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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예술을 읽다 ⑤] 마을의 악을 몰아내는 거대한 가면…코트디부아르 ‘베두 가면’ 이야기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11.0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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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에서 만나는 코트디부아르 ‘베두 가면’ 이야기.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가면 중 하나로 꼽히는 베두 가면은 코트디부아르 본두쿠 지역의 전통 의례와 축제에 등장하며, 질병과 불행을 물리치고 풍요와 건강을 기원하는 공동체의 신앙과 삶을 담은 문화유산이다.

[편집자 주] 〈아프리카 예술을 읽다〉는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의 소장·전시 작품을 하나씩 만나며 작품에 담긴 아프리카 각 지역의 역사와 자연, 삶과 문화를 들여다보는 ESG코리아뉴스의 문화 연재시리즈이다. 조각과 가면, 생활 도구와 장신구 등 한 점의 작품에서 출발해 하나의 이미지로 뭉뚱그려 바라보기 쉬웠던 아프리카의 다양한 문화와 이야기를 보다 상세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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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에 소장중인 베두(Bedu) 가면의 모습. [사진+그래픽=ESG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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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에 소장중인 베두(Bedu) 가면의 의례 모습. [사진=ESG코리아뉴스]

 

서아프리카의 한 마을에 밤이 찾아오면 북소리와 함께 거대한 가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가면 아래에는 온몸을 섬유 의상으로 감싼 사람이 있다. 가면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마을 사람들은 그 주위에 모여 노래하고 춤을 추며 한 해의 불행이 사라지고 새로운 풍요가 찾아오기를 기원한다.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접경 지역에서 전해져 온 베두(Bedu) 가면의 의례 모습이다.


베두 가면은 아프리카의 여러 전통 가면 가운데서도 유난히 큰 크기와 독특한 형태로 눈길을 끈다. 일반적인 가면이 사람의 얼굴을 가리는 데 비해 베두 가면은 얼굴 위로 커다란 판 모양의 장식이 솟아 있다. 일부 작품은 높이가 2m를 넘어 가면을 착용한 사람보다 훨씬 커 보인다.


그러나 베두 가면이 이처럼 거대하게 만들어진 이유는 단순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가면에 공동체를 보호하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질병과 불행을 물리치고 아이들의 건강과 가족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례에서 베두 가면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강원도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에도 이러한 전통을 살펴볼 수 있는 베두 가면(Bedu Mask)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안내문에 따르면 베두 가면은 코트디부아르 북동부 본두쿠(Bondoukou) 지역의 전통축제와 가면 행진에 사용됐으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가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특히 악한 존재를 몰아내는 '위대한 땅의 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소개돼 있다.


사람들은 왜 자신보다 훨씬 큰 가면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가면 앞에서 무엇을 바라고 기원했을까.


사람보다 더 큰 가면에 담긴 특별한 의미


베두 가면의 가장 큰 특징은 얼굴 위로 높게 솟아오른 장식이다. 나무판을 깎아 만든 가면에는 사람의 얼굴이 표현돼 있고, 그 위에는 원반이나 뿔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구조물이 이어진다. 표면에는 흰색과 검은색 등을 사용한 기하학적 무늬가 그려져 있어 멀리서도 독특한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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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스미스소니언 국립아프리카미술관 소장품으로 높이 269.2cm의 베두 계열 가면. 중간)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품으로 베두 계열 가면. 우측) 세컨드 페이스 뮤지엄 소장으로 남성형 베두 가면의 형태.[그랙픽= ESG코리아뉴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아프리카미술관(National Museum of African Art)이 소장한 20세기 중반의 베두 계열 가면은 높이가 269.2cm, 너비가 125.7cm에 이른다. 나무와 안료, 금속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아래쪽에 얼굴을 표현하고 그 위에 커다란 원형 장식을 세운 형태다.


사람보다 큰 가면이지만 실제 의례에서는 사람이 착용하고 춤을 출 수 있도록 제작됐다. 가면을 쓴 사람의 몸은 섬유 의상으로 가려졌고, 관람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가면 자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베두 가면에는 남성형과 여성형의 구분도 있다. 남성형은 대체로 초승달처럼 굽은 뿔 모양의 장식을 지니고 있으며, 여성형은 둥근 원반이나 커다란 원형 장식을 머리 위에 얹은 모습이다.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Cleveland Museum of Art)이 소장한 1940년경의 여성형 베두 가면에도 톱니 모양의 커다란 원반이 달려 있다. 미술관은 이 장식이 달을 연상시키며, 달빛 아래에서 움직이는 가면의 모습과 기하학적 무늬가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냈을 것으로 설명한다.


가면의 크기와 장식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특별한 존재감을 만들어내는 요소였다. 사람들은 평소에 볼 수 없는 거대한 형상이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일상과는 다른 신성한 세계를 경험했을 것이다.


마을의 불행을 몰아내고 사람들을 보호하다


베두 가면은 코트디부아르 본두쿠 지역과 가나 접경 지역에 거주해 온 나파나(Nafana) 사람들의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 지역에서 가면은 단순히 얼굴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가면을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와 소통하고, 마을에 닥친 불행을 물리치며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했다.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은 베두 가면을 악한 존재를 몰아내는 '위대한 땅의 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질병이나 불행을 눈에 보이지 않는 힘과 연결해 이해했던 지역의 전통적 신앙이 담긴 표현이다.


해외 박물관 자료에서는 베두 가면이 공동체의 정화와 치유, 출산과 풍요, 사회적 질서 등 여러 역할을 담당했다고 소개한다.


