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헌의 공간디코딩③] 공간이 예술이 되는 시대
예술과 공간의 융합, 뉴미디어 아트의 역할

과거 공간은 그저 머무르는 곳이었다. 집은 거주를 위한 공간이었고, 광장은 모임을 위한 장소였으며, 전시장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기술과 뉴미디어 아트의 결합은 공간을 정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변화하고 반응하며 감각을 확장하는 예술적 경험의 장으로 바꾸고 있다.
뉴미디어 아트는 더 이상 미술관 안에 머물지 않는다. 도시의 건축물은 거대한 미디어 캔버스로 변하고 있으며, 공공 공간은 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브랜드 매장조차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 방문자에게 독특한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몰입형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미래의 공간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 예술과 기술이 결합된 공간은 단순한 시각적 변화를 넘어, 우리의 감각과 경험을 새롭게 정의할 것이다.
예술이 공간을 바꾼 순간들
예술이 공간을 변화시킨 사례는 역사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은 회화뿐만 아니라 건축과 도시 설계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공공 공간을 예술적 요소로 채우는 문화가 확산되었다. 20세기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혁명의 이념을 반영한 공간 디자인을 시도하며 건축과 예술을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도구로 활용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예술은 공간을 새롭게 정의해왔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환경 예술은 공공 건축물을 임시적으로 재해석하며 공간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무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이러한 흐름은 뉴미디어 아트를 통해 더욱 가속화되고 있으며, 디지털 기술과 예술이 결합한 공간은 과거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뉴미디어 아트의 등장
뉴미디어 아트(New Media Art)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생성, 변형, 소멸하는 예술 형태를 의미한다. 회화나 조각처럼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프로그래밍, 알고리즘,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특징을 갖는다.
뉴미디어 아트의 선구자로는 백남준(Nam June Paik)이 있다. 그는 텔레비전과 비디오 같은 당시의 첨단 매체를 활용해 전통적인 예술 개념을 깨고,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작품을 창조했다. 대표작 〈TV Buddha〉(1974)는 불상이 텔레비전을 응시하는 모습을 통해 동양 철학과 서구 기술의 조화를 탐구했으며, 〈Electronic Superhighway〉(1995)는 미국 전역을 LED 조명과 TV 모니터로 표현하며 디지털 시대의 정보 흐름을 시각화했다.
이후 뉴미디어 아트는 더욱 발전하며 데이터,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의 첨단 기술과 결합해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이 있다. 그는 AI와 데이터를 활용한 몰입형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며, 건축물과 전시 공간을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예술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또한,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은 빛과 움직임을 활용한 대형 설치 작품을 제작하며, 관람객이 작품 속에서 감각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그의 대표작 〈The Weather Project〉(2003)는 실내 공간에 거대한 태양을 연상시키는 조명을 설치하고 안개와 반사 효과를 결합하여, 공간 전체를 감각적으로 변화시키는 작품이다.

뉴미디어 아트가 변화시키는 공간 경험, 그 새로운 가능성
공간은 더 이상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뉴미디어 아트의 등장과 기술의 발전으로 공간은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변화하며, 관객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환경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고정된 구조물로 인식되던 공간은 이제 기술과 결합해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감각적 몰입을 유도하며, 가상과 현실이 융합되는 하이브리드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1) 정적인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공간으로
과거 건축 공간은 한 번 설계되면 형태가 변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뉴미디어 아트는 AI, 데이터, 센서 기술을 활용하여 공간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환경으로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뉴미디어 아트 스튜디오 BREAKFAST는 키네틱 아트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작품을 통해 공간이 사람들의 움직임과 환경 변화에 반응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BREAKFAST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라스베이거스의 초대형 미디어 건축물 MSG 스피어(Sphere) 역시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거대한 구형 LED 스크린으로 이루어진 이 구조물은 특정한 이벤트나 콘서트에 따라 외관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며, 공간 자체가 하나의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가 되는 사례다. 이처럼 뉴미디어 아트는 공간을 고정된 구조물이 아닌,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다이나믹한 경험의 장으로 바꾸고 있다.
