바꾼다. 확장과 개발이 거듭될수록 새로운 중심은 형성되고, 오래된 장소는 조금씩 뒤편으로 밀려난다.
대구 역시 그 흐름을 피하지 못해 산업 성장과 외곽 개발이 이어지는 동안 활동의 축은 신시가지로 옮겨갔고, 사람의 흐름과 산업 구조 변화가 겹치면서 기존 시가지는 점차 활력을 잃었다. 중구 일대에 남은 것은 과거의 시간이었다. 기능을 멈춘 건물들, 오래된 거리, 그리고 산업도시의 기억이 켜켜이 쌓인 풍경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장소가 같은 방식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닌, 멈춘 듯 보이는 자리에서도 다음 이야기는 준비된다. 수창동에 자리한 이 문화예술 공간은 바로 그런 전환의 장면을 보여준다. 담배 생산과 보관을 담당하던 산업 창고였던 곳이 이제는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사용하는 창작 플랫폼으로 다시 움직이고 있다.
산업시설에서 문화 거점으로
공간의 출발은 문화예술과 거리가 있어 본래의 건물은 담배 생산 체계 안에서 물자를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었고, 공장과 유통, 노동의 시간에 맞물려 작동하던 도시 질서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곳은 단순한 부속 시설이 아니라, 당시 산업 구조를 구성하던 한 요소로 읽힌다.
산업 환경이 바뀌면서 건물의 기능도 직접적인 변화를 맞았다. 생산이 중단된 뒤 한동안 쓰임을 잃은 채 남겨졌으며, 비슷한 성격의 산업시설들이 철거와 재개발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가던 시기에도 이곳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결국 선택된 것은 소멸이 아니라 유지였고, 그 위에 새로운 기능이 더해졌다.
원도심 쇠퇴에 대응하려는 문화 재생 전략 속에서 이 공간은 문화예술 거점으로 다시 기획되었다. 리모델링을 거쳐 시민에게 열린 플랫폼으로 전환되면서 건물의 의미 역시 달라졌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외형 변화보다 기능의 이동이다. 물건을 보관하고 생산을 뒷받침하던 자리는 이제 예술적 실험과 창작이 이루어지는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때 담배가 만들어지던 시간의 일부를 이루었던 장소는 이제 문화와 창작 활동이 생성되는 시간의 일부가 되었다. 생산의 대상은 달라졌지만, 무언가를 길러내고 만들어내는 장소라는 성격 자체는 이어지고 있다. 바로 이 연속성과 전환이 이곳을 단순한 리모델링 사례에 머물지 않게 하며, 도시의 기억이 다른 언어로 다시 살아나는 장면으로 읽게 만든다.
경험이 축적되는 공간 구조
이 공간의 내부는 층위에 따라 기능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흐름 안에서 이어진다. 저층부에는 시민을 위한 전시와 체험 공간이 놓여 있다. 전시장과 공동 작업 공간, 어린이 대상 예술교육 시설, 문화예술 프로그램 운영 공간이 함께 자리하면서 관람은 단순히 작품을 보는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머무르고 배우며 서로 교류하는 시간이 겹쳐지면서 공간 경험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중간 층에는 공연장과 예술정보실이 들어서 있다. 이 구역은 지역 문화 자료를 축적하고 공유하는 역할을 맡으며, 기록과 정보가 오가는 아카이브의 성격을 드러낸다. 아래층이 감각적 체험의 영역이라면, 이곳에서는 축적과 전달의 기능이 보다 선명하게 나타난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분위기는 또 한 번 달라진다. 창작자들이 일정 기간 머물며 작업을 이어가는 레지던시 공간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실과 숙소, 공동 이용 공간이 마련된 이 구역은 아래층의 감상과 참여를 넘어 실제 창작이 이루어지는 기반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수직적으로 조직된 구조는 완성된 결과물만 보여주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예술이 형성되고 축적되며 다시 공유되는 전 과정을 함께 담아낸다는 점에서, 이 공간은 감상과 참여, 기록과 창작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이어지는 구조를 보여준다.
공간 경험과 문화 서사의 형성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은 폴 리쾨르(Paul Ricoeur)가 말한 미메시스의 구조와 연결된다. 그는 인간의 삶이 경험, 서사, 실천이라는 흐름 속에서 해석되고 다시 구성된다고 보았다. 현실 속에서 축적된 경험은 하나의 이야기로 조직되며, 그렇게 형성된 서사는 다시 사회적 실천을 거치면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문화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전시를 관람하고, 공연을 체험하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시민 활동에 함께하는 일은 각각 분리된 사건으로 머물지 않는다. 공간 안에서 쌓인 경험은 공동체의 기억으로 남고, 그 기억은 사회적 의미를 띠면서 하나의 문화적 서사로 발전한다. 이후 그 서사는 시민 참여와 공동체 활동을 통해 현재의 삶 속에서 새롭게 갱신된다.
예술 전시와 공연, 교육, 참여 프로그램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바로 이러한 순환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이 장소는 작품 감상에만 머무는 곳이 아니라, 경험과 기억이 축적되고 그 축적이 새로운 문화적 의미로 전환되는 장으로 기능한다.
산업의 기억이 이어가는 문화의 시간
이 공간을 바라보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왜 어떤 건물은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역할을 얻게 되는가.
아마도 그 이유는 그 장소가 이미 충분한 시간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산업 창고였던 건물에는 생산 활동의 흔적이 남아 있고, 구조와 규모 속에는 산업 시대의 기억이 여전히 자리한다. 그렇게 축적된 시간은 지나간 기능의 잔재에 머무르지 않고, 이후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 공간의 의미는 남아 있는 흔적을 품은 채 그 위에 새로운 시간을 겹쳐 놓았다는 점에 있다. 한때 담배를 다루던 자리에는 이제 창작 활동이 이루어지고, 물자를 보관하던 기능은 전시와 작업을 담아내는 역할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멈추었던 산업의 시간은 문화의 흐름 속에서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모든 변화가 새로운 건물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이미 존재하는 공간을 새롭게 읽고 다른 기능을 부여하는 일이 도시를 더 깊이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시를 바꾸는 힘은 언제나 새로운 건축에만 있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생산이 멈춘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 문화의 시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건물은 오늘도 원도심에 축적된 오래된 기억과 앞으로 이어질 새로운 미래를 조용히 연결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수옥(Lee Su Ok)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실내설계 전공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동 일반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중이다. 학술 연구의 일환으로 유휴 산업시설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의 리질리
언스 공간 특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리질리언스 연구는 기존 산업유산을 단순히 보
존의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현대 도시 안에서 지속가능한 문화·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해석하여 도시재생과 공간 정의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
다. 더불어, ㈜한국이러닝교육원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디자인 및 공간 관련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으며, 한국 ESG위원회 인권전략위원장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을 중심
으로 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연구 분야는 도시재생과 산업유산 재생, 문화유
산의 활용 방안에 대해 보다 실제적이고 통합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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