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건에서 포착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순간들… 9월 2~20일 서울숲서 개최
- 도시와 자연, 여행의 순간에 기억과 감정 더해…사진과 짧은 문장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크기변환]KakaoTalk_20260902_100527679_01.jpg](/data/editor/2609/20260902103623_icwdital.jpg)
가수와 배우로 활동해온 정진운이 사진작가로 관객을 만난다. 정진운의 사진전 〈당신이 좋아했던 영화의 첫 장면은?〉이 9월 2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성동구 파사드 서울숲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정진운 작가가 미국 오리건을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들이 소개된다. 도시와 숲, 바다와 길, 건물과 사람 등 여행 중 마주한 다양한 풍경을 담았지만, 작품의 특징은 장소 자체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의 사진은 마치 영화의 첫 장면처럼 보인다. 한 장의 사진 안에서 이야기를 완결하기보다, 그 장면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는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상상하게 한다.
안개가 내려앉은 풍경과 비에 젖은 거리, 사람들이 오가는 계단, 숲속의 집 등 사진 속 장면은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이라기보다 여행 중 스쳐 지나갈 법한 일상의 모습에 가깝다. 그러나 정진운 작가의 카메라에 담긴 순간들은 하나의 독립된 풍경이면서 동시에 아직 시작되지 않은 이야기의 배경처럼 다가온다.
전시 제목인 〈당신이 좋아했던 영화의 첫 장면은?〉은 이러한 사진의 성격을 압축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는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앞으로 어떤 사건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한 장면이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이번 전시의 사진 역시 완성된 서사를 제시하기보다 관객이 사진 너머의 이야기를 떠올리도록 여백을 남긴다.
사진에 더해진 짧은 문장, 이야기를 여는 또 하나의 장치
작품에 붙은 짧은 문장도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정진운 작가는 촬영 장소나 피사체를 설명하는 일반적인 제목 대신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나 대화의 한 토막처럼 읽히는 문장을 사진과 함께 배치했다. 사랑과 그리움, 관계와 가족, 지나간 시간과 함께하고 싶은 삶에 관한 감정이 사진에 더해진다.
숲과 산 사이에 자리한 집 한 채를 촬영한 작품의 제목은 ‘할머니 보고싶어요.’이다. 사진 속에는 할머니도 가족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장을 읽는 순간 풍경에는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기억과 관계가 생겨난다.
다른 작품에서도 이러한 방식은 이어진다. 비 내리는 거리와 음식, 건물과 꽃, 사람과 자연을 담은 사진에 짧은 문장이 더해지면서 사진 속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 사람과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사진과 문장 사이에 여백을 남기고, 관객이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그 다음 장면을 상상하도록 한다.
현실에서 발견한 영화 같은 장면
이번 전시에 소개된 안현정 미술평론가는 정진운의 작업을 ‘시나리오적 사진(scenario photography)’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특히 현실 속에서 영화적인 장면을 찾아내는 ‘발견된 세트(found set)’라는 개념을 통해 그의 사진을 설명한다.
실제 작품에서도 별도의 세트를 만들어 장면을 연출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현실에서 영화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빛과 그림자가 만든 공간, 안개와 파도가 뒤섞인 자연, 비어 있는 자리와 길을 걷는 사람 등 평범하게 지나칠 수 있는 현실의 순간들이 카메라 안에서 하나의 장면으로 바뀐다.
이번 전시에서는 ‘무엇을 찍었는가’ 못지않게 ‘어떤 순간을 발견하고 어떻게 바라보았는가’가 중요하다.
가수·배우 넘어 사진작가로 이어온 작업
정진운 작가는 2023년 4월 첫 사진전 〈Progress or Regress〉를 열며 사진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국내외에서 마주한 삶의 풍경을 기록하며 빛과 길, 시간이 만들어내는 순간에 주목했다.
같은 해 부산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 〈COMPASS〉에서는 세계 여러 지역을 다니며 기록한 사진 22점을 선보였다.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 속에서 자신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을 사진으로 풀어냈다.
2026년 3월 열린 〈The Instant: Fireworks Bloom〉에서는 순간을 포착한 뒤 이미지를 분절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업의 범위를 넓혔다.
이번 〈당신이 좋아했던 영화의 첫 장면은?〉은 그동안 사진을 통해 지속적으로 다뤄온 순간과 시선의 연장선에 있다. 여기에 짧은 문장과 서사적 요소를 더해 관객이 사진 이후의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작품들의 배경은 미국 오리건이다. 포틀랜드의 도시 풍경부터 태평양 연안과 숲 등 서로 다른 공간을 이동하며 만난 장면들은 그의 시선을 거치면서 저마다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는 하나의 장면이 된다.
같은 사진을 보더라도 관객이 떠올리는 다음 이야기는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숲속의 집에서 가족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비 내리는 거리에서 함께 걸었던 사람을 기억할 수 있다.
작가가 발견한 하나의 순간이 관객의 경험과 만나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당신이 좋아했던 영화의 첫 장면은?〉이라는 질문은 사진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작가는 한 장면을 보여주지만 그 다음 장면까지 정해놓지는 않는다. 이어질 이야기는 사진 앞에 선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당신이 좋아했던 영화의 첫 장면은?’
전시가 던지는 이 질문은 영화에 대한 기억만을 묻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삶'이라는 각자의 영화 속에서 모두가 주인공으로 살아오면서 마주한 마음속에 오래 남은 자신의 한 장면은 무엇인지, 사진 앞에서 다시 떠올려보게 한다.
정진운 사진전 〈당신이 좋아했던 영화의 첫 장면은?〉은 9월 20일까지 서울 성동구 파사드 서울숲에서 만날 수 있다. 매주 월·화요일은 휴관하며 수~금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 토·일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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