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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돌의 신화, 터키 파묵칼레... 지열이 빚은 천상의 목화성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5.10.2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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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 남서부 햇살이 내려 쬐는 언덕 위에 자리한 ‘하얀 돌의 원더랜드’ 파묵칼레(Pamukkale) [사진=Anna Shvets]

 

하얀 돌로 빚어진 언덕 위에 거품이 피어오르고 푸른 물결이 고요히 흐른다. 터키 남서부의 햇살 가득한 고원지대, 그곳에 자리한 파묵칼레는 이름처럼 ‘목화의 성’이라 불릴 만큼 신비로운 풍경을 자랑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스키 리조트처럼 보이지만 이곳의 하얀 경사면은 눈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뜨거운 온천수가 만들어낸 트라버틴 석회층이다. 물속의 칼슘 성분이 지표에 노출되며 고체로 변해 층층이 쌓인 결과 하얗게 빛나는 언덕과 계단식 웅덩이가 생겨났다. 그 위를 따라 흘러내리는 온천수는 햇살을 받아 은은한 빛을 내고 저녁이 되면 석양빛이 하얀 표면을 분홍빛으로 물들인다.


파묵칼레의 온천수는 섭씨 19도에서 57도 사이로 때로는 끓는점에 이를 만큼 뜨겁다. 이 뜨거운 물이 오랜 세월 동안 언덕을 흘러내리며 만들어낸 자연의 조각품은 지금도 조금씩 형태를 바꾸며 살아 있는 듯하다. 여름의 열기 속에서도 녹지 않고 반짝이는 이 흰 언덕은 마치 마법의 힘으로 유지되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곳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경관만으로 유명한 것이 아니다. 파묵칼레의 언덕 위에는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가 자리하고 있다. 


기원전 2세기에 세워진 이 도시는 로마와 비잔틴 시대를 거치며 온천의 치유력과 종교적 신성함으로 번영했다. 고대인들은 이곳의 뜨거운 물이 병을 고친다고 믿었고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지하의 신 플루토에게 통하는 ‘플루토늄(Plutonium)’, 즉 지옥의 관문을 두려움과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당시 제사장들은 독성 가스로 가득한 동굴 속에서도 숨을 참고 들어갔고 신의 사자로 추앙받았다.


오늘날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는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방문객들은 남문에서 입장해 포장된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며 하얀 대지의 끝에서 끝까지 이어진 장관을 마주한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트라버틴 위를 걸을 때 발바닥 아래 느껴지는 따뜻한 퇴적물과 부드러운 촉감은 다른 여행지에서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얕은 웅덩이 속으로 발을 담그면 미세한 거품이 발끝을 간질이며 고요한 물결이 언덕 아래로 흘러내린다.


테라스의 가장 높은 곳에는 ‘앤틱 풀(Antique Pool)’이 있다. 무너진 아폴로 신전의 기둥 사이로 수정처럼 맑은 온천수가 흘러들고 관광객들은 고대의 폐허 속에서 수영을 즐긴다. 물속에서는 작은 거품이 보글보글 피어올라 마치 탄산수 속에 잠긴 듯한 기분을 준다. 이 물은 피부 질환과 관절염, 순환기 질환에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히에라폴리스 유적지에는 로마 극장, 아고라 시장, 네크로폴리스 등 당시 도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광활한 유적지 사이를 걷다 보면 이곳이 한때 얼마나 번성했던 도시였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파묵칼레는 아름다움만큼이나 보존의 문제를 안고 있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일부 테라스는 마르고 예전처럼 모든 곳에 물이 흐르지 않는다. 유네스코 등재 이후 터키 정부는 환경 보호를 위해 호텔을 철거하고 물의 흐름을 조절하며, 일부 지역을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했다. 그 결과 방문객들은 예전처럼 자유롭게 물놀이를 할 수는 없지만 그 덕분에 이 신비로운 자연유산은 다시 제빛을 되찾고 있다.


파묵칼레를 떠나기 전, 해가 지는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에서 하얀 테라스가 금빛과 분홍빛으로 물드는 장면은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파묵칼레는 단순히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지열이 만든 자연의 기적이자 수천 년 동안 인간이 물과 땅을 통해 신성함을 느껴온 역사적 무대이다. 여행자는 이곳에서 단 한 번의 발걸음으로 지구의 원초적인 힘과 인간의 믿음이 교차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파묵칼레는 더 이상 하얀 돌의 언덕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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