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 국회에서 통과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이른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네트워크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하면서 이 법안을 둘러싼 논쟁은 국내 입법 차원을 넘어 국제 질서와 디지털 거버넌스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사안은 각국이 디지털 공간을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플랫폼 책임·무역 질서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미국 국무부는 해당 법이 미국 기반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사업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허위정보와 불법정보를 규제하는 과정에서 정부 당국에 광범위한 판단 권한을 부여할 경우, 관점에 따른 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는 딥페이크와 허위정보의 폐해를 인정하면서도 규제 중심의 접근보다는 사법적 구제나 민사적 책임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미국식 디지털 거버넌스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반응의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관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혐오 표현이나 차별 조장 콘텐츠를 차단하는 행위 자체를 ‘표현의 자유 침해’로 간주해 왔으며, 특히 보수 진영의 발언이 검열된다는 문제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이 같은 시각은 미국 정부가 자국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려는 해외 정부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미국의 반발을 불러온 또 다른 이유는 이 법이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모델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DSA는 대형 플랫폼에 불법·유해 콘텐츠에 대한 적극적 관리 책임을 부과하는 대표적인 규제 법안으로 미국은 이를 자국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규제로 인식해 왔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EU의 DSA 집행 과정에서 강경한 외교적 대응을 한 전례가 있으며, 이 때문에 한국의 법안 역시 유사한 외교·통상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 재계의 시각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미국 기업들은 한국이 기존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 논의, 구글 지도 반출 문제 등에 이어 이번 정보통신망법 개정으로 또 하나의 ‘비관세 장벽’을 도입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한국이 EU식 규제 모델을 수용함으로써 미국이 강조해 온 자유로운 디지털 시장과 점점 다른 규제 철학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는 한미 간 무역·관세 협상과 디지털 협력 논의에 불필요한 마찰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사안은 국제 디지털 거버넌스의 구조적 긴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와 혁신을 중시하며 최소 규제를 지향하는 반면 EU는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과 이용자 보호를 앞세운 강력한 규제 체계를 구축해 왔다. 한국은 허위조작정보와 딥페이크로 인한 민주주의 훼손을 막기 위해 EU식 접근을 참고했지만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미·EU 간 규범 경쟁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 셈이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아직 시행까지 시간이 남아 있지만, 이미 미국 정부는 외교 채널과 고위급 경제 협의체를 통해 한국 측에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미국 재계와 정치권의 문제 제기가 이어질 경우 이 법안은 단순한 국내 정책 논쟁을 넘어 외교·통상 현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공간의 규율을 둘러싼 각국의 접근 방식이 갈수록 엇갈리는 상황에서 한국이 국내적 필요와 국제 질서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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