이러한 가면 전통은 시대에 따라 모습과 의미가 달라지기도 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아프리카미술관에 따르면 19세기 이 지역에는 불임이나 질병을 일으킨다고 여겨지는 주술적 위협에 맞서는 거대한 판형 가면의 전통이 존재했다. 당시 일부 가면 결사는 공동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을 처벌하기도 했다.


이후 식민지 통치 당국이 이러한 결사 조직을 금지하면서 기존의 가면 의례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1930년대에는 베두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가면이 등장했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개적인 축제와 의례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가면이 지닌 보호와 정화의 의미는 이어졌지만, 사람들을 위협하고 처벌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하는 성격이 강조된 것이다.


베두 가면의 역사는 전통문화 역시 시대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화하며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픈 아이의 회복과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다


베두 가면이 등장하는 의례에는 마을 사람들의 소박하고 간절한 바람도 담겨 있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아프리카미술관에 따르면 베두 가면은 수확이 끝난 뒤 약 한 달 동안 밤마다 진행되는 의례에 사용됐다. 마을 사람들은 가면을 중심으로 모여 노래하고 춤을 추며 새로운 시기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했다.


특히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여성이나 아픈 자녀를 둔 여성들이 가면 주위를 돌거나 가면에 손을 대는 관습도 있었다. 가면에 치유와 생명을 보호하는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오늘날의 의학적 관점과는 다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출산과 질병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는지를 보여준다. 아이의 건강과 가족의 행복은 개인의 소망이면서 동시에 마을 전체가 함께 기원하는 일이었다.


베두 가면과 관련해서는 흥미로운 전승도 전해진다.


가면 전문 자료기관인 세컨드 페이스 뮤지엄(Second Face Museum)에 따르면 나파나 사람들의 전승에는 소를 닮은 신비로운 존재가 등장한다. 이 존재는 병든 아이를 낫게 한 뒤 숲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베두를 두려움의 대상만이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을 되찾게 해주는 존재로 받아들였다.


가면이 상징하는 힘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앞에서 사람들이 바랐던 것은 분명했다. 아픈 아이가 건강해지고, 가족이 평안하며, 마을에 더 이상 불행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북소리와 춤이 어우러진 마을의 축제


오늘날 박물관에 전시된 베두 가면은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면이 원래 지녔던 의미를 이해하려면 사람들이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던 의례의 모습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클리블랜드미술관에 따르면 베두 가면은 '베두 춤의 달(Bedu dance moon)'로 불리는 기간에 남성형과 여성형이 짝을 이뤄 등장했다. 가면을 착용한 사람들은 밤마다 춤을 추며 마을의 정화와 축복, 치유를 기원했다.


이러한 의례는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축제에서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을 풍자하는 노래도 불렀다는 점이다. 노래를 통해 공동체의 규범을 되새기고 마을 내부의 갈등이나 긴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가면 의례는 단순히 신에게 소원을 비는 행사에 머물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서로의 관계를 살피는 자리이기도 했다.


가면을 만드는 사람과 착용하는 사람, 북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 춤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모두 축제의 일부가 됐다.


거대한 가면은 그 중심에 있었지만, 의례를 완성한 것은 마을 사람들의 참여였다.


박물관의 벽에 걸린 가면만 바라볼 때는 쉽게 알 수 없는 모습이다. 가면은 사람들의 움직임과 음악, 노래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본래의 의미를 드러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진 가면의 역할


베두 가면의 역사는 아프리카의 전통문화가 오랜 시간 같은 모습으로 유지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려준다.


19세기 이 지역의 일부 가면 결사는 주술적 위협으로 여겨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제적인 처벌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식민지 통치 과정에서 이러한 조직이 금지되면서 가면을 중심으로 한 의례의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1930년대 등장한 베두 가면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와 정화 의례를 통해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과거의 가면이 두려움과 처벌의 의미를 강하게 지녔다면, 베두 가면은 치유와 풍요, 공동체의 화합을 기원하는 성격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이 단순히 과거의 모습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과 필요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얻으며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베두 가면은 한 지역의 신앙을 상징하는 조각이면서, 그 지역 사람들이 겪어 온 사회적 변화와 공동체의 역사를 담고 있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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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 김읍자 부관장이 코트디부아르 ‘베두 가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ESG코리아뉴스]

 

거대한 가면이 전하는 작은 소망들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에 전시된 베두 가면은 한국의 관람객들에게 서아프리카의 전통문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처음에는 독특한 형태와 거대한 크기가 눈에 들어오지만, 가면에 담긴 이야기를 알아갈수록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에 질병이 돌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소망, 수확이 풍성하고 가족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베두 가면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사람들은 가면을 통해 보이지 않는 불행을 물리치고자 했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했다. 가면은 공동체의 믿음을 표현하는 상징이면서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매개체였다.


오늘날 우리는 베두 가면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가면이 만들어진 지역에서는 그것이 단순한 감상의 대상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기쁨과 두려움, 희망과 소망이 함께 담긴 문화적 존재였다.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의 베두 가면 앞에서 다시 가면의 크기를 바라본다.


사람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진 가면이지만, 그 안에 담긴 바람은 특별하거나 거창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픈 사람이 건강해지고, 가족이 평안하며, 마을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오래전 서아프리카의 마을에서 북소리와 함께 움직이던 거대한 베두 가면은 오늘날 박물관의 전시물이 됐다. 그러나 그 가면에 담긴 건강과 평안, 공동체의 화합에 대한 소망은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를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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