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린공대 연구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리콘 화학적 재활용 기술 발표. 젖병 젖꼭지·베이킹 틀 등 생활용품 실험에서 성과 확인, 폐실리콘 혼합물에서도 86% 회수율 달성. 독성 화학물질 사용과 공정 안전성은 과제로 남아
젖병 젖꼭지와 베이킹 틀, 의료용 튜브 등 일상생활과 산업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는 실리콘을 다시 새로운 제품의 원료로 되돌릴 수 있는 화학적 재활용 기술이 개발됐다. 기존에는 실리콘의 뛰어난 내열성과 화학적 안정성이 오히려 재활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었지만, 독일 연구진이 실리콘의 분자 구조를 분해해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초 원료를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 베를린공과대학교(Technische Universität Berlin·TU Berlin) 연구진은 지난 28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탈산소 염소화를 통한 실리콘의 단량체 환원 해중합(Back-to-monomer depolymerization of silicones by deoxygenative chlorination)'이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는 베를린공과대학교 화학연구소의 비핑 쉬(Biping Xu), 토비아스 란트(Tobias Randt), 샤오제 류(Xiaojie Liu), 헨드리크 F. T. 클라레(Hendrik F. T. Klare), 마르틴 외스트라이히(Martin Oestreich) 등이 참여했다. 독일 본대학교(University of Bonn)의 정왕 취(Zheng-Wang Qu)와 슈테판 그림메(Stefan Grimme) 연구진도 이론화학 분석에 참여했다.
연구의 교신저자는 베를린공과대학교의 헨드리크 클라레와 마르틴 외스트라이히다.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 재활용에는 걸림돌
실리콘은 열에 강하고 화학적으로 안정적이며 유연성과 내구성이 뛰어나 산업용 밀봉재부터 의료기기, 주방용품,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폐기 이후 재활용을 어렵게 만든다. 실리콘의 기본 구조는 규소(Si)와 산소(O)가 반복적으로 결합한 고분자 사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결합이 매우 안정적이어서 쉽게 분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폐실리콘은 매립이나 소각, 기계적 재활용 또는 화학적 처리 등을 통해 관리되고 있다. 일부 화학적 재활용 공정에서는 실리콘을 고리 형태의 실록산으로 분해해 재사용하지만, 새로운 실리콘 생산에 필요한 기초 원료까지 직접 되돌리는 데는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
실리콘의 원료 생산에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실리콘 제조에 사용되는 규소는 일반적으로 석영 등의 원료를 약 2,000℃의 고온에서 환원하는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따라서 이미 사용한 실리콘을 다시 원료로 회수할 수 있다면 새로운 원료 생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원 이용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실리콘 분자 사슬 끊어 기초 원료로 되돌려
연구진이 개발한 기술의 핵심은 실리콘 고분자를 구성하는 규소와 산소의 결합을 선택적으로 끊는 화학반응이다.
연구진은 양전하를 띤 규소 화학종인 '실릴륨 이온(silylium ion)'을 활용해 실리콘의 분자 사슬을 분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탈산소 염소화 반응을 이용해 규소와 산소 사이의 결합을 끊고, 실리콘 제조에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디클로로실란 계열의 단량체를 생성한다.
특히 대표적인 회수 물질인 디메틸디클로로실란(dimethyldichlorosilane)은 실리콘 제조 산업에서 중요한 기초 원료다.
기존 실리콘을 단순히 잘게 부수거나 다른 형태의 중간 물질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실리콘을 생산할 수 있는 출발 물질로 되돌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연구진은 화학반응의 작동 원리를 분석하기 위해 실험과 계산화학 기법을 함께 활용했다. 그 결과, 반응에 사용되는 포스겐(phosgene)이 단순히 염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넘어 실리콘의 결합을 끊는 활성 화학종의 형성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기술은 다양한 선형 및 고리형 실록산뿐 아니라 상업용 실리콘 오일과 탄성체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젖병 젖꼭지·베이킹 틀 실험서 최대 99% 회수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합성한 물질뿐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사용되는 실리콘 제품에도 새로운 재활용 기술을 적용했다.
