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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일하는 세상 ⑬] 돌봄 로봇은 가족이 될 수 있을까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10.29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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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벗이 되고 일상을 살피는 AI 돌봄 로봇, 외로움을 덜어줄 새로운 동반자의 등장
  • 초고령사회 속 돌봄의 대안으로 주목받지만 인간관계와 정서적 유대까지 대신할 수 있을지는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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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벗이 되고 일상을 살피는 AI 돌봄 로봇, 외로움을 덜어줄 새로운 동반자의 등장 [사진=Gemini 생성형 이미지]

 

혼자 사는 노인이 아침에 눈을 뜨면 로봇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밤새 잘 주무셨는지 묻고, 약을 먹을 시간이 되면 알려준다. 날씨가 추우니 외출할 때 따뜻하게 입으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함께 음악을 듣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대화일 수 있지만,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노인에게는 이러한 작은 상호작용이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오랫동안 돌봄은 가족의 역할로 여겨져 왔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고, 성장한 자녀가 나이 든 부모를 보살피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가족의 형태가 달라지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이러한 돌봄의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가족이 있어도 멀리 떨어져 살거나 생업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대답하며, 생활 습관을 기억하고, 일정한 시간에 안부를 확인하는 돌봄 로봇이 등장한 것이다. 일부 로봇은 사용자의 표정이나 목소리, 행동에 반응하도록 설계돼 단순한 기계 이상의 친근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로봇이 사람처럼 대화하고 일상을 함께한다고 해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움을 덜어주는 기술이 오히려 인간관계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그리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로봇의 기능일까, 아니면 누군가 자신을 기억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일까.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달라지는 돌봄의 풍경


돌봄 로봇이 주목받는 가장 큰 배경에는 인구구조의 변화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는 2020년 약 10억 명에서 2030년 약 14억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50년에는 약 21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인구가 증가하면서 의료와 요양뿐 아니라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돌봄 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함께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역시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다. 2024년 말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고령화는 단순히 노인의 수가 증가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건강 상태와 경제적 여건, 가족관계가 서로 다른 고령자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돌봄이 필요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혼자 생활하는 노인의 경우 일상적인 안전 확인과 정서적 지원이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거나 사회적 관계가 제한된 사람은 건강에 이상이 생겨도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울 수 있고, 장기간의 고립으로 외로움을 경험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이를 담당할 인력을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방문간호사 등 돌봄 종사자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신체적 부담과 근무환경, 지역별 인력 격차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돌봄 로봇은 사람의 돌봄을 모두 대신하기보다 일상적인 안부 확인과 생활 지원을 보완하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가족이나 돌봄 인력이 항상 곁에 있을 수 없는 시간에 로봇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다면 돌봄의 공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을 걸고 대답하는 로봇,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을까


돌봄 로봇 가운데 비교적 널리 알려진 형태는 사람과 대화하며 정서적인 상호작용을 제공하는 소셜 로봇(Social Robot)이다.


소셜 로봇은 사람의 말을 인식하고 적절한 반응을 제공하도록 설계된다. 사용자의 이름을 부르거나 정해진 시간에 인사를 건네고, 음악과 간단한 놀이를 제공하기도 한다. 일부 제품은 AI를 활용해 보다 다양한 대화를 이어가도록 개발되고 있다.


일본에서 개발된 '파로(PARO)'는 이러한 정서적 상호작용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로봇이다. 아기 하프물범을 닮은 파로는 사람이 쓰다듬거나 말을 걸면 소리와 움직임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주로 고령자 돌봄과 치매 환자 지원 등에서 활용 가능성이 연구돼 왔다.


파로는 사람처럼 복잡한 대화를 나누는 로봇은 아니다. 그러나 촉각과 소리, 움직임을 통한 상호작용이 사용자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일부 연구에서는 파로와 같은 로봇을 활용한 활동이 고령자의 기분이나 사회적 상호작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관찰됐다. 다만 연구 대상과 기간, 비교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모든 이용자에게 동일한 효과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에서 개발된 '엘리큐(ElliQ)' 역시 고령자의 일상적인 대화와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AI 기반 동반자형 기기다. 사용자의 생활 속에서 대화를 제안하고 건강한 생활 습관과 사회적 활동을 독려하는 기능을 제공하도록 설계됐다.


이러한 기술은 사람을 대신해 감정을 느끼는 존재를 만드는 것보다 사용자가 일상에서 상호작용할 기회를 늘리는 데 목적을 둔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로봇이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고 적절한 말을 생성할 수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그 감정을 이해하거나 느낀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사용자는 로봇에게 위로받는다고 느낄 수 있지만, 로봇의 반응은 센서와 알고리즘, 학습된 데이터에 기반한 결과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돌봄 로봇을 건강하게 활용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한국에서도 시작된 AI 돌봄 서비스


국내에서도 고령자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AI 돌봄 서비스가 다양한 형태로 도입돼 왔다.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활용된 AI 돌봄 로봇 '효돌'이다. 인형 형태로 제작된 효돌은 이용자에게 말을 걸고, 식사와 복약 시간을 알려주며, 일정한 상호작용을 제공하도록 개발됐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복지기관에서는 이러한 돌봄 로봇을 활용해 고령자의 정서적 지원과 생활 관리를 돕는 사업을 추진해 왔다. 로봇을 통해 이용자의 활동 정보를 확인하거나 필요한 경우 돌봄 담당자와 연결하는 방식도 활용된다.


