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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멜로디로 시대를 물들인 닐 세다카(Neil Sedaka), 우리 곁을 떠나다

  • 하윤아 기자
  • 입력 2026.02.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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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 멜로디로 시대를 물들인 닐 세다카(Neil Sedaka), 우리 곁을 떠나다 [사진=Neil Sedaka facebook, 그래픽=ESG 코리아뉴스]

 

1960~70년대를 풍미한 싱어송라이터 닐 세다카(Neil Sedaka)가 8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유가족은 성명을 통해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버지, 할아버지였던 닐 세다카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며 “그는 진정한 로큰롤의 전설이었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즉각 공개되지 않았다.


세다카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밝고 경쾌한 멜로디와 앳된 소프라노 음색으로 미국 팝 시장을 사로잡았다. 대표곡인 ‘브레이킹 업 이즈 하드 투 두(Breaking Up Is Hard to Do)’, ‘라프터 인 더 레인(Laughter in the Rain)’은 물론 ‘해피 버스데이 스위트 식스틴(Happy Birthday Sweet Sixteen)’, ‘캘린더 걸(Calendar Girl)’, ‘오! 캐럴(Oh! Carol)’ 등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특히 ‘오! 캐럴’은 훗날 싱어송라이터로 명성을 떨친 캐럴 킹(Carole King)을 위해 쓴 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뉴욕 맨해튼의 음악 창작 중심지였던 브릴 빌딩(Brill Building)에서 활동하며 작사가이자 어린 시절 이웃이었던 하워드 그린필드(Howard Greenfield)와 콤비를 이뤘다. 두 사람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이후, 비틀즈(The Beatles) 등장 이전의 ‘십대 순수함’을 담은 팝송들을 연이어 발표하며 시대를 대표하는 히트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브루클린 브라이튼 비치에서 태어난 세다카는 줄리아드 음대(Juilliard School)에서 수학한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바탕으로 탄탄한 작곡 역량을 갖췄다. 유대계 택시 운전사의 아들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어머니 엘리너(Eleanor)가 중고 업라이트 피아노를 마련해주며 음악의 길을 열어주었다.


1960년대 후반 비틀즈와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물결 속에서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지만, 1970년대 중반 ‘라프터 인 더 레인(Laughter in the Rain)’, ‘배드 블러드(Bad Blood)’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가 만든 ‘러브 윌 킵 어스 투게더(Love Will Keep Us Together)’는 듀오 캡틴 앤 테닐(Captain & Tennille)의 버전으로 1975년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며 그래미상(Grammy Awards) 수상으로 이어졌다. 노래 말미에 토니 테닐(Toni Tennille)이 “세다카가 돌아왔다!”고 외친 일화는 그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다카의 곡은 세대를 넘어 다양한 아티스트들에 의해 재해석됐다.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더 피프스 디멘션(The 5th Dimension), 니켈백(Nickelback) 등 폭넓은 장르의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불렀다. 그는 또한 ‘스투피드 큐피드(Stupid Cupid)’, ‘웨어 더 보이즈 아(Where the Boys Are)’ 등을 통해 코니 프랜시스(Connie Francis)의 성공을 견인하기도 했다.


세다카는 80대 중반까지도 매년 수십 차례 콘서트를 이어가며 ‘현역 전설’로 불렸다. 2012년 AP통신(Associated Press)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전설이 되는 것도 좋지만, 현역으로 활동하는 전설이 되는 건 더 멋진 일”이라며 공연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그는 “관객 앞에 서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기립 박수를 받는 순간의 전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수십 년간 이어진 그의 음악 인생은 전 세계 수백만 장의 음반 판매와 수많은 히트곡으로 기록됐다. 브루클린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다. 세다카는 밝은 멜로디와 낙천적인 에너지로 로큰롤의 초창기를 빛낸 인물이자, 시대를 넘어 사랑받은 작곡가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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