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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훈 칼럼] 산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병과 함께한 치유의 여정'

  • 윤재훈
  • 입력 2025.07.14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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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시상 돌아온 길, 산에서 찾은 나

좋은 시상 돌아왔구먼

자네가 한자리 하는 걸 보니

잘혀, 자네 날로 된 것 아닌께

스러져 간 친구들 생각하구


다 그들의 피가 있어서 된거니까

자발 떨지 말고 

차근차근 잘 혀!

가들도 다 보고 있을 거구만,

저 시상에서

 

 -‘좋은 시상’,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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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락의 물소리 [사진=윤재훈]

 

내 여행의 시작은 산(山)이었다. 멀리서 산빛만 보아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해졌다. 산에 들면 스스로 명상에 드는 것 같았다. 봄날 온 산을 물들이는 연둣빛을 보면 아이의 첫울음처럼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 위로 탱글탱글 떨어지는 빗방울은 삶의 열락을 노래하고 있었다. 


봄 산은 아이들의 함성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으며, “저요, 저요” 하고, 저마다 목청을 돋우며 자신의 존재를 피워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복수초, 매화,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목련, 저마다 지난 겨울 산고(産苦)를 이겨내고 자신의 존재들을 환한 꽃으로 피워냈다. 


사실 산을 이렇게 좋아하게 된 것은 계기가 있었다. 불혹을 넘기고 어느 날 갑자기 비염이 찾아왔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재채기가 나왔고 한 번 재채기를 하면 머리가 흔들거릴 정도였다. 주위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얼마나 크게 하는지 몇 번만 하고 나면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그리고 맑은 콧물이 수돗물처럼 줄줄 흘러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매일 병원에 다니며 주사를 맞고 독한 약을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신경 안정제가 들어있는 약 기운 탓에 병든 닭처럼 시들시들했다. 


매일 병원을 다니니 급기야 엉덩이에는 주삿바늘 꽂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주사 맞은 자리마다 단단해 져서 아프기도 하고 걷기까지 불편했다.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맑은 공기가 있는 산을 찾았다. 그런데 산을 같다 오면 몸이 편안했다. 변화가 있으니 미친 듯이 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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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에 오르며 [사진=윤재훈]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 세상을 살면서 독하지가 못해서인지 스스로 그만두지 못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분명히 몸에 나쁜 것인줄 알면서도 그것은 잘 되지 않았다. 담배가 그랬고 술이 그랬다. 


그런데 담배는 끊고 싶었지만 사실 술은 끊고 싶지 않았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술만큼 서로를 금방 가까이 해주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 잔 술이 들어가기만 하면 금방 대통(大通)을 하고 어깨동무로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죽마고우처럼 되는 것이었다. 


이제 몸이 스스로 산에 가게 만드니 주말마다 동네에 산악회를 따라 전국의 산을 돌아다녔다. 면역력이 생겨서인지 점점 비염에도 변화가 있었다. 


공자님은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知者樂水)”라고 했다.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마음도 차분해지고, 정신의 열도도 깊어지는 것 같았다. 어찌 보니 젊은 날에는 바다를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산이 좋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오르면 오를수록 깊은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산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 초입에 들면 원수도 용서할 것 같았다. 멀리서 산빛만 보이면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오르면 오를수록 몸은 건강해지고 마음은 선정(禪定)에 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나도 모르게 점차 콧물이 멈추고 몸이 건강해지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평생의 요람(搖籃)이 되었다. 산은 그렇게 내 안식으로 다가왔고 끊임없이 내 정신을 일깨워주는 새벽 약수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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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 원수 [사진=cottonbro studio]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몸의 병을 양약(良藥)으로 삼아라”라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다. 그리고 지나놓고 보면 그것은 내게 선지식이었다. 담배도 만찬가지였다. 도저히 내 의지로는 끊을 수가 없었다. 


비염이 찾아오고 수돗물처럼 콧물을 떨어뜨리면서도 쉽게 담배를 없앨 수가 없었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또 다시 담배를 물고 있는 의지박약아 같은 나를 발견하기 일쑤였다. 


비염은 나를 더욱 괴롭히고 그때마다 끊은 날수들이 점점 많아지더니 도저히 몸이 힘들어지니 그 연기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이십여 년이 더 지났지만 정말 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주머니와 입, 온 몸에서 담배에 찌든 냄새가 나지 않고 가족들과 주위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폐염으로 가슴이 썪어가는 담배곽 사진을 보면서도 끊지 못했던 내 자신, 문득 내 몸의 병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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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분, 잊을 수가 없다 [그래픽=ESG코리아뉴스]

 

이야기를 쓰다보니 문득 술에 대한 이야기도 떠오른다. 나는 작년 이월부터 그 좋아하던 술을 먹지 못한다. 나는 ‘막걸리광’이었다. 하루에 한 병 이상 이십여 년이 훨씬 지날 때까지 마셨다. 세상사 잘 풀리지 않고 미래가 보이지 않던 젊은 날, 술은 가장 좋은 벗이 되어 주었다. 


낮술은 더욱 환상적이었다. 어쩌면 “낮술을 모르는 자와는 깊은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따뜻한 봄볕 아래 LP판을 뒤적이며 지나가는 노래를 찾고, 그 음률 아래 마시는 그 순간은 마치 세상을 다 얻는 듯했다. 


