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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원주민은 ‘멸종 사냥꾼’이 아닌 ‘화석 수집가’였을 가능성 제기... 5만 년 된 화석이 바꾼 인류사 해석

  • 하윤아 기자
  • 입력 2025.10.2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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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원주민은 ‘멸종 사냥꾼’이 아닌 ‘화석 수집가’였을 가능성 제기 [사진=ChatGPT 생성이미지]

 

오랜 세월 동안 과학자들은 호주 대륙의 거대한 동물들이 인간의 도착 이후 빠르게 사라졌다는 사실을 두고 ‘과잉 사냥(overkill)’ 가설을 주장해왔다. 인류가 약 6만 5천 년 전 호주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코뿔소 크기의 웜뱃, 3미터에 달하는 캥거루,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주머니곰 같은 거대 유대류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약 4만 6천 년 전, 이들 대부분은 자취를 감췄다. 과학자들은 그 원인으로 원주민의 사냥을 지목했지만 최근 발표된 연구는 이 오래된 믿음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의 마이클 아처(Michael Archer) 박사 연구진은 5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화석 두 점인 캥거루의 정강이뼈와 멸종된 거대 웜뱃 지고마투루스 트릴로부스(Zygomaturus trilobus)의 어금니를 첨단 미세 CT 스캔으로 재분석했다. 


이 화석들은 20세기 초 서호주 매머드 동굴(Mammoth Cave)에서 발견된 것으로 오랫동안 원주민이 거대동물을 도살했다는 증거로 인용되어왔다. 당시 뼈 표면의 절단 흔적은 칼이나 돌도끼로 만든 상처로 해석되었지만 연구진의 최신 분석은 전혀 다른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CT 스캔 결과 절단 자국은 동물이 죽은 직후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뼈가 말라 갈라진 후, 즉 화석이 된 이후에 생긴 손상으로 드러났다. 절단면에는 세로로 뻗은 건조 균열과 그 이후 생긴 가로 방향 골절이 함께 나타났다. 


이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인간의 손에 의해 뼈가 다시 손상되었음을 시사한다. 아처 박사는 “이 뼈는 사냥의 흔적이 아니라, 화석이 된 후 수집된 전리품일 가능성이 높다”며 “원주민들이 화석을 수집하고 보관했던 초기 ‘화석 수집가(fossil collector)’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단서는 멸종된 거대 웜뱃의 어금니에서 발견됐다. 이 이빨은 1960년대 호주 북부 킴벌리 지역의 한 원주민이 부적으로 보관하고 있었으며 수지에 고정해 머리카락으로 만든 끈에 매달려 있었다. 


화학적 성분과 구조를 분석한 결과, 이 이빨은 원래 서호주 남서부 화석층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원주민들이 단순히 근처의 사냥감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화석을 멀리서 수집하거나 교환한 정황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원주민에게 이러한 화석은 식량이 아닌 ‘문화적 유물’이자 ‘신성한 물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연구 결과는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멸종의 주범은 인간’이라는 가설에 강한 반론을 제시한다. 아처 박사는 CNN에 보낸 이메일에서 “호주 원주민이 이 대륙에 도착하자마자 대형 동물을 대량으로 사냥해 멸종시켰다는 증거는 없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그는 “인간과 거대동물이 최소 1만 5천 년 이상 공존했으며, 기후 변화가 이들의 점진적 멸종을 촉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의 고고학자 주디스 필드(Judith Field) 박사 역시 이번 연구에 동의하며 원주민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뼈나 조개 껍질을 장식품이나 부적으로 사용해 왔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1만 년 전 조개 껍질 구슬이나 7천 년 된 태즈메이니아 데블의 이빨 목걸이 같은 유물은 인간이 물건을 수집하고 지역을 넘어 이동시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이번 발견이 인간의 문화적 복잡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평가했다.


마이클 아처 박사는 이 화석을 재조사하기 전 1980년에 같은 화석을 ‘사냥의 증거’로 해석한 논문을 공동 집필한 바 있다. 그러나 2013년 학생이자 공동연구자인 블레이크 딕슨(Blake Dixon) 박사가 최신 미세 CT 기술로 화석을 재검사한 결과 이전 연구에서 보지 못했던 내부 단서들이 드러났다. 그 결과, “절단 흔적은 살아 있는 동물의 상처가 아니라 이미 화석화된 뼈에 생긴 손상”이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하나의 뼈를 재해석한 사건이 아니라 인류가 과거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촉구한다. 서구의 일부 학자들은 유럽인의 대규모 환경 파괴 경험을 토대로 모든 고대 인류도 비슷한 ‘파괴적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가정해왔다. 그러나 아처 박사는 “원주민들은 이 대륙의 생태계 속에서 조화롭게 살았으며, 외래종 도입과 집약적 농업으로 대규모 멸종을 초래한 현대 유럽인과는 다른 존재였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연구는 ‘멸종’이라는 단어에 인간의 책임을 묻는 대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던 시절의 복잡하고 세밀한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호주 원주민들은 단순한 사냥꾼이 아니라 자연의 흔적을 수집하고 기억하던 첫 번째 인류학자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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