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2(토)
 

공간 경험의 변화, 우리는 어떻게 공간을 소비하는가?

 

공간을 소비하는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공간이 물리적 장소에 국한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공간이 물리적 한계를 넘어 확장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매장을 방문하지 않고도 가상 공간에서 제품을 체험하고, 전시장을 직접 찾지 않고도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예술과 소통하며, 현실과 가상이 융합된 게임을 통해 공간을 탐험한다.

 

공간 소비 트렌드는 ‘체험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디지털 기술이 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과거의 공간 소비가 ‘머무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공간 소비는 ‘참여하고 경험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브랜드들은 물리적 매장을 디지털 기술로 확장하여 고객과 소통하는 방식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으며, 전시는 감상에서 체험으로 전환되고 있다. 게임 산업에서는 공간이 하나의 거대한 플레이필드가 되며, 사람들은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공간을 소비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단순히 공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소비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공간은 더 이상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우리는 공간을 경험하고, 공간과 상호작용하며, 공간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공간 경험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을까?

 


디지털 기술이 공간을 바꾸다 : 인터랙티브 공간의 등장

 

1) 미디어 파사드: 건물 외벽이 콘텐츠가 되다

 

디지털 기술이 공간에 접목되면서, 공간은 더 이상 정적인 장소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반응하는 인터랙티브한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건축물의 외관은 거대한 미디어 캔버스로 변하고 있으며, 전시는 관객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디지털 사이니지는 건축물의 외관을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실시간 콘텐츠가 흐르는 미디어 캔버스로 변화시키고 있다. 서울 강남의 코엑스 K-POP 스퀘어 미디어는 건물 외벽 전체를 초대형 디지털 스크린으로 변모시켜, 3D 파도 영상과 같은 몰입형 콘텐츠를 제공하며 도시의 풍경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퀘어나 도쿄 긴자의 미디어 파사드 또한 단순한 광고판이 아니라, 도시의 예술적·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거대한 디지털 갤러리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정점에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라스베이거스에 개장한 MSG 스피어(The MSG Sphere)이다. 이 구형 건물은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 파사드로, 약 54만 제곱미터의 외벽 전체가 초고해상도 LED 디스플레이로 활용된다. 밤이 되면 스피어의 표면은 거대한 디지털 화면으로 변하며, 우주, 해저, 불꽃놀이 등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내부에서는 16K 해상도 랩어라운드 실내 몰입형 디스플레이와 공간 음향 시스템을 활용해, 공연과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스피어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건축과 디지털 미디어가 융합된 새로운 개념의 공간으로, 미래 도시에서 미디어 파사드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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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스피어. 세계 최대 규모의 구형 LED 스크린 공연장으로, 최첨단 몰입형 경험을 제공한다 [사진=Wikipedia]

 

2) 인터랙티브 전시 공간: 경험하는 전시로의 전환

 

전통적인 전시는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관객과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상호작용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Refik Anadol은 건축물의 표면을 AI 기반 데이터 아트로 변환하여, 도시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디지털 아트 공간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팀랩(TeamLab)의 몰입형 전시는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벽과 바닥이 변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공간이 살아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아자부다이힐즈의 모리JP타워에 새로 오픈한 팀랩 보더리스 전시공간은 AI가 관람객의 움직임을 분석하여 전시 콘텐츠가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새로운 개념의 인터랙티브 공간을 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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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자부다이힐즈 팀랩 보더리스(TeamLab, Borderless). 경계를 허문 몰입형 디지털 아트 전시로, 빛과 색,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변화하며 공간을 창조하며, 관람객은 예측할 수 없는 아트워크 속을 자유롭게 탐험하며, 작품과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예술 경험을 즐길 수 있다. [사진=TeamLab]

 

 AR/VR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공간: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다

 

디지털 기술은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에는 특정한 장소를 직접 방문해야만 경험할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는 AR과 VR을 활용한 하이브리드 공간에서 실현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쇼핑, 건축,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1) 가상 피팅룸과 디지털 쇼핑 공간: 쇼핑 경험의 재구성

 

디지털 기술이 쇼핑 경험을 완전히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에는 매장을 방문해 제품을 직접 보고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AR과 VR을 활용한 가상 쇼핑 환경이 현실화되면서 소비자들의 공간 소비 방식이 재편되고 있다.