AI 스피커를 이용한 돌봄 서비스도 운영돼 왔다. 음성으로 날씨와 생활정보를 제공하고, 음악을 들려주거나 긴급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서비스는 이용자가 복잡한 기기를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음성이나 간단한 행동으로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일부 고령자에게는 접근성이 높은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고령자가 로봇과의 대화를 편안하게 느끼는 것은 아니다. 기계와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낯설게 여기거나, 음성 인식 오류 때문에 사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또한 청력이나 발음, 인지기능의 차이에 따라 같은 제품이라도 이용 경험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돌봄 로봇은 기술의 성능뿐 아니라 실제 사용자의 생활환경과 신체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 설계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로봇을 얼마나 많이 보급했는가가 아니라 이용자의 삶에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이다.


로봇이 매일 안부를 묻는다면 가족의 역할은 달라질까


돌봄 로봇이 일상에 들어오면서 가족의 역할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녀가 부모의 생활을 매일 직접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전화나 방문을 통해 안부를 묻더라도 하루 동안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알 수는 없다.


이때 돌봄 로봇이나 AI 기반 생활지원 시스템이 식사와 복약 시간을 알려주고, 일정한 생활 패턴의 변화를 감지해 가족이나 돌봄 담당자에게 전달한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가족은 로봇을 통해 부모의 생활을 간접적으로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직접 연락하거나 방문할 수 있다.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에게도 일상적인 확인 업무의 일부를 덜어주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이 가족 간의 직접적인 소통을 줄이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로봇이 매일 안부를 묻는다는 이유로 자녀가 부모에게 전화하는 횟수를 줄이거나, 복지기관이 방문 서비스를 축소한다면 기술은 오히려 인간관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정서적 고립은 단순히 대화의 횟수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고,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사회와 연결돼 있다는 감각이 중요하다.


로봇이 일상적인 대화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가족과 친구, 이웃이 형성하는 관계의 모든 의미를 대신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돌봄 로봇은 가족의 책임을 기계에 넘기는 수단이 아니라 가족과 돌봄 종사자가 필요한 순간에 더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연결 장치가 되어야 한다.


돌봄 로봇에게 정이 드는 것은 이상한 일일까


사람은 반드시 인간에게만 정서적인 애착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사용한 물건이나 반려동물, 익숙한 공간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돌봄 로봇 역시 마찬가지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인사를 건네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말에 반응하는 로봇과 생활하다 보면 친근함이나 애착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긴 사람에게는 로봇과의 상호작용이 일상의 규칙적인 활동이 될 수 있다. 로봇에게 말을 걸고 반응을 기다리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이러한 애착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기술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는다면 그 경험은 이용자에게 실제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봇에 대한 애착이 지나치게 강해질 경우에는 다른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로봇이 실제로 감정을 느끼거나 사용자를 사랑한다고 믿게 된다면 기술의 특성과 한계를 이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인지기능이 저하된 이용자에게는 로봇의 반응을 실제 인간의 감정과 구별하는 일이 더욱 어려울 수 있다.


또한 로봇에 대한 의존이 커지면서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가 줄어든다면 장기적으로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돌봄 로봇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는 이용자의 애착을 무조건 높이는 것보다 기술의 역할과 한계를 적절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


로봇은 친근한 동반자가 될 수 있지만, 인간과 동일한 감정과 책임을 가진 존재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외로움까지 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까


돌봄 로봇을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는 외로움을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가이다.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와 같지 않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고, 혼자 생활하더라도 충분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2025년 발표한 사회적 연결에 관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 인구의 약 6명 중 1명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정신건강뿐 아니라 신체건강과 삶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공중보건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돌봄 로봇은 외로움을 줄이기 위한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이용자가 말을 걸 수 있는 상대를 제공하고, 일상적인 활동을 유도하며, 가족이나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로움의 원인이 사회적 관계의 단절과 경제적 어려움, 이동의 제약, 지역사회 활동의 부족 등에 있다면 로봇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외출하기 어려운 고령자에게 로봇이 매일 대화를 제공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갈 수 있는 복지시설이 없거나 이동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사회적 관계를 넓히는 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돌봄 로봇의 효과를 평가할 때는 이용자가 로봇과 얼마나 자주 대화했는지만 살펴봐서는 안 된다. 가족과의 연락이 늘어났는지,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게 됐는지, 실제 외로움과 생활 만족도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를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기술이 인간관계를 대신하는 방향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도록 돕는 방향으로 활용될 때 그 사회적 가치도 커질 수 있다.


돌봄의 편리함 뒤에 놓인 개인정보와 책임 문제


돌봄 로봇이 사용자의 생활을 세밀하게 지원할수록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질 수 있다.


