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칼럼] ‘리좀(Rhizome)’과 생성형 사회
리좀(Rhizome)은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가 《천 개의 고원(Mille Plateaux)》(1980)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전통적 위계질서에 반대되는 비위계적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리좀은 시작도 끝도 없고, 상/하의 위계질서도 존재하지 않으며, 우열도 가릴 수 없다. 들뢰즈와 카타리는 현대사회의 수목 구조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해체된 세상을 리좀으로 연결하는 노마드적 시선을 제시했다.
리좀은 땅속줄기를 뜻하는 말로 잔디의 뿌리에서 길게 연결된 줄기가 서로 연결되어 구성된 것을 말한다. 리좀은 세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객체들이 고원(Plateau)과 연결되어 하나의 리좀을 형성한다. 고원(Plateau)은 비교적 평탄한 땅의 고지대를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되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고원의 연결에 따라 서로의 정체성을 달리하며 연결접속의 반복을 통해 세계를 형성한다.
서양 철학은 수목 구조를 모델로 삼아 왔다. 수목 구조란? 뿌리(근본) → 줄기(체계) → 가지(분류)로 이어지는 위계적 질서로 2,500년 동안 서양 사고의 기본모델이었다. 수목 구조는 중심이 존재하며, 선형적이고 질서적인 사고방식을 중시한다. 하지만 리좀(Rhizome)은 비위계적, 탈중심적, 다원적, 비선형적 사고를 의미한다. 리좀처럼 연결된 사회는 중심 없이 네트워크처럼 연결되어 비선형적 관계를 형성한다. 리좀의 비선형성은 땅속에 묻혀 있는 구근식물의 뿌리줄기처럼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연결되며, 분절되더라도 또다시 새로운 모형으로 결합, 생성된다.
이러한 리좀의 특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탈중심(Decentralization)적이다.
리좀은 탈중심적이다. 즉, 하나의 중심이 존재하지 않으며, 어디서든 출발하고 어디로든 연결될 수 있는 구조이다. 특정한 권위나 핵심 개념에 종속되지 않고 중심이 없다. 모든 요소는 수평적으로 연결되며 비위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다양한 경로와 방식으로 확산되어 유동적이며 다원적이다. 서로의 객체는 끊어져도 다시 연결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리좀이 탈중심적이라는 것은 고정된 중심 없이 자유롭게 연결되고 확장되기 때문이다.
탈중심적 리좀 개념은 디지털 시대의 사회구조를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이다. 과거 수목 구조 체계는 상/하의 관계가 명확하지만 리좀 구조는 수직적 위계보다 수평적 관계를 중시며 탈중심적이다.
리좀의 탈중심성과 국가의 정치적 연관성은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에서 벗어나 지방 분권, 수평적 거버넌스, 시민 참여형 민주주의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경제적 탈중심성은 대기업 중심의 독점 경제에서 벗어나 공유경제, 분산형 경제시스템을 통해 다양하게 확산될 수 있다. 특히 블록체인과 지역화폐 등이 가능하다. 산업적 탈중심성은 전통적 대량 생산 체제에서 벗어나 네트워크 기반의 창조 산업, 스타트업, 탈중앙화된 협업 구조로 전환할 수 있다. 즉, 리좀적 탈중심성은 기존의 위계적이고 중앙집중적인 체계를 해체하고, 분산·연결·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유동적이고 창조적인 사회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둘째, 비선형(Nonlinear)적 구조이다.
리좀은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고 비선형 구조(NonLinear)를 가지고 있다. 비선형 구조는 선형 구조와 달리 여러 개의 자료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구조이다. 선형 구조(Linear Structure)는 A-B-C처럼 순차적으로 진행되며 한 방향을 향한다. 특히 시간 순서에 따른 이야기나 계보, 명령체계를 가진다. 하지만 비선형 구조(Nonlinear Structure)는 일정한 순서나 방향 없이 다중적인 방식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의미한다. 특히 인터넷에서 웹페이지는 하나의 경로가 아닌 다양한 링크를 통해 이동 가능하다. 하이퍼텍스트처럼 문서를 선형적으로 읽을 필요 없이 원하는 정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비선형 구조에서는 특정한 먹이사슬이 아니라 다층적 상호작용에 의해 생태계가 형성된다. 따라서 리좀이 비선형 구조인 것은 위계 없이 다양한 개념들이 서로 연결되어 발전하기 때문이다.
