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e Su-ok's Spatial Resilience④] The story of the atmosphere that is becoming, Two Hometowns The School Where the Moon Rises
폐교 위에 감정을 쌓는 법: 감응적 리질리언스의 구조
경북 상주시 이안면 아천1리. 문경과 경계를 이루는 산자락 아래, 한때 주민들이 자발적 으로 건립한 아천농예기술학교가 있다. 1964년 개교 이후 은척중학교 아산분교로 운영되 다 2011년 폐교된 이 건물은 오랫동안 잊혀진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공간 은 '달두개학교'라는 새로운 이름 아래, 공동체의 정서적 중심지이자 청년과 지역이 서로 를 감응하는 복합문화 플랫폼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공간은 단지 물리적 회복이나 재생 을 넘어선, 감정과 관계의 층위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감응적 리질리언스(Affective Resilience)의 실천 사례이다.
감응적 리질리언스는 외상 이후의 복원력을 단지 구조적 회복이나 기능적 복귀로만 한정 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과 기억, 정서적 흐름이 공간을 통해 재구성되는 과정을 중시하며, 일상 속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체적 감각이 회복되는 구조를 뜻한다. 달두개학교는 바 로 그 감응의 리듬 속에서 회복의 풍경을 천천히 되살려가는 공간이다.
‘달두개’라는 이름은 이 마을 앞의 지평 저수지와 하늘 위 달빛이 동시에 비치는 풍경에서 유래한다. 자연과 상상이 교차하는 이 상징은 곧 이 공간이 현실과 가능성, 일상과 실 험이 중첩되는 장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도시를 벗어난 선택, 폐교로 향한 젊은 삶들
이 공간의 변화는 청년 개개인의 삶의 전환에서 시작되었다. 도시에서 디자인을 공부하 고 기업에 재직 중이던 한 청년은 반복되는 삶의 구조 속에서 '삶의 주체성'을 찾고자 마 을에 도착했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귀촌이 아니라, 기존의 속도와 가치에서 벗어나 ‘자 신이 쓸모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과정이었다.
초기에는 각자의 사회적 실험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방향은 '함께 살아가는 구조 '였다. 낯선 땅에서의 공동체 구축은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마 을의 빈 공간은 삶의 감정이 유통되는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 학교는 더 이상 비어 있는 폐교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드나들고, 관계가 만들어지며, 기억이 새롭게 쌓이는 장소로 바뀌었다.
관계를 짓는 공간의 결
달두개학교의 교실은 단지 기능적 공간의 분절이 아니라, 감정과 정서의 흐름을 조직하 는 구조로 재배치되었다. 마을카페, 도서관, 목공방, 공예실, 체험실 등은 각기 다른 프로 그램을 품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머무는 경험이 감정을 변화시키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오미자 에이드를 마시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손수 도정한 쌀로 지은 밥을 나누며 관계를 만든다.
공간은 방문자와 주민이 단선적 관계로 머무는 곳이 아니다. 매월 전해지는 소식지, 농산물 정기배송, 공간을 매개로 한 편지와 방문은 단절된 사회 속에서 감정을 지속시킬 수 있는 매개로 작동한다. 반복적이고 정직한 교류는 작은 정서적 신뢰를 쌓고, 그 신뢰는 다시금 공간을 기억하게 한다. 학교는 이제 관계의 기반이 되어가고 있다. 시골의 한 폐 교가 누군가에겐 조카의 집이고, 고향 없는 청년들에겐 돌아갈 수 있는 ‘시골집’이 되고 있다.
살아보기에서 다시 돌아오기까지
달두개학교에서 운영되는 ‘시골언니 프로젝트’는 청년들에게 짧게든 길게든 이 마을에서 ‘살아보는 시간’을 허용한다. 이 체류는 단순한 체험을 넘어, 청년이 마을의 일원이 되어 관계를 맺고 감정을 교환하는 시간이다. 며칠에서 몇 달까지 이어지는 머묾 속에서 청년들은 농사에 참여하고,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며, 지역의 공예가들과 함께 작업한다.
특별한 연출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 일상은 공동체의 새로운 서사를 형성하며, 머무는 이에게 감정과 기억, 몸의 리듬을 조율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곳에서 체류자는 단순한 방문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의 일부가 된다. 떠나는 이들은 종종 “다시 오겠다” 는 약속을 남기고, 실제로 계절이 바뀌면 다시 돌아온다. 정주하지 않아도 관계는 이어지고, 고정되지 않아도 공동체는 형성된다. 그것이 달두개학교의 회복력이며, 이 마을이 감응하는 방식이다.
마을의 느티나무가 된 폐교
학교를 중심으로 마을의 동아리도 다시 살아났다. 어르신들의 통기타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의 웃음이 번진다. 이곳에선 문화예술가들이 머물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마을 사람 들과 손을 맞잡는다. 공간을 단지 임대하거나 대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엮어가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마을의 구성원 모두를 주체로 만든다. 단지 청년들의 공간이 아닌, 주민과 외지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의 장소인 셈이다. 오래된 교실 하나하나에 감정이 묻어나고, 시간의 층이 쌓여가며, 이 공간은 다시 마을의 중심으로 회복된다.
조용히 작동하는 감응의 구조
누군가는 말한다. "이곳에 오면 고향이 생긴 것 같다." 고향이 없는 세대에게 이 말은 단지 감상이 아니라, 깊은 현실이다. 이 학교는 그런 이들에게 돌아올 수 있는 풍경, 안부 를 나눌 수 있는 사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달두개학교는 크고 눈에 띄는 건축이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작고 정직한 일들은 기억되고, 반복되고, 관계를 만들며 조용히 공간의 리질리언스를 증명한다. 감정 을 품고, 관계를 엮고, 사람을 기다리는 이 폐교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고향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공동체는 어떻게 살아나는가.”
이 질문은 곧, 감응의 구조를 통해 작동하는 리질리언스의 진짜 의미를 되묻게 한다. 달두개학교는 침묵 속에서 그 답을 조용히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이수옥(Lee Su Ok)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실내설계 전공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학술연구의 일환으로 유휴 산업시설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의 리질리언스 공간 특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리질리언스 연구는 기존 산업유산을 단순히 보존의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현대 도시 안에 서 지속가능한 문화·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해석하여 도시재생과 공간 정의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이러닝교육원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디자인 및 공간 관련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으며 한국 ESG위원회 인권전략위원장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연구 분야로는 도시재생과 산업유산 재생, 문화유산의 활용 방안에 대해 보다 실제적이고 통합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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