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년 역사의 철도 위에 복합문화시설 조성, 기존 교통시설을 활용한 새로운 도시공간
- 1만 3,000명 수용하는 공연·스포츠 시설과 호텔·주거공간 결합, 문화로 확장되는 도시의 일상
도시를 가로지르는 철도는 오랫동안 사람과 물자를 이동시키며 도시의 성장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철길은 때로 도시를 나누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철도 양쪽으로 건물과 도로가 분리되고, 가까운 곳을 가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을 다른 도시로 연결하는 철도가 정작 도시 안에서는 공간을 단절시키는 것이다.
핀란드 탐페레(Tampere)에는 이러한 철도의 공간적 한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건축물이 있다. 열차가 오가는 철도 위에 거대한 인공 지반을 만들고, 그 위에 스포츠 경기장과 공연장, 호텔, 주거·업무시설을 조성한 '노키아 아레나와 탐페레 데크(Nokia Arena and Tampere Deck)'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 철도를 철거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았다. 철도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그 위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오랫동안 교통시설로 사용되던 장소에 사람들이 모여 문화를 즐기고 생활할 수 있는 기능을 더한 것이다.
탐페레는 핀란드의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로, 수도 헬싱키와 철도로 연결돼 있다. 노키아 아레나가 들어선 곳은 약 140년의 역사를 가진 철도 구간 위쪽이다. 이미 사용 중인 철도를 유지하면서 대규모 건축물을 세워야 했기 때문에 설계와 시공 과정에는 여러 기술적 과제가 뒤따랐다.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2021년 완공된 노키아 아레나가 있다. 약 1만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시설은 아이스하키 경기는 물론 콘서트와 코미디 공연, 가족을 위한 문화행사,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는 복합공간이다.
아이스하키는 핀란드에서 많은 사람이 즐기는 대표적인 스포츠다. 노키아 아레나는 탐페레를 연고로 하는 두 아이스하키팀의 경기장으로 활용되며 스포츠 팬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가 됐다.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관중들의 응원으로 가득 차고, 공연이 있는 날에는 음악과 무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찾는다.
하나의 건물이 경기장과 공연장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면서 시민들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넓어졌다. 스포츠와 공연은 서로 다른 활동이지만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거움과 감동을 나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키아 아레나는 이러한 경험을 도시의 중심에서 제공하도록 만들어졌다.
경기장에는 약 280개 객실 규모의 호텔도 함께 들어서 있다. 다른 지역에서 공연이나 경기를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 머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경기장과 숙박시설을 하나의 건물에 결합하면서 방문객의 이동 부담을 줄이고, 주변의 상업시설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노키아 아레나는 더 큰 도시개발사업의 일부이기도 하다. 탐페레 데크 프로젝트에는 경기장과 호텔 외에도 주거시설과 사무실, 상업공간 등이 포함돼 있다. 철도 위에 조성한 인공 지반을 활용해 이전에는 건물을 세우기 어려웠던 공간에 새로운 도시 기능을 배치한 것이다.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 람볼(Ramboll)의 프로젝트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개발계획에는 최대 5개의 타워와 약 1,000가구의 주거시설, 업무공간 등이 포함됐다. 당시 자료에서는 2024년까지 단계적으로 개발을 마무리하는 일정이 제시됐다. 다만 이는 계획 당시의 내용으로, 실제 완공 범위와 일정은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복합개발은 사람들이 생활하고 일하며 문화를 즐기는 공간을 가까운 곳에 모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집에서 멀리 이동하지 않고도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수 있고, 주변의 상업시설과 업무시설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기존 철도와 대중교통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도 편리하다.
도시에서 이동 거리는 일상의 편리함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집과 직장, 문화시설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만큼 이동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반대로 여러 기능이 가까운 곳에 모여 있으면 시민들은 자신의 생활 방식에 맞춰 공간을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탐페레 데크는 이러한 도시의 기능을 철도 위로 확장했다. 새로운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도심에서 기존 교통시설의 상부 공간을 활용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철도가 차지하고 있던 공간을 단순히 이동을 위한 장소로 남겨두지 않고, 그 위에 또 다른 도시의 일상을 더한 것이다.
물론 열차가 운행하는 철도 위에 건물을 세우는 일은 쉽지 않다. 거대한 건축물의 무게를 안정적으로 지탱해야 하고, 공사 중에도 철도의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 건물과 철도시설이 서로 영향을 주지 않도록 구조와 안전을 세심하게 검토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프로젝트를 수행한 SRV 건설의 라우노 쿨말라(Rauno Kulmala) 프로젝트 매니저는 모든 공사가 철도 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데크 구조물과 건축물의 시공을 조율하는 일이 특히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와 시공 분야의 전문적인 협력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람볼은 건축물과 데크, 철도 관련 시설의 설계에 참여했다. 구조공학과 지반공학을 비롯해 냉난방·환기설비, 전기설비, 교통 및 화재안전 설계 등 여러 분야의 기술이 함께 적용됐다.