리좀의 비선형성과 국가의 정치적 연관성은 단일한 권력 계층이 아니라,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이해관계가 공존하는 네트워크형 정치 구조를 실현할 수 있다. 즉, 직접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 경제적 비선형성은 일방향적 성장 모델이 아닌, 다양한 경로와 방식으로 발전하는 분산형 경제로 발전할 수 있다. 즉, 플랫폼 경제, 디지털 자산, P2P 금융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산업의 비선형성은 기존의 전통적 생산 방식에서 벗어나, 융합적·협업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유기적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즉, 스마트 제조, 공유경제, 개방형 혁신을 통해 비선형적 경제 체계를 개편할 수 있다.
셋째, 다양체(Multiplicity)적 구조이다.
리좀은 고정된 중심이 없고 하나의 핵심이나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구조이다. 특히 비선형적 연결을 통해 다양한 요소가 수평적으로 얽혀 무한한 변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관계와 구조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리좀은 하나의 통일된 개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요소들이 공존하며 단일 실체를 거부하고 다중 실체로 나아간다. 특히 부분이 전체를 대체하지 않고, 각각의 요소가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연결되어 있다. 리좀의 다양체 구조는 단일한 질서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되는 다원적인 관계망을 의미한다.
리좀의 다양체적 국가의 정치적 연관성은 다양한 정치적 의견과 집단이 공존하며, 각각의 집단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복합적 정치 구조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다당제, 시민 단체의 활동, 다양한 의견이 상호작용하는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경제의 다양체적 구조는 중앙 집중화된 경제 모델에서 벗어나, 여러 경제 주체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상호 연결되는 다원적 경제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스타트업, 소규모 기업, 협동조합, 크라우드펀딩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산업부문에서는 기존의 대기업 중심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기업과 산업 분야가 상호 연결되어 발전하는 네트워크형 산업체계를 갖출 수 있다. 특히 협업 경제, 생태계 기반 혁신, 분산형 생산 모델 등의 실현이 가능하다.
넷째, 내재(Immanence)적 구조이다.
리좀의 내재적 구조는 존재의 본질이 아닌,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초월적 존재나 중심적 이념 없이 스스로 존재하며 외부적 원리에 종속되지 않는다. 각각은 자체적으로 의미를 가지고 상호작용하며 구성 요소들이 독립성을 유지하며 연결되어 있다. 특히 외부의 영향이 아니라 내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형되며, 내부에서 변화와 생성이 일어난다. 리좀은 특정한 목적이나 중심이 없이 자율적으로 전개되며 고정된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다. 리좀의 내재적 구조는 외부적 권위나 절대적 기준 없이, 스스로 형성되고 변화하는 개방적 체계를 의미한다.
내재적 국가의 정치적 연관성은 외부의 강제적 권위나 규범 없이, 정치적 변화와 의사결정이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발생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풀뿌리 민주주의, 시민 주도의 정치 참여가 이에 해당한다. 경제에서는 경제적 변화와 혁신이 내부적 동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분산형 경제 시스템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로컬 경제, 자생적 기업, 협동조합 등을 통해 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산업에서는 내부의 관계와 협력을 통해 지속적인 발전과 혁신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개방형 혁신, 창의적인 산업 클러스터, 네트워크 기반 협업 등이 가능하다. 리좀의 내재적 구조는 국가의 정치·경제·산업에서 외부의 강제적 원리 없이 내부의 관계와 동력에 의해 자율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체계를 가질 수 있다.
다섯째,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적 구조이다.
