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시각의 영역에 머물던 회화가 소리와 공간을 끌어안으며 새로운 감각적 경험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서펜타인 사우스 갤러리에서 열린 음악의 집(House of Music) 전시를 통해 제기된다.
피터 도이그의 이번 전시는 회화 작품을 단순히 ‘보는 대상’에서 벗어나 음악과 청취 그리고 공동체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하나의 환경으로 재구성한다. 전시장 전체는 음악감상실로 전환되며 관람자는 그림과 소리를 동시에 경험하는 ‘음악의 집’ 안으로 들어선다.
전시의 핵심은 회화와 사운드의 결합이다. 도이그가 수십 년에 걸쳐 수집한 LP 레코드와 카세트테이프 아카이브에서 직접 선별한 음악은 20세기 초중반에 제작된 아날로그 음향 장비를 통해 재생된다. 목재로 제작된 클랑필름 유로노르 스피커와 진공관 앰프 시스템은 현대 디지털 음향과는 다른 깊이와 질감을 만들어내며 회화의 분위기와 공명한다.
이러한 장치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작품의 일부로 기능한다.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그림 속 장면과 교차하며 시각적 이미지에 시간성과 리듬을 부여한다. 관람자는 정지된 이미지가 아닌 흐르고 확장되는 감각의 장면 속에 놓이게 된다.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음악과 관계를 맺는다. 일부 작품은 연주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묘사하고, 또 다른 작품은 음악가와 춤추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음악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이미지의 서사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도이그가 트리니다드에 머물렀던 시기(2002~2021)의 작업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 시기 그는 사운드 시스템 문화와 영화적 이미지에 깊이 몰입하며 음악과 회화 사이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개인적 기억과 발견된 이미지 그리고 상상이 결합된 그의 작업은 트리니다드라는 지역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 리듬을 담아낸다.
동시에 런던 스튜디오에서 새롭게 제작된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며 과거와 현재, 장소와 경험이 교차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이는 특정 시기나 장소에 고정되지 않는 유동적인 감각의 세계를 제시한다.
해외 미술계에서는 이번 전시를 두고 회화의 확장 가능성을 탐구한 사례로 평가한다. 특히 시각 중심의 미술 경험에서 벗어나 청각과 공간 그리고 사회적 경험까지 포함한 ‘총체적 감각 환경’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일부에서는 이러한 몰입형 전시가 회화 자체의 독립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한 사운드와 공간 연출이 개별 작품의 세밀한 감상보다는 전체적 경험에 집중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예술을 어떤 감각으로 이해해왔으며 그 경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도이그의 작업은 회화가 더 이상 고정된 평면이 아니라 시간과 소리 그리고 기억이 교차하는 하나의 ‘장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런던에서 펼쳐진 이 전시는 감각의 위계를 흔들며 시각 중심의 미술사에 새로운 층위를 더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회화는 다시 묻는다. “보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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