철도 위에 대규모 시설을 조성하려면 건물의 구조적 안정성뿐 아니라 열차 운행으로 발생하는 진동과 소음, 화재 발생 시 대피 방법, 주변의 교통 흐름까지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건물을 안전하게 세우는 것을 넘어 기존 교통시설과 새로운 공간이 함께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람볼은 상업시설의 운영 방식과 공간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건축물이 완공된 이후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까지 고려한 것이다. 도시개발에서는 시설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그 공간이 지속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계획하는 일이 중요하다.
노키아 아레나를 포함한 첫 번째 개발 단계는 2021년 가을 마무리됐다. 이는 핀란드 아이스하키 시즌과 2022년 세계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를 앞둔 시점이었다. 대규모 국제 스포츠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시설을 확보하면서 탐페레는 스포츠와 문화행사의 개최지로서 새로운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노키아 아레나의 의미를 대형 경기장 하나가 들어섰다는 사실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프로젝트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이미 존재하는 철도시설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도시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도시가 성장할수록 새로운 시설을 지을 수 있는 땅은 부족해진다. 특히 도심에서는 넓은 부지를 확보하기 어렵고, 기존 건축물이나 교통시설을 철거하거나 이전하는 데도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기반시설의 상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은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철도 위에 인공 지반을 조성하면 철길로 나뉘어 있던 공간을 연결하고, 이전에는 활용하기 어려웠던 장소에 새로운 기능을 더할 수 있다. 여기에 문화시설과 주거·업무시설이 함께 들어서면 사람들이 도시를 이용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개발 방식이 모든 도시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대규모 인공 지반과 복잡한 구조물을 설치하려면 상당한 건설비용과 기술력이 필요하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과 시설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 장기적인 유지관리 비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기존 철도를 유지하면서 상부 공간을 활용했다는 점은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려는 접근이지만, 그것만으로 환경적 지속가능성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효과를 평가하려면 건설에 사용된 자재와 에너지, 교통 이용 방식의 변화, 시설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도시의 지속가능성은 얼마나 많은 건물을 짓고 시설을 모았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시민들이 그 공간을 얼마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 대중교통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중요하다.
노키아 아레나와 탐페레 데크는 문화시설이 도시의 변화를 이끄는 중심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경기장과 공연장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다. 스포츠와 공연을 즐기기 위해 찾아온 방문객들은 주변의 숙박시설과 상업시설을 이용하고, 도시의 다른 장소도 함께 방문할 수 있다.
문화시설은 이처럼 공연이나 경기를 개최하는 기능을 넘어 사람들이 도시를 찾고 머무는 계기를 만든다. 지역의 다양한 활동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
물론 대규모 문화시설이 들어선다고 해서 지역경제가 반드시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이용 수요와 운영비용, 주변 상권과의 관계, 지역 주민이 누릴 수 있는 혜택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시설의 규모보다 그 공간이 오랫동안 도시의 일상 속에서 활용될 수 있느냐다.
앞선 연재에서 살펴본 런던의 테이트 모던은 오래된 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바꾸며 산업시설에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부여했다. 헬싱키의 오디 중앙도서관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배우고 문화를 즐기는 공공공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탐페레의 노키아 아레나는 문화시설을 중심으로 도시의 공간을 새롭게 구성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사례가 된다.
세 건축물은 서로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공통점이 있다. 기존 건축물에 새로운 쓰임을 부여하거나, 시민들이 함께 머무는 공간을 만들고, 철도 위에 복합문화시설을 조성하는 일 모두 도시와 사람들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노키아 아레나가 보여주는 변화는 특히 흥미롭다. 오랫동안 열차가 오가던 철도 위에 사람들이 모여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고 공연을 즐기는 장소가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이동을 위한 공간으로만 사용되던 곳이 새로운 문화 활동을 담는 장소로 확장된 것이다.
도시의 미래를 고민할 때 반드시 새로운 땅을 찾아 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서로 떨어져 있던 도시의 기능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살펴보는 일도 중요하다. 오래된 기반시설을 새로운 도시 활동과 조화롭게 연결하는 방식은 앞으로의 도시개발에서도 생각해볼 만한 접근이다.
핀란드 탐페레에서는 오늘도 철도를 따라 열차가 오가고, 그 위에 조성된 노키아 아레나에서는 스포츠와 공연이 열린다. 하나의 장소에서 서로 다른 기능이 함께 이어지면서 새로운 도시의 풍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만나고, 무엇을 경험하며, 어떤 일상을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노키아 아레나와 탐페레 데크는 기존 도시의 공간을 새롭게 활용하는 일이 시민들의 문화생활과 도시의 미래에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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