식사와 복약 시간, 수면 습관, 활동량, 대화 내용 등이 로봇의 기능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시스템은 카메라나 마이크, 각종 센서를 통해 이용자의 상태를 관찰하도록 설계된다.


이러한 정보는 돌봄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유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민감한 개인정보가 될 수 있다.


특히 고령자나 인지기능이 저하된 이용자의 경우 어떤 정보가 수집되고 누구에게 전달되는지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가족이 편리하게 생활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용자의 사생활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돌봄 로봇을 운영할 때는 이용자의 동의를 바탕으로 필요한 정보만 수집하고, 접근 권한과 보관 기간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가족과 돌봄기관이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에도 이용자의 권리와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안전과 책임의 문제도 중요하다. 로봇이 응급상황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필요한 조치가 지연된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돌봄 로봇은 생활지원 기능을 제공할 수 있지만 의료적 판단이나 응급 대응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특히 건강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기술의 한계를 명확히 알리고 필요한 상황에서 의료진이나 응급서비스와 연결할 수 있는 체계가 중요하다.


기술에 대한 신뢰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말하는 능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용자의 안전과 권리를 얼마나 책임 있게 보호하는가에 달려 있다.


돌봄 로봇은 새로운 복지 격차를 만들지 않을까


돌봄 로봇의 보급이 확대되면 경제적 여건에 따른 접근성 문제도 나타날 수 있다.


고성능 AI와 다양한 센서를 갖춘 로봇은 개발과 생산, 유지관리에 비용이 발생한다. 지속적인 통신 서비스나 소프트웨어 이용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은 다양한 돌봄 기술을 활용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이나 정보 접근성이 낮은 사람들은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공공 돌봄 서비스에서 비용 절감을 이유로 사람의 방문을 줄이고 저렴한 기계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또 다른 불평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경제적 여건에 따라 어떤 사람은 인간 돌봄과 첨단기술을 함께 이용하고, 다른 사람은 로봇을 통한 최소한의 서비스만 받는 상황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돌봄 로봇을 공공복지에 활용하려면 기술의 보급률뿐 아니라 서비스의 질과 이용자의 선택권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로봇과의 상호작용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직접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도움받는 방식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이용자의 신체적·인지적 상태와 생활환경에 따라 적합한 돌봄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돌봄 로봇은 기존의 복지서비스를 일률적으로 대체하기보다 이용자의 필요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지원 수단으로 제공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나 경제적 여건이 돌봄의 질을 결정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지 않도록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가족을 대신하는 로봇보다 가족을 이어주는 로봇


돌봄 로봇은 앞으로 더욱 정교해질 가능성이 있다. AI가 사용자의 대화 방식과 생활 습관을 파악하고, 이전의 상호작용을 기억하며, 개인에게 적합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미래의 돌봄 로봇은 단순히 정해진 시간에 말을 거는 수준을 넘어 이용자의 생활 변화에 맞춰 필요한 도움을 제안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가족의 의미를 단순한 기능의 집합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가족은 식사를 챙겨주고 약을 먹을 시간을 알려주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기억을 공유하고, 때로는 갈등을 겪으면서도 서로의 삶에 책임과 관심을 갖는 관계이기도 하다.


로봇은 이러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일부 행동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행동이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 인간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의 모든 의미를 대신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돌봄 로봇의 발전은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과 돌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가족이 직접 모든 돌봄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와 가족구조의 변화 속에서 돌봄은 더 이상 개별 가정만의 책임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과 복지기관, 지역사회가 함께 돌봄 체계를 마련하고, 기술은 그 안에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로봇이 혼자 사는 노인의 안부를 확인하고, 가족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며, 돌봄 종사자의 업무 부담을 줄여준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돌봄 로봇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가족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가 돌봄의 책임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기계가 곁에 머무는 시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로봇은 이제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고, 도시에서 물건을 배달하며, 병원에서 의료진의 업무를 돕고 있다. 그리고 그 역할은 사람의 가장 사적인 생활공간인 가정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대답하며, 생활을 살피고, 외로운 시간에 함께하는 로봇은 분명 이전의 기계와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이용자에게 친근한 존재가 되고, 때로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돌봄 로봇이 가족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족과 돌봄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것과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 안부를 묻는 것과 상대방을 걱정하며 찾아가는 것도 같은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고 로봇이 제공하는 도움을 가볍게 볼 필요는 없다. 혼자 지내는 사람에게 규칙적인 대화와 생활 지원이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면 그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할 수 있는 일과 인간이 책임져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로봇은 사람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고 돌봄의 공백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외로운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사회와 연결하는 책임까지 기계에 맡길 수는 없다.


AI와 로봇이 더욱 발전하는 미래에는 사람처럼 대화하는 기계를 만나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누군가의 곁에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서로를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깊이 생각해야 한다.


돌봄 로봇은 가족처럼 친근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는 로봇이 가족을 대신하는 사회가 아니라, 로봇의 도움으로 사람과 사람이 더 잘 연결되고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사회다.


기계가 인간의 곁에 머무는 시대에도 돌봄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소중해져야 할 것은 인간의 따뜻한 관심과 서로에 대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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