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X 계정 ‘Next Science’, 과숙 바나나의 항암 성분과 정상세포 보호 가능성 소개
- 2009년 일본 연구는 생쥐의 면역반응 관찰, 사람의 암 예방·치료 효과 입증한 연구와는 달라
바나나 껍질에 검은 반점이 많아질수록 암세포를 공격하는 능력이 강해진다는 주장이 소셜미디어에서 확산하고 있다. 충분히 익은 바나나에 암세포를 공격하는 천연 성분이 있으며, 정상세포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임상적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과학 관련 정보를 소개하는 X 계정 ‘Next Science’는 지난 22일 오후 검게 익은 바나나의 잠재적인 항암 효과를 소개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게시물은 과숙 바나나에 포함된 천연 화합물이 실험실 연구에서 암세포를 공격하는 능력을 보였으며, 건강한 세포는 대부분 손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직 초기 연구 단계로 암 치료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먹는 식품에 알려지지 않은 효능이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바나나의 항암 효과, 실제 연구에서는 무엇을 확인했나
Next Science는 게시물의 근거로 시미즈(Shimizu) 등의 바나나 추출물 관련 연구를 제시했다. 그러나 게시물에 적힌 서지정보만으로는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직접 비교했다는 실험의 원문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와 유사한 주장의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 연구는 2009년 일본 연구진이 학술지 'Food Science and Technology Research'에 발표한 바나나의 품종과 숙성 정도에 따른 생물학적 반응 연구다.
연구진은 바나나의 품종과 숙성 정도에 따라 생체 내 면역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봤다. 실험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아니라 생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진은 바나나를 가공한 시료를 생쥐의 복강에 주입한 뒤 면역반응과 종양괴사인자(TNF) 등의 생성 변화를 관찰했다.
일부 품종에서는 숙성 정도에 따라 면역반응의 차이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 결과가 검게 익은 바나나를 먹으면 암세포가 제거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험에서는 바나나를 먹었을 때의 효과를 검증하지 않았으며, 사람에게서 암 예방이나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종양괴사인자(TNF)는 바나나에 들어 있을까
과숙 바나나의 항암 효과를 설명하는 온라인 게시물에서는 종종 '종양괴사인자(Tumor Necrosis Factor·TNF)'라는 물질이 등장한다.
TNF는 우리 몸의 면역세포 등이 생성하는 신호 단백질로, 염증반응과 면역조절에 관여한다. 일부 종양세포의 사멸과 관련된 작용도 있지만, 그 기능은 복잡하며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생물학적 반응을 일으킨다.
문제는 일부 온라인 정보가 연구에서 관찰된 TNF의 생성을 바나나 자체에 TNF가 들어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는 팩트체크 매체 아프리카체크(Africa Check)에 바나나에 TNF가 포함돼 있다는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생쥐 실험에서 관찰된 TNF는 바나나에 들어 있던 성분이 아니라 동물의 면역반응 과정에서 생성된 물질이라는 것이다.
국제 팩트체크 네트워크와 연계된 AFP의 2022년 검증에서도 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당시 전문가들은 해당 연구가 과숙 바나나 섭취를 권장하거나 암 예방 효과를 입증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실험실에서 나타난 효과와 사람에게 나타나는 효과는 다르다
식품에 포함된 특정 성분이 실험실에서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세포 사멸에 영향을 미치는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시험관이나 동물실험에서 나타난 결과가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실험실에서는 특정 성분을 높은 농도로 세포에 직접 노출할 수 있지만, 사람이 식품을 섭취하면 소화와 흡수, 대사 과정을 거친다. 실제로 몸속에 도달하는 성분의 양과 작용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도 특정 식품 성분이 실험실이나 동물모델에서 항암 작용을 보이더라도 사람에게서 암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특히 Next Science가 언급한 '암세포는 공격하면서 정상세포는 대부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주장은 구체적인 실험 조건과 원문 자료가 확인돼야 평가할 수 있다. 현재 제시된 자료만으로는 어떤 성분이 어떤 종류의 암세포에 작용했는지, 정상세포와 비교한 결과가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바나나가 익으면서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
바나나가 익으면 껍질의 색뿐 아니라 내부 성분도 변한다.
숙성 과정에서 전분의 일부가 당으로 분해되면서 단맛이 강해지고 과육은 부드러워진다. 껍질에는 갈색 또는 검은색 반점이 나타날 수 있으며, 숙성 정도에 따라 일부 항산화 성분과 생리활성 물질의 함량이나 활성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검은 반점이 많을수록 암 예방 효과가 커진다고 볼 수는 없다. 식품의 숙성에 따른 성분 변화와 인체에서의 질병 예방 효과는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나나는 식이섬유와 칼륨 등을 공급하는 과일로, 균형 잡힌 식단의 일부로 섭취할 수 있다. 그러나 검게 익었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항암 효과를 기대할 근거는 부족하다.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특정 식품이나 식이요법이 암을 치료하거나 재발을 막는다는 주장이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암 예방과 건강관리는 개별 식품 하나보다 전반적인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연구가 새로운 건강정보로 확산되는 이유
과숙 바나나의 항암 효과에 관한 주장은 최근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체크는 2019년 검증 기사에서 검은 반점이 생긴 바나나에 TNF가 들어 있어 암 위험을 낮춘다는 주장이 온라인에 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AFP도 2022년 비슷한 내용을 검증하며 일본의 2009년 연구 결과가 잘못 해석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Next Science 게시물은 기존 주장과 완전히 같은 내용은 아니다. 특히 암세포에 대한 선택적 작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실험 자료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식품의 성분과 생리활성에 관한 기초연구는 새로운 의약품이나 건강 관련 연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기초연구에서 가능성이 관찰됐다는 사실과 실제로 사람의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결론 사이에는 상당한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
검게 익은 바나나가 암세포를 공격한다는 주장은 현재 확인된 연구만으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 바나나의 숙성에 따른 성분 변화는 연구할 가치가 있지만, 이를 곧바로 항암 효과로 연결하는 해석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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