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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 박상희 작가의 '도시와, 그 사이'... "처음 보는 골목인데 왜 그리 익숙할까"

  • 유연정 기자
  • 입력 2026.06.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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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18일, 여의도 아트살롱 드 아씨서 '작가와의 대화'…
  • 27년 간 이어온 시트지 작업…도시의 기억과 온기를 기록하는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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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희 작가의 작품 [사진=ESG코리아뉴스]

 

처음 보는 풍경인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가본 적 없는 골목인데 언젠가 저 길을 걸었던 것 같고, 처음 보는 테라스의 호프집인데도 어느 여름밤 친구와 마주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기울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신호를 기다리며 멈춰 섰던 횡단보도, 늦은 밤 비에 젖은 도로 위로 번지던 자동차 불빛, 골목 어귀를 밝히던 간판의 온기까지...

 

박상희 작가의 그림 앞에 서면 이내 자신의 언제인지 모를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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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살롱 드 아씨에서 열린 박상희 작가와의 대화 시간 [사진=ESG코리아뉴스]

 

18일 서울 여의도 아트살롱 드 아씨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는 그 익숙함의 이유를 들여다보는 자리였다. 전시장을 채운 작품들은 서울과 홍콩, 뉴욕의 밤 풍경을 담고 있었지만, 정작 작가가 이야기한 것은 도시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 그리고 일상이다.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박상희 작가는 처음부터 작가를 꿈꾸며 출발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대학 시절만 해도 미술계는 추상회화가 중심이었고, 당시 학생들 역시 그러한 흐름 속에서 작업을 이어가던 시기였다. 

 

전환점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생활을 위해 시작한 만화회사 아르바이트였다. 만화 작업에 사용되던 스크린톤을 접하면서 이를 회화에 적용해 보기 시작했다. 접착 시트지를 잘라 직접 패턴을 만들고 이를 캔버스 위에 옮기는 실험이었다. 당시로서는 낯설고 생경한 방식이었지만, 그 시도는 어느덧 27년 넘게 이어진 박상희 작가만의 독창적인 작업 언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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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작가의 작품 [사진=ESG코리아뉴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멀리서 보면 사진처럼 사실적이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전혀 다른 화면이 펼쳐진다. 캔버스 위에 시트지를 붙이고, 그 위에 색을 올린 뒤 다시 커터칼로 하나하나 도려내는 과정이 화면 전체에 살아 있다.

 

자동차 차체에 반사된 불빛,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조명, 골목길을 채우는 간판의 빛들은 수많은 선과 결로 분해되며 도시의 공기와 리듬을 만들어낸다. 시트지와 회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화면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진동과 리듬감을 담아낸다.


박상희 작가는 밤마다 도시를 걸으며 수많은 사진을 찍는다. 홍콩을 방문했을 때도 며칠 동안 수백 장의 사진을 촬영할 정도로 도시를 집요하게 관찰한다. 하지만 그 많은 사진이 모두 작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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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희 작가의 작품 [사진=ESG코리아뉴스]

 

작품으로 옮겨내는 첫 번째 기준은 구도이다. 작가의 눈에 만족스럽고 재미있는 구도가 나오는 것이 우선이다. 그 다음 건물과 도로, 간판과 창문이 만들어내는 화면의 균형과 리듬을 살피고, 그 다음에는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정서를 들여다본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작품을 바라보면 화려한 야경 너머 일상의 온기가 전해진다. 늦은 밤까지 불이 켜진 술집, 골목 어귀의 작은 상점, 창문 너머의 불빛, 횡단보도 앞에 멈춘 자동차들... 

 

그 안에는 낮 동안 각자의 역할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가장 감성적인 시간인 밤에 만나, 친구와 마주 앉아 하루를 털어놓고, 가족과 저녁을 나누고, 때론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는 시간들이 보인다. 누군가의 하루가 머물렀던 장소이고, 누군가의 대화가 오갔던 장소이며, 누군가의 감정이 스며 있는 공간들 앞에 언젠가 나도 저 곳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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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작가 작품 [사진=ESG코리아뉴스]

 

미술계의 흐름은 끊임없이 변해왔다. 추상회화 중심의 시대를 지나 설치미술과 미디어아트, 디지털아트 등 새로운 경향들이 등장했다. 그럼에도 박상희 작가는 시트지와 커터칼이라는 자신만의 언어를 놓지 않았다.

 

시트지를 붙이고, 색을 올리고, 다시 오려내는 과정은 결코 효율적인 작업 방식이 아니다. 상당한 시간과 노동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그는 같은 재료와 같은 질문을 붙들고 27년을 걸어왔다.

 

오랜시간 뚝심있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켜온 비결을 묻자, 박 작가는 "성공을 목표로 하면 오히려 오래가기 어렵다"며, "중요한 것은 다음 작업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작업을 어떻게 더 깊게 만들 것인가, 무엇을 더 발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계속 작업실로 이끌어 온 것 같다"고 전하며, 앞으로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질 것을 예고했다.

 

현재 그는 도시 풍경의 일부를 더욱 확대해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탐색하는 새로운 작업도 준비하고 있다. 표현 방식은 변화할 수 있지만, 도시와 빛,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그의 작업의 중심에 놓여 있다.

 

한편 박상희 작가의 개인전 '도시와, 그 사이'는 서울 여의도 아트살롱 드 아씨에서 오는 7월 4일까지 진행된다. 시트지와 커팅 드로잉이라는 독창적인 작업 방식을 통해 도시의 밤 풍경과 일상의 기억을 담아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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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살롱 드 아씨 갤러리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좌)안충국 작가와 (우)박상희 작가 [사진=ESG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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