리좀의 탈영토화적 구조는 고정된 틀이나 제한된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기존 경계를 넘어서 확장되는 구조이다. 언제든 새로운 연결과 변화를 만들어내며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다. 기존 수목 구조를 해체하고 자유롭게 연결되며 위계적 질서로 부터 벗어난다. 특정한 장소나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며 새로운 관계와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리좀의 탈영토화는 기존의 경계를 허물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새로운 연결을 창출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리좀의 탈영토화와 정치적 연관성은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에서 벗어나, 지방 분권과 시민 주도의 정치 참여가 강화되며 정치적 경계가 확장될 수 있다. 경제에서는 특정 산업이나 지역에 얽매이지 않고, 글로벌화와 분산형 경제 모델을 통해 경제 체계를 개선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경제와 온라인 플랫폼 등이 확산될 수 있다. 산업에서는 고정된 산업 영역을 넘어, 융합 산업과 국경을 초월한 협업 체계가 구축되면 스타트업, 글로벌 협업 네트워크 등이 활성화될 수 있다.
리좀을 통한 생성형 사회로의 전환은 다음과 같다.
리좀은 초지능화 사회에서 인공지능과 함께 생성형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최고의 전략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첫째, 생성형 사회와 정치
리좀적 사고는 중앙집권적 구조를 해체하고 분산화와 다원주의를 강조하는 특성을 가진다. 초지능화 사회에서, 인공지능의 지원을 받아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의견을 즉시 반영할 수 있는 정치적 구조를 구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을 활용한 시민 참여 플랫폼은 정치적 의사결정을 실시간으로 민주적으로 조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 리좀적 사고는 탈중심적이고 수평적인 정치 구조를 통해, 모든 참여자가 평등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 이와 같은 구조는 직접 민주주의, 지방 분권, 시민 주도 정치의 구현을 가능하게 한다.
둘째, 생성형 사회와 경제
리좀적 사고는 경제적 탈중심화, 분산형 경제 모델을 지향한다. 초지능화 사회에서 인공지능은 경제적 결정들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플랫폼 경제와 공유경제, P2P 금융과 같은 분산된 경제 모델이 효과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 또한,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을 통해 디지털 자산 및 분산형 통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경제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리좀적 사고는 대기업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제 주체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상호작용하고 협력하는 경제 모델을 지향한다. 이는 경제적 다양성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셋째, 생성형 사회와 산업
리좀적 사고는 산업 구조의 탈중심화와 다원화를 강조한다. 초지능화 사회에서 인공지능이 산업 생산을 더 효율적으로 재편성하고, 다양한 산업 분야가 네트워크형 협업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지원한다. 기존의 대기업 중심 대량 생산 체제에서 벗어나, 스타트업과 분산형 생산 시스템이 활성화될 수 있다. 스마트 제조, 디지털 트윈, 3D 프린팅 등을 통해 다양한 산업들이 서로 연계되고 협업하여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리좀적 사고는 산업 내 융합적 협업을 통해 창조적 혁신을 이끌어내는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넷째, 생성형 사회와 복지
리좀적 사고는 인간 중심의 복지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AI 기반의 맞춤형 복지 서비스는 개인의 필요와 요구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I는 건강 데이터를 분석하여 개인별 맞춤형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실시간으로 직업교육과 재취업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리좀적 사고는 분권적 복지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여, 복지 서비스를 각 지역 사회와 개인의 상황에 맞게 제공한다. 또한, 디지털 헬스케어, 온라인 교육 등의 시스템은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서 자율적이고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다섯째, 생성형 사회와 국방
리좀적 사고는 국방의 탈중심화와 네트워크화를 지향한다. 초지능화 사회에서 인공지능이 군사 전략과 전술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최적화할 수 있으며, 이는 기존의 중앙집중적인 군사 전략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 분산형 방위 체계는 특정 지역이나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하고 유기적인 방위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무인 전투 시스템, 드론 및 로봇를 통한 국방은 탈중심적이고 효율적인 국방 시스템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리좀적 사고는 국방의 분산형 협력과 네트워크 기반 방위 시스템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전쟁의 양상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제공할 수 있다.
리좀적 사고는 초지능화 사회에서 인공지능과 함께 생성형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으로 각 분야에서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탈중심화, 비선형적 연결, 다양체적 관계, 내재적 생성의 특성을 활용하여, 정치, 경제, 산업, 복지,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기존의 위계적 구조를 탈피하고 더 유연하고 창조적인 시스템을 만들어갈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은 인간과 기술이 상호작용하며 발전하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