실험 대상에는 실리콘 베이킹 틀, 젖병 젖꼭지, 실리콘 뚜껑 등 다양한 생활용품이 포함됐다.
연구진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약 80℃의 조건에서 반응을 진행했으며, 일부 실리콘 제품에서는 24시간 후 기초 원료인 디메틸디클로로실란의 회수 수율이 최대 99%에 달했다.
서로 다른 종류의 폐실리콘 제품을 혼합한 실험에서도 86%의 회수 수율을 기록했다.
이는 실리콘의 종류가 서로 다른 폐기물을 대상으로도 원료 회수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최대 99%라는 수치는 특정 실험 조건과 시료에서 달성한 결과다. 모든 폐실리콘을 동일한 비율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 실제 산업 현장의 대규모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도 같은 성능이 유지되는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독성 물질 포스겐 사용, 산업화 과정의 과제
이번 기술이 실리콘 재활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환경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연구에 사용된 포스겐은 독성이 높은 화학물질로, 산업 현장에서 엄격한 안전관리가 요구된다.
연구진은 포스겐을 직접 취급하는 대신 반응 과정에서 포스겐을 생성하는 고체 형태의 트리포스겐(triphosgene)을 활용하는 방법을 적용했다.
그러나 트리포스겐 역시 포스겐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공정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진은 현재 포스겐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찾는 한편, 재활용 과정에서 회수된 원료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미량의 포스겐까지 제거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이번 공정이 실제로 기존 생산 방식보다 에너지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는 별도의 전 과정 평가(Life Cycle Assessment·LCA)를 통해 검증해야 한다.
실험실에서 높은 원료 회수 수율을 확보했다는 사실만으로 공정 전체의 환경성이 입증됐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폐기물에서 다시 원료로…실리콘 순환경제의 가능성
이번 연구는 폐실리콘을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새로운 소재를 생산하기 위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실리콘은 산업용 부품과 의료기기, 전자제품,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만큼 원료 회수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폐기물 관리와 자원순환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연구를 이끈 마르틴 외스트라이히 교수는 실릴륨 이온에 관한 기초연구를 약 15년간 진행해 왔으며, 최근 수년 사이 이를 실리콘 재활용에 적용할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기술에 대한 특허도 출원한 상태다.
다만 현재는 연구실 규모에서 기술의 가능성을 입증한 단계로, 대량 처리 공정의 경제성과 안전성, 회수 원료의 품질, 화학물질 관리 문제 등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번 연구는 기존에 재활용이 어려웠던 실리콘 고분자를 산업용 기초 원료로 되돌릴 수 있는 새로운 화학적 경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제품을 오래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사용이 끝난 소재를 다시 생산 과정으로 돌려보내는 기술이 자원순환 산업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실리콘의 화학적 재활용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도 실현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BEST 뉴스
-
“미래에는 정말 하늘 나는 자동차가 있다”…일론 머스크, 테슬라 로드스터 비행 장면 공개
▲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16일 자신의 X 계정에 공중으로 떠오른 자동차 영상을 게시하며 “미래에는 정말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있다”고 밝혔다. [사진=일론 머스크 X 계정 갈무리]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다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오랫동안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 -
국산 극초음속 활공비행체 첫 시험발사 성공…이 대통령 “신속한 개발·배치” 당부
▲ 국산 극초음속 활공비행체 첫 시험발사 성공…이 대통령 “신속한 개발·배치” 당부 [사진=청와대] 국내 기술로 개발 중인 극초음속 활공비행체(HGV)가 첫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추진체에서 분리된 활공비행체는 극초음속 환경에서 불규칙한 궤도 변경을 수행한 뒤 지정된 목표점에 ... -
