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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⑯] 농지가 사라지면 식량안보도 무너진다

  • 유연정 기자
  • 입력 2026.09.1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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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지는 단순한 땅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자산이다
  • 개발할 땅과 지켜야 할 땅을 구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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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 농지가 사라지면 식량안보도 무너진다 [사진=Ai, 남재철]

 

 식량안보가 국가안보의 핵심 의제로 부상하면서 농지는 더 이상 단순한 토지나 생산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위한 전략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곡물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제분쟁, 기후재난, 수출국의 수출제한 등이 발생하면 식량 공급망이 쉽게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농지를 산업·주택 개발을 위한 가용 토지로만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식량안보 인프라’로 관리하는 국가적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국가 차원의 ‘최저 식량생산 농지’ 개념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다만 단순히 농지 전체 면적의 하한선을 정하는 방식보다는 쌀·밀·콩·옥수수 등 주요 식량작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우량농지와 집단화된 농업생산기반을 중심으로 ‘국가 식량안보 농지’ 또는 ‘필수 농지’의 최소 보전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농식품부도 이미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방안에서 농지 보전목표 설정과 중장기 농지보전계획 수립을 추진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면적’보다 ‘생산능력’이다. 1ha의 비옥하고 관개시설이 갖춰진 논과 산간지역의 생산성이 낮은 농지를 단순히 같은 1ha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토양의 비옥도, 수리시설, 기후재해 위험, 작물 생산성 등을 종합해 국가 식량생산 능력 기준으로 농지를 평가하고 관리해야 한다.

 

둘째, 농지 보전과 첨단산업 개발은 ‘대립’이 아니라 공간계획을 통해 조화시켜야 한다.

 

반도체·배터리·AI 등 국가전략산업의 입지 확보도 중요하지만, 한번 전용된 농지는 다시 농지로 복원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가산업단지나 대규모 개발사업은 우량농지와 집단화된 농업진흥지역을 최대한 피하고, 유휴 산업용지·기존 개발지역·저생산성 토지 등을 우선 활용하는 ‘농지 회피 원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농지를 불가피하게 전용해야 한다면 단순히 금전적인 농지보전부담금을 납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일 지역 또는 국가 차원에서 동등 이상의 생산능력을 가진 농지를 확보하는 ‘농지 총량 보전’ 또는 ‘생산능력 대체’ 원칙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도 농지전용에 따른 농지보전부담금 제도가 있으며, 농업진흥지역은 일반 농지보다 높은 부담금이 적용된다. 그러나 앞으로는 단순한 금전적 부담보다 실질적인 식량생산 능력의 보전으로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셋째, 농지의 ‘양’뿐 아니라 토질·수자원·생태환경까지 함께 관리해야 한다.

 

기후변화 시대에는 농지가 있어도 가뭄과 홍수, 폭염, 염해, 토양유실 등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식량안보에 기여할 수 없다. 따라서 농지관리 정책을 농지 면적 관리에서 ‘농업생산 기반 관리’로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국 농지를 대상으로 토양의 비옥도, 유기물 함량, 염류화, 침수·가뭄 위험, 관개 가능성, 배수시설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미래 생산성까지 평가하는 ‘국가 농지 생산능력 지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농지전용 심사와 국토계획, 농업재해 대응, 식량비축 정책과 연계한다면 훨씬 과학적인 농지 관리가 가능할 것이다.

 

넷째, 농지를 지키는 사람에 대한 경제적 보상도 강화해야 한다.

 

농지보전은 규제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 농업인이 농지를 계속 경작할 수 있도록 전략작물직불금, 공익직불제 등을 확대하고, 식량안보에 중요한 밀·콩·옥수수 등 전략작물 생산농가에 대해 ‘식량안보 유지에 대한 공익적 보상’을 강화해야 한다. 농지가 개발되는 경제적 가치와 농업인이 농지를 보전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얻는 식량안보·환경·생태적 가치를 비교해 보상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다섯째, 농지의 새로운 활용도 ‘농업 생산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확대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영농형 태양광이다. 2026년 6월 국회에서 영농형 태양광 관련 법률이 제정됐으며, 식량안보와 난개발 방지, 농업인·농촌 주민의 소득 증대를 함께 고려하는 방향이 제시됐다. 이처럼 농업 생산을 유지하면서 농가소득을 높일 수 있는 활용방식은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결국 “농지를 무조건 개발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식량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농지는 국가가 책임지고 지키고, 불가피한 개발은 생산능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소화하자”는 원칙이 필요하다.

 

핵심적으로 정리하면, 농지는 한번 훼손하면 되돌리기 어렵지만, 식량안보 위기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농지 면적을 단순히 숫자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농업생산 능력’을 국가가 전략적으로 보전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농지보전–식량생산–농업용수–기후재해 대응–농업인 소득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국가 식량안보 차원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농지 보호를 국토개발 정책의 하위 영역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안보와 경제안보를 구성하는 핵심 정책으로 격상해야 할 시점이다.

 

해외에서도 토지와 식량안보를 연계하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의 국가식량안보정책은 토지와 수자원을 식량생산의 핵심 기반으로 보고 있으며, 논 보전을 위한 재정 인센티브까지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① 국가 필수 식량생산 농지 최소보전 목표 설정, ② 우량농지·집단농지의 특별관리, ③ 농지전용 시 생산능력 대체 원칙 도입, ④ 토양·수자원·생태환경을 포함한 농지 등급화, ⑤ 농지 보전에 대한 농업인 공익보상 강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기후위기와 국제분쟁 시대에 대한민국의 식량안보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농지정책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ㅣ 남재철 (서울대학교 특임교수, 前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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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장을 역임하며 국가 기후 관측과 재해 대응 정책을 총괄했다. 국립기상과학원장, 수도권기상청장, 기상청 차장 등을 거치며 기상·기후 분야 전반에서 정책과 연구를 수행해 왔다. 세계기상기구(WMO) 집행이사 및 대기과학위원회 부의장을 맡아 국제 기후 협력에도 참여했다.   

 

마르쿠스 Who’s Who 과학기술인명사전에 등재된 바 있으며,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6번째 대멸종 시그널, 식량 전쟁』의 저자이며, 현재 기후변화 대응, 기상재해, 식량안보 분야에서 연구와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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