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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거울에 비친 것은 ‘죄’ 아닌 아름다움…가와나베 교사이의 기묘한 상상력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08.30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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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세기 일본 화가가 그린 ‘염라대왕 정파리경도’ 다시 주목…전통 설화에 풍자와 유머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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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화가 가와나베 교사이(河鍋暁斎·Kawanabe Kyōsai, 1831~1889)의 작품 ‘염라대왕 정파리경도(閻魔大王浄玻璃鏡図·A Beauty in Front of King Enma’s Mirror)’ [사진=Masterpieces of Japan X]

 

지옥의 재판을 앞둔 한 여인이 거울 앞에 서 있다. 뒤에서는 염라대왕과 험상궂은 지옥의 존재들이 거울을 들여다보지만, 정작 거울에 나타난 것은 여인의 죄가 아니라 아름다운 얼굴이다.


일본 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Masterpieces of Japan’은 29일 공식 X 계정에 일본 화가 가와나베 교사이(河鍋暁斎·Kawanabe Kyōsai, 1831~1889)의 작품 ‘염라대왕 정파리경도(閻魔大王浄玻璃鏡図·A Beauty in Front of King Enma’s Mirror)’를 소개했다.


게시물에는 작품 제작 연도가 1887년으로 표기됐다. 다만 영국 왕립예술원(Royal Academy of Arts)과 관련 전시 자료에서는 제작 시기를 1871~1889년으로 보고 있으며, 1887년경 제작됐을 가능성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작품은 비단에 먹과 채색, 금을 사용한 두루마리 그림으로 크기는 35.3×52㎝이며 현재 런던의 이스라엘 골드먼 컬렉션(Israel Goldman Collection)에 소장돼 있다.


작품의 핵심 소재는 염라대왕이 죽은 사람의 생전 행적을 살펴본다고 전해지는 ‘정파리경(浄玻璃鏡)’이다. 영국 왕립예술원이 2022년 교사이 전시에서 소개한 작품 해설에 따르면, 이 거울에는 원래 죽은 사람이 생전에 저지른 죄가 나타나야 하지만 그림 속에서는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만 비친다. 이를 바라보는 염라대왕 역시 예상 밖의 광경에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엄숙한 지옥의 심판을 다루면서도 화면에는 공포보다 익살스러움이 먼저 드러난다. 커다란 칼을 든 지옥의 존재와 해골 같은 인물, 위압적인 모습의 염라대왕이 등장하지만 이들의 표정과 몸짓은 과장돼 있다. 화면 오른쪽의 차분한 여인과 강한 대비를 이루면서 교사이 특유의 기묘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가와나베 교사이는 에도시대 말기에서 메이지시대에 걸쳐 활동한 대표적인 화가다. 어린 시절 우키요에 화가 우타가와 구니요시에게 그림을 배웠고 이후 가노파의 전통적인 회화 교육도 받았다. 동물과 요괴, 귀신, 해골부터 당대의 사회상과 서양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소재를 다뤘으며, 전통적인 회화 기법에 풍자와 해학을 결합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교사이가 활동했던 19세기 후반은 일본 사회가 막부 체제에서 메이지시대로 넘어가며 정치·사회·문화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던 시기였다. 해외와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서양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빠르게 들어왔고, 교사이는 이러한 변화 역시 자신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담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의 작품에서 일본의 전통뿐 아니라 서구 문화의 유입과 사회 변화에 대한 풍자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오랫동안 호쿠사이나 히로시게에 비해 해외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교사이는 최근 국제 미술계에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 2022년 런던 왕립예술원은 ‘Kyōsai: The Israel Goldman Collection’전을 열어 그의 회화와 목판화, 삽화 등을 소개했다. 당시 일본대사관은 교사이를 19세기 일본에서 가장 흥미로운 화가 가운데 한 명으로 소개했다.


올해 일본에서도 교사이의 작품을 대규모로 선보이는 순회전이 이어지고 있다. 도쿄 산토리미술관은 지난 4월 22일부터 6월 21일까지 ‘골드먼 컬렉션 가와나베 교사이의 세계’를 개최했으며, 이후 고베시립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7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시즈오카현립미술관으로 순회할 예정이다. 이번 X 게시물에 등장한 ‘염라대왕 정파리경도’ 역시 이스라엘 골드먼 컬렉션의 작품으로 올해 일본 전시에서 소개되고 있다.


최근 해외에서 교사이의 작품이 다시 관심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통적인 일본 회화와 대중적 상상력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표현방식이다. 연구기관과 전시 관계자들은 그의 재치 있고 역동적인 그림이 오늘날 만화와 현대 회화, 타투 등 다양한 시각문화에서도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염라대왕 정파리경도’ 역시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한다는 무거운 이야기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염라대왕과 지옥의 존재들을 인간적인 표정으로 그려내고, 죄를 보여줘야 할 거울에 오히려 아름다운 얼굴을 비추는 예상 밖의 장면을 만들어냈다.


공포와 유머, 전통적인 종교 이미지와 자유로운 상상력이 한 화면에서 만나는 이 작품은 19세기 일본 미술의 독특한 면모와 함께 가와나베 교사이가 오늘날 다시 평가받는 이유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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