이케아는 AR 앱을 활용해 소비자가 실제 자신의 공간에 가구를 배치하고 색상을 변경하며 가상의 인테리어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제품을 직접 구매하기 전에 자신의 공간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미리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단순한 온라인 쇼핑을 넘어 ‘공간 맞춤형 소비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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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케아 AR 앱 <이케아 플레이스> [출처: IKEA]

 

나이키는 AR 기술을 활용한 독특한 마케팅 이벤트를 선보였다. 사용자가 스마트폰 카메라를 길거리 곳곳에 비추면 특정 장소에서 나이키의 신발이 나타나고, 이를 클릭하면 해당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링크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이는 AR 기술이 단순한 가상 체험을 넘어, 현실 공간에서 제품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새로운 쇼핑 경험을 창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구찌는 VR 기술을 활용하여 디지털 전시회를 개최하고, 소비자가 가상 환경에서 제품을 체험한 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오프라인 매장 방문 없이도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철학을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고 브랜드 경험을 확장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제 AR과 VR을 활용한 쇼핑 공간은 더 이상 실험적 시도가 아니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공간 소비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으며, 패션 및 하이엔드 럭셔리 브랜드들 역시 앞다투어 디지털 쇼핑 경험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프라다(Prada)와 미우미우(MIUMIU)는 스냅챗의 비트모지(Bitmoji) 아바타를 위한 디지털 핸드백을 출시하며, 명품 브랜드 경험을 가상 공간으로 확장했다. 현실에서는 쉽게 소유하기 어려운 고가의 핸드백을 디지털 트윈을 통해 15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면서, 소비자들이 보다 부담 없이 브랜드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제품 판매를 넘어, 가상과 현실을 아우르는 새로운 형태의 소비 경험을 제시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공간 소비의 패러다임은 ‘구매’에서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으로의 쇼핑 공간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 철학과 디자인 가치를 소비자가 직접 체험하는 인터랙티브 공간으로 진화할 것이다.


2) 게임과 공간의 융합: 현실이 하나의 거대한 플레이필드가 되다.

 

게임은 현실과 가상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공간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다. 포켓몬 GO는 AR 기술을 활용하여 현실 세계가 게임 속 맵으로 변화하도록 만들었으며, HADO AR 스포츠는 실제 공간에서 플레이어가 가상의 에너지를 발사하며 대결하는 방식으로 기존 스포츠와 게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제 게임 속 공간은 단순한 가상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과 결합되며 더욱 확장되고 있다. AR·VR 기술이 접목된 게임들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스포츠, 피트니스, 교육,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공간 경험을 창출하고 있다. 앞으로는 현실과 가상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게임과 공간의 융합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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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스포츠 의 플레이 모습 [사진=MOOKAS]


감각적 몰입을 극대화하는 기술: 공간을 체험하는 방식의 변화

 

공간 경험의 디지털화는 감각적 요소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에는 시각적 요소가 공간 경험의 핵심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을 포함한 다감각적 몰입 기술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공간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각적 몰입을 위해 프로젝션 맵핑, AR/VR, 3D 홀로그램 기술이 활용되고 있으며, 청각적 몰입을 극대화하는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와 애플의 공간 음향(Spatial Audio) 같은 3D 사운드 시스템도 주목받고 있다. 또한, 향기와 공기 흐름을 조절하는 기술들이 공간의 후각적 경험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햅틱 피드백 기술은 가상의 촉각 경험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디지털 미각과 후각을 혼합한 기술까지 등장하며, 공간 몰입감이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디지털 롤리팝 인터페이스(Digital Lollipop Interface)는 전기 자극을 통해 단맛, 신맛, 짠맛, 쓴맛을 혀에서 직접 시뮬레이션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가상 환경에서도 실제 음식의 맛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제공한다. 향후 이 기술이 발전하면, 가상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맛보거나, 특정 브랜드의 미각적 경험을 디지털 공간에서 제공하는 등 미각까지 포함된 완전한 몰입형 공간 경험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감각적 몰입 기술은 공간을 단순히 시청각적으로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오감이 모두 결합된 공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래의 공간은 더 이상 물리적 경계를 갖지 않으며, 우리가 체험하는 감각적 요소들이 기술을 통해 더욱 풍부하고 강렬하게 확장될 것이다.


 

미래 공간 경험의 방향성 :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디지털 기술이 공간 경험을 변화시키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앞으로의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는 환경이 될 것이다. 공간 소비 방식은 점점 더 인터랙티브하고 몰입적인 형태로 진화할 것이며, 공간은 실시간 데이터를 반영하여 최적의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공간은 이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우리와 소통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공간을 경험하게 될까?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이제, 우리는 공간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김동헌 (Kim Dong Hun) | 디지털 시대, 공간의 미래를 연구하는 전문가

 

AI 기반 공간디자인과 뉴미디어 아트, ESG 건축을 연구하는 공간디자인 박사과정 연구자. 기계공학과 법학을 전공한 후 LG전자 특허센터에서 기술 전략과 혁신을 경험했으며, 현재는 AI와 디자인, 철학이 융합된 공간의 방향성을 탐구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공간 경험을 어떻게 확장하는지, 인간성과 기술의 조화를 이루는 공간디자인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공간디자인전공 겸임교수로 미래학(Futurology)와 공간철학을 강의하며, ㈜리네아디자인의 이사로 공간의 미래를 설계하는 연구자이자 실천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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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헌의 공간디코딩 ②] 디지털 기술이 바꾼 공간 소비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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