반병 정도 마실 때까지 몽롱하게 올라오는 그 취기, 이 순간에는 마치 원수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온갖 아름다운 상상이 펼쳐지고 세상이 내 것 같았다. 


이런 낮술의 순간을 모르는 사람과 어찌 천하를 함께 이야기 할 수가 있겠는가? 사설이 길었지만 술에 대한 나의 수십 년 된 예찬이다. 


그런데, 작년 2월부터 점점,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 소주, 막걸리, 맥주, 입에만 대었다 하며 뱃속이 부글거리고 배탈이 났다. 그래도 좋아하는 술, 어찌할 수가 없어 마시면 바로 뱃속 가득 가스가 차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 앉아있어야만 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여러 날 같은 순간을 반복했다. 그래도 끊지는 못하고 조금 고급의 술을 마셔봤다. 그러자 화학주이거나 희석식 소주는 배에 탈이 나고 증류식 소주는 조금 덜 한 듯했다. 그래서 평생 먹어보지 않았던 이 술 저 술을 탐닉하며 내 뱃속을 살폈다. 양주나 40도 독한 술은 괜찮은 것도 같았다. 


급기야 막걸리를 잊을 수가 없어 직접 배워 담궈서 먹기도 했다. 맥주도 한국 맥주는 효모가 적다고 하던가, 수입산 맥주는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끊을 수 없을 것 같던 술을 안 먹게 되자 점점 내 안에서 마시고 싶다는 욕망이 시들해졌다. 그 시간이 길어지자 이제 술을 먹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내 몸의 병을, 양약으로 삼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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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술(仁術)이 사라진 고독한 병실 [사진=Pixabay]

  

다시 한 번 그 말이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스스로 과민성 대장염이라고 진단했다. 걱정이 되어 평생 처음 대장 내시경이라는 것을 받았는데, 별 이상은 없고 작은 물집 하나를 떼어냈다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못마땅했다. 몸이 피곤하면 입안에 생기는 물집처럼 푹 쉬어주면 사라질 텐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형도 지방에 있는 병원에서 의사의 말만 따라 수시로 가서 작은 물집들을 똑, 똑, 따내었지만 결국 돌아가셨다. 


오늘도 병원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수많은 응급환자들이 진료실을 구하지 못해 거리에서 속절없이 애태운다. 의료대란으로 국민들이 고통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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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가의 의료장비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의료파업이후 국민은 우왕좌왕 갈피를 잡을 수 없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대책이나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없다. 그 어렵다는 대형병원 고급 병실도 어떤이에게는 손쉽게 입원 할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을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안타갑고 가슴아픈 일이다.

 

하지만 이제 살만한 세상이 돌아올거라는 기대를 갖게된다. 매일 매일 그 꿈을 꾸게 된다. 한사람의 선지자가 나타나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늘의 시상을 정리한다. 


좋은 시상 돌아왔구먼

자네가 한자리 하는 걸 보니

잘혀, 자네 날로 된 것 아닌께

스러져 간 친구들 생각하구

다 그들의 피가 있어서 된거니까

자발 떨지 말고 

차근차근 잘 혀!

가들도 다 보고 있을 거구만,

저 시상에서


참 좋은 세상 돌아온 것 같어 

어젯 밤 자는데

기분이 좋드라고

저 하늘도 달리 보이고

뜨는 해도 달리 보이구


참 좋은 시상 돌아 왔는 갑이여   

잘혀!

전부 다 지켜보고 있을 것이구먼 

      

 -‘좋은 시상’, 윤재훈


 

 덧붙이는 글 I 윤재훈 (Yoon, Jae-hoon)


“환경이 아프면, 내 몸도 아프다”라는 마음으로 30여 년 가까이 일체의 세제와 퐁퐁를 쓰지 않고, 일회용품과 비닐, 비누나 치약 등도 가능한 쓰지 않는다. 물수건이나 휴지 대신 손수건을 쓰고 겨울에는 내복을 입고 실내 온도를 낮춘다. 자가용은 없으며 가까운 곳은 자전거로 먼 곳은 대중교통으로 다니면서, 나의 화석 발자국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홍익대학교를 비롯한 몇 개의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한강 1,300리, 섬진강 530리, 한탄강, 금강, 임진강과 폐사지 등을 걸었으며, 우리나라 해안선만 따라 자전거로 80일 동안 5830km를 순례했다. 다시 세계가 궁금해져 5년 동안 ‘대상(隊商)들의 꿈의 도로’인 실크로드를 따라, 세계오지 배낭순례를 했다. 


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해양 문학상, 전국 문화원 연합회 논문공모 우수상, 시흥 문학상 등 몇 개의 상을 받았다. 2020년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아지트갤러리‘국제 칼렌다 사진전’에 참여하였다. 2016년 ‘평화, 환경, 휴머니즘 국제 영상제’에 <초인종 속 딱새의 순산, 그 50일의 기록>이라는 작품으로, '환경부 장관 대상'을 수상했다. 평생 다양한 기관에서 무료봉사를 해오고 있으며, 연극에도 관심이 많아 십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또, 노원, 영등포 50+센터 등에서 2년여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내 마음에 안식처 서울역사여행’등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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