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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조원 ‘돈 복사’ 사건이 남긴 질문: 가상자산은 결국 신뢰의 문제다

  • 하윤아 기자
  • 입력 2026.02.08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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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썸의 60조 원대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 [사진=빗썸]

 

빗썸의 60조원대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는 단순한 시스템 오류를 넘어 가상자산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어떤 구조 위에 서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코인이 복사됐다”는 표현을 쓰며 불신을 드러냈지만 사실 그 말은 틀리지 않는다. 가상자산 거래소 내부에서 장부상 숫자만 바뀌었을 뿐인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수량이 유통되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은 원래 블록체인이라는 분산원장 기술 위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거래소가 고객 자산을 보관하고 매매를 ‘장부 변경’으로 처리하는 순간부터 가상자산은 기술이 아니라 운영 주체의 신뢰로 유지되는 자산이 된다. 즉, 가상자산은 “실체 없는 디지털 숫자”로 보이지만 시장이 그 숫자에 가치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실물 자산과 동일한 금융 자산이 된다. 이번 사건에서처럼 장부상의 숫자가 급증하고 다시 줄어드는 과정이 벌어지면 그 숫자를 믿고 거래하던 사람들의 신뢰는 단숨에 무너진다.


문제의 핵심은 장부 거래 방식 자체가 아니라 그 방식이 ‘신뢰 기반 자산’이라는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중앙화 거래소는 고객이 입금한 코인을 자체 지갑에 보관하고 매매가 발생할 때마다 블록체인에 기록하지 않고 장부만 바꾼다. 이는 거래 속도, 수수료, 편의성 면에서 유리하지만 동시에 거래소가 실제 보유한 자산과 장부상의 잔고가 어긋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번 사건은 그 위험이 현실로 드러난 사례다. 장부상 비트코인 유통량이 평소 4만6천개 수준에서 66만개로 급증한 것은 전 세계 비트코인 총발행량의 약 3%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런 ‘가상의 숫자’가 시장을 흔들고 일부 이용자는 실제로 그 숫자를 기반으로 매도까지 했다는 사실은 가상자산이 얼마나 빠르게 ‘현실의 돈’처럼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빗썸 측은 장부 숫자를 되돌리는 방식으로 코인을 회수했고 “지갑 보유량은 고객 화면과 100%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용자들의 불신은 단순히 “회수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누가 장부를 통제하는가”이다. 장부상 코인이 실제보다 많아도 이용자는 알 방법이 없고, 내부 누군가가 고의로 장부를 조작해도 즉시 탐지할 수 없다. 즉, 거래소 내부 통제 실패는 곧바로 시장 전체의 신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가상자산은 실물 자산과 달리 “현금”이라는 물리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거래소가 제공하는 장부와 시스템 그리고 운영 주체에 대한 신뢰가 자산의 유일한 기반이 된다. 그 기반이 흔들리면 가상자산은 회생 불가능한 수준의 신뢰 붕괴를 맞게 된다.


이 사건은 또한 가상자산이 기술적 안전장치를 갖고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블록체인은 분산원장이라는 기술적 장치를 제공하지만 중앙화 거래소라는 ‘중앙 주체’가 개입하는 순간, 기술보다 운영(거버넌스)이 더 중요해진다. 거래소는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라 자산을 보관하고 유통시키는 금융기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내부 통제, 리스크 관리, 실시간 잔고 검증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거래소는 금융 시스템의 신뢰를 흔드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상자산 시장의 규제 강화 논의는 단순한 ‘기술 규제’가 아니라 ‘거버넌스 규율’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거래소의 장부와 실제 보유량을 실시간으로 검증하는 시스템, 내부 권한 분리와 통제, 독립적 외부 감사 체계, 사고 발생 시 즉시 공개하고 책임을 명확히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거버넌스가 부재하면 가상자산은 더 이상 ‘자유로운 디지털 자산’이 아니라 언제든 붕괴할 수 있는 신뢰 기반의 취약한 금융 상품이 된다.


가상자산은 이제 “실체 없는 디지털 숫자”가 아니다. 시장이 그것을 실물 가치로 인정하는 순간 가상자산은 실체를 갖게 된다. 그 실체는 기술이 아니라 신뢰다. 그 신뢰를 지키는 것은 단순한 시스템 안정이 아니라 거버넌스의 문제다. 빗썸 사건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가상자산이 살아남으려면 기술보다 먼저 거버넌스를 완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의 신뢰 붕괴를 맞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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