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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에 되새기는 두 의사의 결단, 안중근과 윤봉길의 이름

  • 김지원 기자
  • 입력 2026.03.0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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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윤봉길 의사 우) 안중근 의사 [그래픽=ESG코리아뉴스]

 

3·1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한 세기 전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던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1919년 봄, 거리로 쏟아져 나온 민중의 만세 함성은 빼앗긴 주권을 되찾겠다는 간절한 외침이었다. 그 함성과 같은 결로, 그러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독립의 길을 걸었던 인물들이 있다. 바로 안중근과 윤봉길이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며 세계를 향해 조선의 현실을 알렸다. 그의 행동은 단순한 의열 투쟁을 넘어, 동양의 평화와 정의를 지향한 결단이었다. 그는 재판정에서도 침착하게 자신의 신념을 밝히며, 침략과 지배가 아닌 공존의 질서를 주장했다.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에는 제국주의의 폭력에 맞선 사상적 고민이 담겨 있었다. 결국 그는 사형 선고를 받고 순국했지만, 그가 남긴 울림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었다.


윤봉길 의사의 삶 또한 짧지만 강렬했다. 1932년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장절 행사장에 폭탄을 던진 그의 의거는 침체돼 있던 독립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스물다섯 청년의 결단은 국제사회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고,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를 세계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중국 지도자였던 장제스가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 것도 이 사건 이후였다. 윤 의사는 체포되어 순국했지만, 그의 이름은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동 속에서 계속 불렸다.


두 사람의 선택은 방법은 달랐지만, 나라를 잃은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의 책임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3·1운동이 민중의 비폭력 저항이었다면, 이들의 의거는 무장 독립투쟁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공통된 염원이 있었다.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자유와 존엄의 가치였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일상은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3·1절은 단지 과거의 역사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그들이 남긴 질문을 되새기는 시간이다. 공동체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우리는 어떤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하얼빈의 총성과 상하이의 폭음은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았지만, 그 울림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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