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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사람들 ㉔] 사람과 자연을 함께 지켜온 과학자, 마드하브 가드길(Madhav Gadgil)의 60년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01.1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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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유엔환경계획(UNEP)으로부터 ‘지구 챔피언(Champions of the Earth)’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마드하브 가드길(Madhav Gadgil), 2026년 1월 7일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푸네에서 8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셨다. [사진=UNEP, 그래픽=ESG코리아뉴스]

 

마드하브 가드길(Madhav Gadgil)은 오늘날 ESG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한 사람의 삶으로 보여준 인물이었다. 그는 2026년 1월 7일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푸네에서 8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2024년 유엔환경계획(UNEP)으로부터 ‘지구 챔피언(Champions of the Earth)’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가드길은 인도를 대표하는 생태학자이자, 과학을 사회적 실천으로 확장해 온 지식인이었다. 그의 연구와 활동은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지역사회 권리의 존중, 참여적 정책 거버넌스, 그리고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이라는 ESG의 핵심 가치를 자연스럽게 포괄하며 깊은 울림을 남겼다.


가드길의 생태적 감수성은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마하라슈트라 주의 수력발전소를 방문했을 때, 그는 이미 숲이 훼손되고 지역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당시 아버지는 “전력과 산업 발전은 필요하지만, 그 대가로 환경 파괴와 사람들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 물음은 가드길의 평생 화두가 되었다. 그는 이후 자연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공감을 분리할 수 없는 가치로 받아들였다고 회상했다.


60년에 걸친 과학자 경력 동안 가드길은 스스로를 ‘국민 과학자’라고 불러왔다. 하버드대학교에서의 연구부터 인도 정부의 정책 자문에 이르기까지 활동 영역은 넓었지만, 그의 중심에는 언제나 지역사회가 있었다. 그는 숲과 습지, 강과 농경지를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으로 바라보았으며, 보전의 주체 역시 지역 주민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대표적인 성과로 꼽히는 2011년 ‘가드길 보고서(Gadgil Report)’는 이러한 철학이 집약된 결과물이었다. 이 보고서는 서부 가트 산맥을 생태적으로 민감한 지역으로 구분하고, 무분별한 채석과 개발이 기후 재난과 생물다양성 붕괴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보고서는 산업 발전을 제약한다는 이유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이후 유엔과 국제자연보호연맹(IUCN), 세계유산위원회가 서부 가트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하며 그 과학적·정책적 가치를 입증했다. 최근 케랄라 주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사태 역시 기후 변화와 토지 황폐화, 산림 훼손이 결합된 결과라는 국제 과학계의 분석은 가드길의 경고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가드길의 접근이 특히 주목받은 이유는 환경 보호를 사회 정의와 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인도 과학연구소에서 생태과학센터를 설립하고, 삼림 거주민과 농민, 어업 공동체, 활동가, 정책 입안자들과 긴밀히 협력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인도 최초의 생물권 보전지역인 닐기리 생물권 보전지역이 탄생했고, 이는 현재 인도에서 가장 큰 보호 지역으로 남았다. 이 지역에서 그는 주민들과 함께 걷고 대화하며, 때로는 그들의 삶 속에서 생태를 배웠다고 말했다.


정책 영역에서도 그의 영향력은 뚜렷했다. 가드길은 총리 과학자문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정부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인도 생물다양성법과 산림 권리법 제정에 기여했다. 이 법률을 통해 지역 공동체는 생물다양성 등록부를 구축하고, 자신들의 숲과 강, 자원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일부 마을에서는 유독 화학물질로 인한 수질 오염을 공동체 차원에서 확인하고, 이를 계기로 사용 금지를 이끌어내 강의 생태계를 회복시킨 사례도 보고됐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채석으로 인한 환경 피해 기록이 법정 투쟁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ESG가 말하는 거버넌스가 제도만이 아니라 참여와 감시, 책임을 통해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유엔환경계획은 가드길의 연구와 활동을 두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정책을 설계하고 지역 거버넌스를 강화한 모범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는 마을의 젊은이들에게 공동체 산림 권리와 생태 모니터링 방법을 가르치며 다음 세대를 키우는 데 힘을 쏟았다. 스마트폰으로 식물 사진을 찍어 종을 식별하도록 훈련받은 한 소년이 희귀 난초를 발견해 국제 학술 논문의 공동 저자가 되었던 일화는, 기술과 개방형 과학이 지역사회 역량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가드길은 기술 발전과 정보 접근성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공동체가 자신들의 권리를 인식하고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믿었다. 기후 위기의 영향이 점점 심각해지는 인도에서 이러한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그는 말해왔다.


그는 스스로를 확고한 낙관주의자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 낙관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현장에서 쌓아온 변화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과학자로서, 그리고 사람에 공감하는 인간으로서 그는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조금이나마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 만족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마드하브 가드길의 삶은 ESG가 단순한 경영 트렌드나 평가 지표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 제도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실현되는 가치임을 보여주었다. 그의 60년은 지속가능성이 선언이 아닌 실천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온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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