(2) 관객이 감상자에서 공간의 일부로 변화
뉴미디어 아트가 적용된 공간에서는 관객이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다. 기존 전시에서는 작품을 일정한 거리에서 감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관객이 공간 속에서 직접 움직이며 작품을 변화시키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몰입형 전시로 유명한 팀랩(TeamLab)의 전시에서는 관람객이 공간을 걸어 다닐 때마다 주변 환경이 실시간으로 반응한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꽃이 피어나고, 손짓에 따라 물결이 퍼져나가며, 관람객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전시 공간이 다르게 보인다. 이는 공간이 정적인 배경이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며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인터랙티브 환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뉴미디어 아트를 활용한 브랜드 공간 역시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여긴다. 루이비통(Louis Vuitton)과 샤넬(Chanel)은 매장 내외부를 거대한 프로젝션 맵핑과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로 꾸며, 방문객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브랜드 경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3) 단조로운 공간에서 감각을 깨우는 공간으로, 다중 경험의 진화
공간 경험은 이제 단순히 머무르는 것을 넘어, 감각을 확장하고 몰입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뉴미디어 아트가 결합된 공간은 시각, 청각, 미각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형태의 다이닝 경험을 창출하며, 공간 자체를 하나의 예술적 무대로 변모시키고 있다.
일본 도쿄의 ‘문플라워 사가야 긴자(MoonFlower Sagaya Ginza)’는 미디어 아트를 활용한 다이닝 경험의 대표적인 사례다. 아트 그룹 팀랩(teamLab)과 협업하여, 방문객이 코스 요리를 즐길 때마다 공간 전체가 반응하는 인터랙티브한 연출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테이블 위의 접시가 놓이는 순간, 벽면과 식탁에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퍼져 나가면서 음식과 연계된 감각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연잎 위에 올려진 가리비 요리가 서빙되면, 주변 공간에 연꽃이 피어나는 듯한 영상이 펼쳐지고, 자연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사운드가 어우러지면서 음식과 공간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이처럼 뉴미디어 아트를 활용한 다이닝 공간은 단순한 식사 장소를 넘어, 감각적 체험을 확장하는 스테레오 경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존의 레스토랑이 제공하는 미각 중심의 경험에서 벗어나, 공간과 음식, 시각적 요소가 결합하여 더욱 몰입감 있는 다층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앞으로 이러한 다중 경험 공간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공간이 단순히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청각·미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감각적 몰입을 유도하는 인터랙티브 플랫폼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디어 아트와 다이닝이 결합한 공간 경험은 미래의 공간 디자인이 단순한 배경을 넘어, 감각과 경험을 창조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래공간, 경험의 확장으로 나아가다
뉴미디어 아트는 단순히 예술 작품을 디지털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감각적으로 확장하고, 사용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인터랙티브 플랫폼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뉴미디어 아트는 도시, 건축, 브랜드 공간에 더욱 깊숙이 스며들 것이며, 공간 경험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킬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더욱 발전함에 따라, 공간은 예술과 융합하며 더욱 몰입적이고, 감각적으로 풍부한 환경으로 진화할 것이다.
예술이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우리는 그 공간 속에서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인가? 뉴미디어 아트와 공간의 융합은 이제 막 시작되었으며, 앞으로의 변화는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김동헌 (Kim Dong Hun) | 디지털 시대, 공간의 미래를 연구하는 전문가
AI 기반 공간디자인과 뉴미디어 아트, ESG 건축을 연구하는 공간디자인 박사과정 연구자. 기계공학과 법학을 전공한 후 LG전자 특허센터에서 기술 전략과 혁신을 경험했으며, 현재는 AI와 디자인, 철학이 융합된 공간의 방향성을 탐구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공간 경험을 어떻게 확장하는지, 인간성과 기술의 조화를 이루는 공간디자인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공간디자인전공 겸임교수로 미래학(Futurology)와 공간철학을 강의하며, ㈜리네아디자인의 이사로 공간의 미래를 설계하는 연구자이자 실천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