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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옥의 공간리질리언스⑩] 뒤안길에 남겨진 문학... 미당시문학관

  • 이수옥
  • 입력 2026.02.0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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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e Su-ok's Spatial Resilience⑩] Literature left behind in the back alleys... Midang Poetry Literature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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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당시문학관의 겹쳐진 시간의 입구 [사진=이수옥]

 

기억의 출발점, 폐교에서 문학관으로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 자리한 미당시문학관은 시인 서정주의 시정신과 문학적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고향에 놓인 공간이다. 그러나 이곳은 기념이라는 말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기억이 늘 온화한 얼굴만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아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 지금 이 자리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음을 공간의 언어로 드러낸다.


이 문학관의 물리적 출발은 폐교된 봉암초등학교 선운분교이다. 배움의 시간이 멈춘 교실은 철거되지 않았고, 보존이라는 선택 앞에 놓였다. 1998년 6월 19일 설계를 마치고 2001년 6월 준공된 건물은 같은 해 11월 3일 개관하였다. 교육의 기억은 문학의 기억으로 옮겨 앉았으며 폐교는 결핍이 아니라 기억을 담는 그릇으로 재조직된다. 배움의 장소가 사유의 장소로 바뀌는 전환은 지역 문화 자원이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아 다시 호흡하게 되는 출발점으로 읽힌다.


낮은 태도, 분리된 풍경


산자락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멀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자리를 잡는다. 자연 속에 스며들지도 자연을 배경으로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절제된 간격은 건축이 취한 태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기존 학교 건물의 흔적을 존중한 채 새로운 전시 동을 덧붙이는 방식은 무엇을 더하기보다는 어디까지 물러설 것인가를 먼저 고민한 결과처럼 보인다.


여기서 건축은 크기를 통해 말하려 하지 않는다. 담담한 볼륨과 단순한 구성 속에서 풍경이 먼저 시야에 들어오도록 스스로를 낮춘다. 수평으로 퍼지기보다 위로 이어지는 공간의 흐름 역시 과시가 아닌 집중을 택한 선택이다. 이러한 태도는 문학관 전체에 고르게 스며들며, 기억을 다루는 방식 또한 선언이 아닌 숙고의 리듬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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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교 위에 쌓인 시간의 흔적 미당시문학관 전경 [사진=이수옥]

 

위로 오르는 건축, 전망대로서의 동선


미당시문학관에서 가장 분명하게 읽히는 설계 언어는 ‘오름’이다. 건축가 김원은 건축을 시인의 정신세계를 가까이에서 올려다볼 수 있는 발판이자, 주변 풍경을 한 호흡에 담아내는 마음의 전망대로 구상했다. 그래서 건물은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사람들이 올라서서 바라보도록 구조를 짠다.


2층에서 5층까지 이어지는 비교적 좁은 수직 동선은 관람객에게 편안함보다 집중을 요구한다. 오르내림의 반복은 동선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 기억을 압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연보와 육필, 사진과 시화, 유품이 계단과 층을 따라 배치되며, 관람자의 신체 이동 자체가 전시 서사의 일부가 된다. 걷는 행위는 곧 읽는 행위가 되고 오르는 시간은 시인의 삶을 따라가는 시간으로 겹쳐진다. 동선의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거대한 기념물들은 고창의 들판과 선운산, 질마재와 소요산, 그리고 멀리 변산반도의 능선과 바다까지 이어지는 전망이 시야를 연다. 


풍경 앞에서 미당의 문장인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는 더 이상 텍스트로 머물지 않는다. 바람과 지형, 시간의 결이 겹쳐 스며들며, 시는 설명이 아닌 체감으로 전환된다. 건축은 시를 해설하지 않고, 시가 태어난 조건을 몸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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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에 “팔할의 바람”이 내려다본 고향 [사진=이수옥]

 

육필과 유물, 삶의 밀도로 남은 문학


실내 전시는 시인의 연보에서 시작된다. 1915년 고창 선운리에서 태어나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에서 수학하고,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며 문단에 등장하기까지의 이력은 연대기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화사집』에서 『귀촉도』, 『서정주시선』, 『질마재 신화』로 이어지는 시 세계는 성취의 목록 보다는 축적된 시간의 흐름으로 놓인다. 결과를 강조하기보다 과정이 먼저 읽히도록 구성된 점이 이 전시의 기본 태도다.


전시 공간 곳곳에는 서정주의 육필 원고를 비롯해 필기구와 안경, 집기류, 초판본, 사진과 시화가 배치되어 있다. 김기창의 미당 초상화와 박노수의 「국화 옆에서」 시화는 전시의 시각적 축을 형성하며, 문학과 미술이 교차하던 시대의 공기를 함께 전한다. 미당의 유품만 2천여 점, 기증품을 포함한 전체 소장품은 1만여 점에 이른다. 이러한 구성은 시인을 상징으로 고정하지 않는다. 육필의 흔들린 획, 오래된 안경과 닳은 집기류는 시가 탄생하기까지의 반복된 일상과 시간을 드러낸다. 문학은 이곳에서 텍스트로만 읽히지 않는 살아온 삶의 질감으로 감각된다.


작품보다 사람이 먼저 다가오고, 시보다 시간이 먼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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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을 따라 오르는 전시의 층위 [사진=이수옥]

 

뒤안길에 놓인 그림자, 시간을 견디는 장소의 태도


미당시문학관의 서사는 「뒤안길, 미당의 그림자」에서 분명한 전환점을 맞는다. 친일 행적과 권위주의 정권 찬양이라는 불편한 이력은 전면에 세워지지도, 삭제의 방식으로 처리되지도 않는다. 


대신 ‘그림자’라는 이름으로 중심이 아니라 뒤안길에 놓인다. 이는 회피의 결과가 아니라 위치에 대한 선택이며, 기억을 다루는 태도에 관한 판단이다.


배치는 장소가 시간을 대하는 방식과 깊이 맞닿아 있다. 여기서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정렬되는 연대의 흐름이 아니라, 축적되고 겹쳐지며 서로 다른 결을 지닌 채 공존하는 상태로 드러난다. 뒤안길에 놓인 그림자는 사라진 흔적이 아니라 현재의 공간 경험 속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시간의 층위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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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당의 대표시 12편을 담은 유리벽 전시대 [사진=이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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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으로 남은 얼굴, 미당 서정주 [사진=이수옥]

 

전망대로 오르면 시인의 세계가 넓게 펼쳐져 다시 내려오는 동선에서는 그림자의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위로 오르는 건축과 뒤에 남겨진 기억의 병치는 이 장소가 스스로 선택한 윤리를 분명히 보여준다. 밝힘과 남김, 드러냄과 유보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동시에 유지되어 기억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가 함께 짊어지는 시간의 무게로 전환된다.


그래서 문학관 앞에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기억은 언제 비로소 끝나는가, 혹은 끝나지 않아야 하는가.



덧붙이는 글 | 이수옥(Lee Su Ok)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실내설계 전공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동 일반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중이다. 학술 연구의 일환으로 유휴 산업시설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의 리질리언스 공간 특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리질리언스 연구는 기존 산업유산을 단순히 보존의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현대 도시 안에서 지속가능한 문화·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해석하여 도시재생과 공간 정의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이러닝교육원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디자인 및 공간 관련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으며, 한국 ESG위원회 인권전략위원장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연구 분야는 도시재생과 산업유산 재생, 문화유산의 활용 방안에 대해 보다 실제적이고 통합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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