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5-22(목)
 


charly-chaplin-977478_960_720.jpg
▲ 찰리 채플린 조각상 Vevey Switzerland Museum [사진출처 : pixabay]

  

1900년대 초, 사람들은 무성영화 속에서 보디랭귀지로 하나의 예술을 보여준 찰리채플린에 열광했다. 그 시대 힘들었던 시절을 채플린을 통해 위안을 얻었다. 대사를 말로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해하며 웃고 공감한 것이다. 실제로 찰리채플린은 시·청각 복합장애인이었던 미국 여류작가 헬렌 켈러와 수어로 소통하거나 편지를 주고받는 등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헬렌 켈러의 삶이 채플린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농인 역시 무성 세계 속에서 오랫동안 시각 중심의 언어인 수화를 사용하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길거리에서 수화를 하는 사람을 보면 외계인 쳐다보듯 힐끔거리는 게 다반사다. 수어통역사도 텔레비전 화면 한쪽 구석에 동그랗게 처리되어 등장하는 사람일 뿐이다. 왜 수화라는 언어에 대한 인식이 저조한 것일까?

 

1880년 이태리 밀라노에서 개최된 농아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구화주의를 결의한 이후로 농교육 현장에서 차츰 수화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수어가 농아의 구어와 언어 기술의 발달을 저해하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후 많은 농인이 수어를 쓴다는 이유로 차별과 핍박을 받았다.

 

사람들은 청각장애인이 말을 잘하면 일반사회에 빨리 흡수되어 성공의 문이 열린다고 믿었다. 그러나 구화는 어떤 식으로든 농인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장애를 최대한 숨기고 청인과 부대끼며 살며 삶의 피로를 호소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 모양을 읽기 힘들어했고 더욱 위축되어 청인 세계에 완벽하게 편입하지 못했다. 코로나 19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입모양도 읽을 수 없었다.

 

농인들 중 일부는 변화무쌍한 자기 표현력과 분명한 뜻을 알게 하는 '수어'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며 소통 방식과 지식 습득에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면서 농인의 모국어라 할 수 있는 수어로 회귀하는 일이 늘게 되었다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농인은 신체적인 손상으로 동정과 시혜를 받고 돌보아주는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시각적인 다른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사람일 뿐이며, 이런 시각적인 의사소통은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그들만의 생각과 판단, 생활이 있고 청인과 똑같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수어를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손짓이나 제스처로 인식했다. 이렇듯 농인은 수화를 언어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완벽한 이해를 받을 수 없었다.

 

스웨덴은 100년 이상 투쟁한 결과, 일찌감치 수어를 동등한 언어로 인정하고 사용하는 나라이다. 스웨덴 국립농아인협회는 청각장애인의 핸디캡이 듣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농인과 농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TV나 영화 자막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농인과 청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줄여나가기 위해 활발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수어와 농인에 대한 인식이 개방적인 외국에서는 농인이 동등한 권리를 얻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을 많이 한다. 농인 국회의원, 의사, 변호사, 약사로 활동할 수 있게 해서 농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어를 예술적인 관점으로 보고 수어 문학뿐만 아니라 코미디언, 배우로 활동하며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게 한다. 일반학교 외국어 선택과목에도 수어교육을 넣거나 기관 교육을 통해 청인 역시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수어를 배우며 사회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의미 있는 일로 생각한다.

 

나는 19살에 농인의 문화와 언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데, 이를 접하기 전에는 내 정체성을 찾기 힘들었고 장애에 대해 부정적인 편이었다. 하지만 농인의 언어와 문화를 되찾으면서 구화보다 깊은 감정까지 전달할 수 있는 수화가 편하게 느껴졌고 나 자신을 좀 더 깊이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농인이라는 정체성이 확실해져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농문화, 청문화 두 개의 문화를 상호적이고 통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2017한국수화언어기본법 및 농문화지원법이 제정되고 한국수화언어법이 인정되었다.

 

한국수화발전 기본계획안에는 원활한 언어생활을 위한 농인의 수어 능력 향상, 수화 언어 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 마련 및 정비, 수어 지위 향상을 위한 인식 개선 사업, 수어 연구 활성화를 위한 기반 구축 사업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농유아·농학생·농성인을 위한 수화 교육, 수어 통역 개선, 수어 교원 양성 제도 마련, 청인을 위한 수어 교육 지원, 수화 관련 서적 편찬 사업 지원, 수어 및 농문화 보존 및 홍보 사업, 수어연구소 설립 등이다.

 

2022년 현재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이 법안으로 인해 사회적 소수자인 농인에게 농문화 향유권을 돌려줄 수 있고 수화 통역 서비스도 개선되며 수어 사용권과 수어로 교육받을 권리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곳곳에 장애이해 교육이 활성화되어 농인 후배들이 내 아픔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덧붙이는 글 I 노선영 (Roh Sun Young) 

KakaoTalk_20221001_201457210.jpg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으로 글을 쓰고 미디어아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 『보이는 소리 들리는 마음』 『고요 속의 대화』 등을 썼고, 《고요 속의 대화(Whisper in Silence)》(2019), 《같은 사람, 다른 감각》(2020), 《고요 속의 대화(Dialogue in Silence)》(2021) 등 미디어아트 체험형 전시를 총괄 진행했다. 

현재 노선영교육문화연구소 소장으로서 글을 쓰고 강연가로 활동하고 있다

 

태그

전체댓글 1

  • 64700
유재

참좋은 글입니다.
'시각적으로 다른 또하나의 언어'
응원합니다.

댓글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노선영칼럼] 농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