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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때 그린 화학 실험… 노벨상 수상자의 오래된 노트가 보여준 호기심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09.07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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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상 공식 X, 2008년 화학상 수상자 로저 첸의 어린 시절 기록 소개
  • 원소와 광물 정리하고 실험 과정 직접 그리며 어린 시절 ‘색’에 대한 관심 연구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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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형광단백질(GFP)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미국의 화학자 로저 첸(Roger Y. Tsien)의 어린시절 스케치 [사진=The Nobel Prize X]

 

시험관과 플라스크, 화학식과 실험 과정이 여러 색의 펜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언뜻 과학자의 연구 노트처럼 보이지만, 이 기록을 남긴 사람은 당시 여덟 살가량의 어린아이였다. 훗날 녹색형광단백질(GFP)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미국의 화학자 로저 첸(Roger Y. Tsien)이다.


노벨상(The Nobel Prize)은 6일 오후 공식 X 계정을 통해 첸이 어린 시절 사용했던 화학 노트를 공개했다. 노벨상 측은 기본 원소와 광물을 정리한 목록에서 당시 첸의 화학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며, 화학책에 나온 실험 그림도 직접 노트에 옮겨 그렸다고 소개했다.


공개된 노트에는 시험관과 여과장치 등 다양한 실험 도구와 함께 화학반응 과정이 손으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요오드와 이산화황, 황화수소, 규산 등과 관련된 화학식과 실험 과정도 여러 페이지에 걸쳐 기록돼 있다.


노벨상 공식 자료에 따르면 첸은 약 8세 때 책에 나온 화학 실험 그림을 보며 이를 노트에 옮겨 그렸다. 이 노트는 현재 노벨상 박물관(Nobel Prize Museum)이 소장하고 있다.


어린 시절 첸이 화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과정은 그가 노벨상 수상 이후 남긴 자서전에도 자세히 소개돼 있다. 첸은 초등학생 때 부모로부터 화학 실험 세트를 선물받았다. 처음에는 정해진 실험이 단순해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학교 도서관에서 다양한 실험을 소개한 화학책을 발견하면서 화학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책에서 본 실험은 노트 속 그림에만 머물지 않았다. 첸은 집 지하실에서 수소와 산소를 만들고 암모니아의 성질을 살펴보는 등 직접 여러 실험을 해봤다고 회고했다. 당시에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는 훗날 일부 실험이 상당히 위험한 것이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그가 특히 흥미를 느꼈던 것은 화학반응에서 나타나는 ‘색’이었다. 금속염이 반응하면서 다양한 색을 만들어내는 모습이나 과망간산칼륨 용액의 색이 변하는 과정 등에 관심을 가졌다. 첸은 훗날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아름다운 색에 대한 관심이 오랫동안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어린 시절의 이러한 관심은 이후 그의 연구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첸은 세포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빛과 색으로 관찰할 수 있는 형광물질 연구에 몰두했고, 녹색형광단백질(Green Fluorescent Protein·GFP)을 생명과학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양한 색을 내는 형광단백질 개발에도 기여했다.


GFP는 해파리 Aequorea victoria에서 발견된 단백질로 특정한 빛을 받으면 녹색 형광을 낸다. 연구자들은 GFP를 특정 단백질이나 유전자와 연결해 살아 있는 세포 안에서 단백질이 어디에 존재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할 수 있다.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던 세포 내부의 생명현상을 추적할 수 있게 되면서 GFP는 현대 생명과학의 중요한 연구 도구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연구 성과로 첸은 2008년 시모무라 오사무(Osamu Shimomura), 마틴 챌피(Martin Chalfie)와 함께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수상 업적은 ‘녹색형광단백질 GFP의 발견과 개발’이었다.


1952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첸은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UC San Diego) 교수와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형광단백질과 생물학적 이미징 분야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2016년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 소개된 노트는 노벨상 수상자의 완성된 연구 결과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 화학이라는 세계를 처음 알아가던 어린 시절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책에 나온 실험을 따라 그리고 원소와 광물을 하나씩 적어 내려간 흔적에는 당시 첸이 무엇을 궁금해하고 관찰했는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어린 시절 마음을 사로잡았던 화학반응의 ‘색’이 훗날 빛과 색을 이용해 살아 있는 세포를 들여다보는 연구로 이어졌다는 점도 흥미롭다. 여덟 살 소년이 남긴 오래된 화학 노트는 작은 호기심이 오랜 탐구를 거쳐 하나의 과학적 성취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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