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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 ㉕] 기후피해에 기업의 책임을 묻다_안데스의 빙하에서 한국 농민의 밭까지

  • 남재철
  • 입력 2026.11.0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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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위기 시대, 기업의 책임과 농민의 생존권
  • 빙하는 녹고 농민은 무너진다, 기후위기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빙하와 농민의 기후위기.png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 기후피해에 기업의 책임을 묻다 [사진=Ai, 남재철]

  

기후위기는 모두의 문제지만, 피해와 책임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환경 문제가 아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배출된 온실가스가 안데스산맥의 빙하를 녹이고, 그 빙하호가 페루의 한 마을을 위협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으로 농작물이 피해를 입고 농민들의 생계가 흔들리고 있다.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한 주체와 피해를 감당하는 주체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기후위기는 새로운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제기한다. 

 

오는 11월 3일 기후솔루션이 주관하는 간담회 '기후피해에 기업의 책임을 묻다–안데스에서 함양까지'는 바로 이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페루의 리우야(Lliuya) 씨가 독일 에너지기업 RWE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소송과 한국 농업인들이 한국전력을 상대로 제기한 기후소송을 함께 살펴보며, 기후피해의 과학적 입증과 기업의 책임, 그리고 기후정의의 실현 가능성을 모색한다. 

 

안데스의 빙하가 녹고, 농민의 삶이 흔들린다 

 

 페루 안데스산맥의 우아라스(Huaraz)에 위치한 팔카코차(Palcacocha) 빙하호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후퇴하면서 빙하호의 규모가 커지고 범람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1941년에도 빙하호 범람으로 우아라스 지역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곳에 거주하는 리우야 씨는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기후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의 거대 에너지기업 RWE에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2025년 5월 독일 함 고등법원은 리우야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이 판결을 기업의 기후책임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법원은 원고의 주택에 중대한 홍수 위험이 임박했다는 점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특정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과 국경을 넘어 발생한 피해 사이의 법적 책임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중요한 과제를 남긴 것이다. 

 

이번 간담회에는 소송 당사자인 리우야 씨와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해 실제 기후피해 경험과 소송의 의미를 공유한다. 특히 페루 농민과 한국 농업인 원고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대담은 기후위기가 특정 국가나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한국 농업인들의 기후소송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는 농작물의 생육과 수확량,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벼 출수기의 고온은 수정률과 쌀 수량을 떨어뜨리고, 수확기의 집중호우는 도복과 수발아를 일으킨다. 과수농가에서는 낙과와 열과, 착색과 당도 저하 등으로 농가소득이 감소한다. 농민들이 감당해야 할 피해는 생산량 감소에 그치지 않고 농산물 가격과 소비자 밥상물가까지 연결된다. 

 

귀인과학, 기후피해와 기업 책임을 연결하는 열쇠 

 

이번 간담회에서 중요한 논점 중 하나는 귀인과학(Attribution Science)이다. 귀인과학은 폭염이나 집중호우, 가뭄 등 특정 기후재난이 발생했을 때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가 그 발생 가능성과 강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연구 분야다. 

 

기상관측과 위성·레이더 자료를 분석하고, 현재의 온실가스 농도를 반영한 기후모델과 산업화 이전의 기후조건을 가정한 모델을 비교한다. 이를 통해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특정 재난의 발생 확률과 강도를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농업 피해를 입증하는 과정은 더욱 종합적이어야 한다. 피해 지역의 기온과 강수량, 일조시간, 토양수분 등 기상자료뿐 아니라 농가별 재배면적과 생산량, 농산물 품질, 소득 감소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작물생육 모델과 통계분석을 결합하고 품종, 재배기술, 병해충 등 다른 요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다만 기후변화가 특정 재난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과 특정 기업의 배출이 개별 농가의 피해를 얼마나 초래했는지를 입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전 세계 수많은 국가와 기업이 누적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별 역사적 배출량과 누적 배출 기여도, 기후변화와 지역별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단계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과학적 증거는 기업의 책임을 합리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기업에 모든 기후피해를 무조건 부담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기후위기에 기여한 정도에 상응하는 책임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ESG 경영, 온실가스 감축을 넘어 기후피해 책임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은 기업의 ESG 경영에도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기업의 기후 대응은 주로 탄소배출량 감축과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였는가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배출이 사회와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 피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특히 농업은 기후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산업이다. 농민들은 차광시설과 관개시설, 배수시설을 설치하고 새로운 품종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적응 노력을 하고 있지만, 반복되는 극한기상 현상과 막대한 시설 투자비를 개별 농가의 노력만으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농업 피해는 농민의 소득 감소를 넘어 국내 농산물 공급과 식량안보, 소비자 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을 강화하고 기후피해에 대한 책임 있는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농업재해 예방과 기후적응을 위한 공공투자를 확대하고, 과학계는 기후변화와 실제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객관적으로 밝혀야 한다. 농업인에 대한 기후정보 제공과 농업재해보험, 농업용수 관리, 기후적응 품종 개발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이번 간담회의 의미는 안데스의 빙하호 위험과 우리 농촌의 농업 피해를 하나의 문제로 연결한다는 데 있다. 기후위기는 국경을 넘고, 온실가스는 배출 장소를 가리지 않지만, 그 피해는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적은 취약한 지역과 사람들에게 먼저 나타난다. 

 

기후위기의 피해를 입증하는 과학은 과거의 재난을 설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피해를 예방하고, 책임을 공정하게 나누며, 더 안전한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 

 

안데스에서 함양까지, 기후피해에 기업의 책임을 묻는 일은 기업을 처벌하기 위한 논쟁을 넘어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사회적 책임과 정의를 세우는 과정이다. 기후변화의 비용을 더 이상 피해자와 농민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ESG 경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우리가 이번 간담회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다.

 

 

덧붙이는 글 ㅣ 남재철 (서울대학교 특임교수, 前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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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장을 역임하며 국가 기후 관측과 재해 대응 정책을 총괄했다. 국립기상과학원장, 수도권기상청장, 기상청 차장 등을 거치며 기상·기후 분야 전반에서 정책과 연구를 수행해 왔다. 세계기상기구(WMO) 집행이사 및 대기과학위원회 부의장을 맡아 국제 기후 협력에도 참여했다.    


마르쿠스 Who’s Who 과학기술인명사전에 등재된 바 있으며,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6번째 대멸종 시그널, 식량 전쟁』의 저자이며, 현재 기후변화 대응, 기상재해, 식량안보 분야에서 연구와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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