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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AI, 그리고 변화하는 영화 산업…제79회 칸 영화제가 비춘 세계 영화계의 현재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05.13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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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nes Film Festival, 제79회 칸 영화제 개막작 《La Vénus électrique》 피에르 살바도리 감독 작품 제79회 칸 영화제 개막작 [사진=cannes.2026 인스타그램]

 

프랑스 남부 리비에라에서 개막한 칸 영화제가 올해도 세계 영화계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화려한 레드카펫과 스타들의 향연 속에서 열린 이번 영화제는 단순한 영화 축제를 넘어 정치와 인공지능(AI), 그리고 변화하는 할리우드 산업 구조까지 담아내며 세계 문화계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올해 개막식의 중심에는 피터 잭슨 감독이 있었다. 반지의 제왕으로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그는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시상은 영화 속 프로도 배긴스 역으로 잘 알려진 일라이자 우드가 맡았으며, 현장에는 봉준호, 조앤 콜린스, 하이디 클룸, 제임스 프랭코 등 세계적인 문화예술 인사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수상 소감에서 잭슨 감독은 “내가 왜 이 상을 받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며 특유의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그의 다큐멘터리 Get Back을 기념하는 음악 공연이 펼쳐지며 개막식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게 물들였다.


하지만 올해 칸 영화제의 분위기를 가장 강하게 이끈 것은 영화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논의였다. 개막 선언에 나선 제인 폰다는 “영화는 언제나 저항의 행위였다”고 말하며 영화가 사회 현실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함께 참석한 공리 역시 영화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공감의 뜻을 전했다.


특히 올해 황금종려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은 예술과 정치가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 메시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배척할 수 없고, 정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영화를 거부할 수도 없다”며 영화가 시대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예술임을 강조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인사들 역시 국제 정세와 표현의 자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영국 감독 켄 로치와 오랫동안 작업해온 시나리오 작가 폴 라버티는 가자지구 사태와 관련해 할리우드 내부 분위기를 비판하며, 전쟁 반대 목소리를 낸 배우들이 사실상 배제되는 현실을 우려했다. 이는 최근 세계 영화계에서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검열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화두가 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인공지능(AI)에 대한 논의도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데미 무어는 “AI는 이미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다”며 기술과 대립하기보다 공존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창작자 보호와 윤리적 기준 마련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로 최근 영화 산업은 생성형 AI 기술의 빠른 발전과 함께 거대한 변화를 맞고 있다. 시나리오 작성, 영상 제작, 음성 합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활용이 확대되면서 창작의 방식 자체가 새롭게 바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저작권과 배우·작가들의 권리 보호 문제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올해 칸 영화제에서는 과거와 달리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 작품들의 존재감이 크게 줄어든 점도 눈길을 끌었다. 이전에는 탑건: 매버릭이나 엘비스 같은 블록버스터 작품들이 칸을 글로벌 홍보 무대로 활용했지만, 올해는 대부분의 스튜디오 영화들이 불참했다. 업계에서는 높은 마케팅 비용과 혹평에 대한 부담, 스트리밍 중심으로 변화하는 산업 구조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티에리 프레모는 “할리우드는 지금 재편 과정에 있다”며 변화하는 영화 산업의 현실을 언급했다. 대형 미디어 기업 간 인수·합병과 스트리밍 플랫폼 경쟁 심화가 영화 제작과 배급 환경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칸 영화제는 여전히 세계 영화 예술의 중심 무대로서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도 페드로 알모도바르, 제임스 그레이, 나홍진,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하마구치 류스케 등 세계적인 감독들이 신작을 선보이며 영화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결국 올해 칸 영화제는 단순한 영화 축제를 넘어, 오늘날 영화가 세계 정치와 기술 변화, 그리고 산업 재편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문화적 무대가 되고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이어지는 이러한 논의들은 영화가 여전히 시대를 비추는 가장 강력한 예술 가운데 하나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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