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최초의 해저 레스토랑, 수심 11m에 설치된 대형 통유리 너머로 북해의 수중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자 해양생태 연구 공간으로서 건축과 미식, 자연과 과학이 어우러진 특별한 장소다.
[편집자 주] 세계 곳곳에는 아직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공간들이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카페부터 독특한 콘셉트와 특별한 미식 경험을 선사하는 레스토랑까지.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을 지닌 공간들은 그 지역의 문화와 감성을 담아내며 여행에 색다른 즐거움을 더한다. ESG코리아뉴스의 기획 연재 ‘히든 플레이스(Hidden Place)’는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매력적인 카페와 레스토랑을 찾아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특별한 가치를 소개한다.
노르웨이 최남단 린데스네스(Lindesnes)의 거친 해안가에는 바닷속으로 기울어진 독특한 건축물이 있다. 마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육지에서 미끄러져 바다에 잠긴 듯한 모습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수면 아래 약 5m 깊이에서 특별한 식사가 시작된다.
유럽 최초의 해저 레스토랑으로 알려진 ‘언더(Under)’이다. 차가운 북해의 바닷속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이곳은 단순히 전망이 아름다운 레스토랑을 넘어 건축과 미식, 해양생태계가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는 특별한 장소이다.
ESG코리아뉴스 여행팀은 노르웨이의 자연환경과 독창적인 건축, 지역 식문화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언더를 열다섯 번째 ‘히든 플레이스’로 선정했다.
언더는 2019년 3월 문을 열었다. 개장 당시 로이터통신은 이곳을 유럽 최초의 해저 레스토랑으로 소개하며, 바닷속에서 식사하는 독특한 경험을 위해 개장 전부터 7천 명 이상이 예약했다고 보도했다.
레스토랑의 이름인 ‘Under’는 노르웨이어로 ‘아래’라는 뜻과 함께 ‘경이로움’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바다 아래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다는 공간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셈이다.
건축 설계는 노르웨이의 세계적인 건축사무소 스뇌헤타(Snøhetta)가 맡았다.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와 뉴욕 9·11 메모리얼 뮤지엄 설계에 참여한 이 건축사무소는 언더를 단순한 식당이 아닌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구상했다.
전체 길이 약 34m의 건축물은 해안에서 바다를 향해 비스듬히 뻗어 있으며, 건물의 한쪽 끝은 해저에 닿아 있다. 두꺼운 콘크리트 외벽은 북해의 거친 파도와 수압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해저에 자리한 다이닝룸이다. 가로 11m, 높이 3.4m에 이르는 대형 파노라마 창을 통해 바닷속 풍경이 펼쳐진다. 창밖으로는 물고기와 해조류가 움직이고, 계절과 날씨에 따라 바닷물의 색과 빛이 달라진다.
이곳에서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식사하는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풍경이 된다. 운이 좋다면 창밖을 지나가는 해양생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도 있다.
실내 분위기는 차갑고 거친 외부 환경과 대비된다. 참나무를 활용한 따뜻한 인테리어와 부드러운 조명, 섬세한 직물 마감이 차분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입구에서 해저 다이닝룸으로 내려가는 동안 천장의 색채도 점차 변화해 마치 수면 아래로 천천히 잠수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언더의 또 다른 매력은 노르웨이 남부의 자연을 담아낸 미식이다.
현재 주방을 이끄는 셰프는 베른트 세트레(Bernt Sætre)다. 언더는 2023년 말 잠시 운영을 중단했다가 2024년 4월 새로운 셰프와 콘셉트로 다시 문을 열었다.
레스토랑은 북해에서 얻는 해산물과 노르웨이 남부 지역의 제철 식재료를 중심으로 테이스팅 메뉴를 선보인다. 식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지역의 식문화와 계절적 특성을 요리에 반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쉐린 가이드는 언더의 요리에 대해 신선한 해산물을 과도하게 가공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풍미를 살리는 접근법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랑구스틴과 같은 해산물을 활용한 섬세한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언더는 2020년 처음 미쉐린 1스타를 획득했으며, 이후 새로운 운영 체제로 전환했다. 현재도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돼 있는 레스토랑이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음식과 건축에만 있지 않다. 언더는 해양생태계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공간으로도 설계됐다.
스뇌헤타에 따르면 건축물 외벽의 거친 콘크리트 표면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조류와 해양생물이 부착할 수 있는 인공 암초 역할을 하도록 계획됐다. 자연과 분리된 구조물이 아니라 해양환경의 일부로 자리 잡도록 고려한 것이다.
또한 건물 안팎에 설치된 카메라와 관측 장비를 통해 주변 해양생물의 행동과 개체군 변화를 연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관측 자료는 해양생태계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장기적으로 해양자원 관리에 활용할 가능성을 지닌다.
식재료를 선택하는 방식에도 지역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철학이 반영돼 있다. 세트레 셰프는 미쉐린 가이드와의 인터뷰에서 멀리서 운송되는 유기농 식재료보다 노르웨이 남부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며, 자연에서 재료를 채집할 때도 생물종의 보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역의 생산자와 자연환경을 존중하면서 미식의 가치를 만들어가려는 접근이다.
물론 이러한 설계와 운영 철학만으로 레스토랑의 환경적 성과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언더는 바다를 바라보는 공간을 넘어 해양생태계와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계 곳곳에는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하는 레스토랑이 많다. 그러나 언더는 그 전망 속으로 직접 들어간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차가운 북해의 바닷속, 거대한 창 너머로 펼쳐지는 수중 풍경을 바라보며 노르웨이의 식재료로 완성한 요리를 맛보는 경험. 언더는 한 끼의 식사가 하나의 여행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바다를 정복하거나 단순히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언더가 선사하는 경이로움은 식사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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