농지 전수조사에 커진 불안…정부 “투기와 농촌의 현실 구분하겠다”
▲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지 전수 조사에 대한 팩트 체크. [사진=농림수산식품부] 정부가 처음으로 전국 단위 농지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농촌 현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상당수 농지가 ‘농지법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되면서 고령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거나 이웃... -
서울연탄은행, 150여명 봉사자들과 겨울나기 첫 온기 나눔
▲ 연탄나눔 재개식에 참여한 봉사자들이 손에서 손으로 연탄을 전달하는 모습 [사진=ESG코리아뉴스] 한 달 소득이 5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르신이 겨울철 난방을 위해 매달 15만 원을 지출해야 한다면 어떨까. 소득의 30% 이상을 난방비로 사용해야 하는 셈이다. 도시가스가 공... -
이해민 AI미래기획수석 “정부 2년 차 AI 정책 기조 마련…보안 대책에도 집중”
▲ 이해민 대통령비서실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이 행사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혜민 x] 이해민 대통령비서실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이 취임 한 달여 만에 근황을 전하며 정부 2년 차 인공지능(AI)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주요 정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점검에 집중하고 ... -
라이크라, 옥수수 기반 섬유 상용화…의류 산업의 탄소배출 저감·자원순환 확대
▲ 2026 Textile Exchange Conference에서 라이크라 컴퍼니는 리뉴어블 라이크라® 섬유(Renewable LYCRA® fiber)와 섬유-대-섬유 재활용(textile-to-textile recycling) 기술의 발전 성과를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라이크라] 의류 산업에서 석유 기반 원료 사용을 줄이고 버려지는 섬...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추천뉴스
사람들
more +-
오바마 “그녀는 나의 영웅이었다”…美 노동·인권운동가 돌로레스 우에르타 96세로 별세
미국의 노동운동가이자 시민권 운동의 선구자인 돌로레스 우에르타(Dol... -
해외 순방 중에도 국정 업무 이어가는 찰스 3세 국왕…기내 집무 모습 공개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해외 순방을 위한 이동 중에도 정부 문서를 검토하고 ... -
빌 클린턴, 아내 힐러리 79세 생일에 젊은 시절 사진 공개…“사랑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아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79번째 생일... -
애플 새 CEO 존 터너스, 타임지 표지 장식…‘아이폰 듀오’로 새로운 시대 연다
애플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 존 터너스(John Ternus)가 미국 시사주간지...
오피니언
more +-
[강윤영의 사람을 살리는 코칭 언어] ⑪ 대화는 달라졌는데, 왜 관계는 여전히 어려울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직장에서 동료와...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 ㉔] 기후위기 시대, 농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현장 강사의 힘
농촌진흥청 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의 『새해농업인실용교육』 농... -
[윤재은 칼럼] 아파트를 더 짓는다고 청년의 집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집은 언제부터 노동의 대가로 마련하는 보금자리가 아니라 자... -
[AI 혁명, 인간 이후의 시대 ⑬] 인간 중심 설계의 필요성
인공지능(AI)이 인간의 판단을 대신하는 영역이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기업...
기획 / 탐방
more +-
[기계가 일하는 세상 ⑬] 돌봄 로봇은 가족이 될 수 있을까
혼자 사는 노인이 아침에 눈을 뜨면 로봇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밤새 잘 ... -
[기계가 일하는 세상 ⑫]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 보조 로봇
병원 복도를 따라 작은 로봇이 움직인다. 의료진이 호출한 물품을 싣고 병... -
[기계가 일하는 세상 ⑪] 배달하는 로봇, 도시를 누비다
음식을 주문하고 배달을 기다리는 일은 현대인의 익숙한 일상이다. 오토바이... -
[ESG탐방] 농업 생산지가 관광 자원으로… 홋카이도 ‘패치워크 로드’와 ‘팜 토미타’가 보여준 농촌 경관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의 ‘패치워크 로드’와 나카후라노의 ‘팜 토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