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1-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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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러지가 우주로 전파를 쏘아대는

이 시대에도,

항상 변두리로 변두리로만

내몰리는 삶들이 있으니,

오늘도 그 삶들 몇 서로를 껴안고

문득 지하도에서 잠이 든다.

-‘땅 끝 인생人生’ 중,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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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달레이 가는길 [촬영=윤재훈]

 

랑군(양곤)으로 입국했다. 아웅산 장군이 독립을 쟁취했던 나라, 그의 딸 아웅산 수치가 머물고 있는 나라, 그녀는 노벨 평화상을 받고 선거에 의해 정부도 이양 받았다. 그러나 로힝야 소수민족를 탄압하는데 못 본 척 했고, 결국 군부에 의해 다시 쫒겨났다. 탄압 방관으로 노벨 평화상 박탈 이야기까지 나왔으며 국제 엠네스티 양심 대사상과 광주시에서 선정한 광주 인권상은 철회되었다.

 

군부는 그녀의 죄를 고무줄처럼 늘렸으며 계속 늘어나더니 33년 형까지 올라갔다. 100년을 매긴들, 그 형량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꾼바웅 왕조의 수도였던 <만달레이>,이제 최대 림프의 축제인 띤잔 축제도 마쳤으니 떠나야 할 때가 된 모양이다. 타가웅 왕조 때부터 있었던 이 명절은 바간 왕조 시대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치앙마이에서 일 년 이상 머물렀으니 사람들의 행색도 낯설지 않고 문화도 비슷했지만 그래도 약간은 이질적인 면도 있었다. 수도이지만 <양곤>의 허름한 호텔의 1박은 7달러였으며 오랜 배낭여행자에게도 적당했다. 따로 목욕 시설은 없고 화장실에 샤워기가 하나 달려 있다. 하루종일 걷다보면 금방 땀에 절으니 저녁에 한 바가지 물은 그야말로 너무 고맙다건너편에는 동그란 로타리가 있고 그 가운데 커다란 슐레 파고다가 자리잡고 있다. 하루종일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사람들은 수시로 지나가다가 파고다에 합장을 한다.

 

신과 내가 하나인 나라다.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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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루판의 지하수, 응회암이라 무너지지도 않는다. [촬영=윤재훈]

 

모든 물자가 부족하면 사람들은 스스로 아끼게 된다. 그런데 한국은 그야말로 물자가 넘쳐난다. 그래도 모든 것이 불만 투성이다. 그래서 젋은 날 청소년이나 부모들에게 배낭여행을 한 번 꼭 해보라고 하고 싶다.

 

그야말로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학교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 스스로 어려움과 부족함, 인간 관계의 중요함과 배려를 스스로 터득한다. 그야말로 산교육의 장이다. 세계 여행에 나서다 보면 20대 초반의 유럽의 청년들을 수시로 만날 수 있다. 그 아이들에게 여행은 그야말로 하나의 정규 과정인 듯 싶었다.

 

심지어 자전거를 타고 높은 산과 사막을 건너오는 가열찬 청년들도 가끔 만난다. 60대 초반까지 그런 꿈을 나도 자주 꾸었다. 결국은 우리나라 자전거 전국 일주로 마음을 식히고 있는 중이다.

 

환경은 저절로 따라오는 덤이다. 모든 것이 부족하다 보니 아낄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지구촌인 것이다. 앞 마당에서 펄럭거리는 나비의 날개짓이 태평양에서는 거대한 쓰나미로 밀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큰 즐거움과 행복함을 안겨주는 자연에 대한 고마움이 스스로에게 밀려오며, 아끼고, 오염시키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문제아가 아니라 자기 개성이 뚜렷한 아이일 것이다.” 주변의 대안학교에서 일 년여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확연하게 달라져, 자신의 미래를 단단하게 준비하여 온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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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점상들,안쓰러운표정으로 바라보는부인 [촬영=윤재훈]

 

도시는 허름하고 호텔 문 밖을 막 나서며 어디를 가나 노점이 즐비하다. 오직 광주리 하나만 펼쳐 놓고 억척의 어머니들은 큰 소리로 손님들을 부른다. 우리도 그랬다. 불과 40년도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너무 잘 산다. 핵가족화 되어가고, 불만이 넘쳐나며, 로봇이 우리의 일상을 점유해가고, 궁금한 것은 스마트 폰 안에 다 있다. AI가 점점 인간의 고유영역까지 침범하여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성인병은 늘어가고 대다수 국민이 암에 걸리며, 유해 사이트들만 늘어난다. 젊은이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무작위 사람들의 나체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는 도덕 무감각 사태에 이른 것도 같다매일 세계 곳곳에서 돈을 갈취하려는 스팸 문자들이 들어오고, 심지어 다른 사람 알몸에 얼굴을 갖다 붙이는 파렴치한들까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모든 것이 어른들의 책임이고 부모들의 책임이며, 학교가 제 본분을 못하는 까닭이다도덕이나 역사, 국어 같은 기본 인문학 교육이 점점 없어져 가고, 명문 학교에 돈 많은 부자, 검찰이나 의사 같은 이런 권력 집단으로 쏠림현상이 너무나 가열차다시를 되내이며 들길을 걸어가던 그런 청춘남녀들이 보이지 않는 시대다. 머리 속이 온통 돈으로만 가득 채워진 졸부들일수록 이런 양상이 더욱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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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 열차 안 풍경 [촬영=윤재훈]

 

완행열차를 타고 <바고>로 간다. 7, 80년대 초까지 우리 나라에서도 운행되던 통일호, 아니 비들기호 쯤이나 될까. 아니, 그보다 더 못할까. 창문은 다 위로 올려져있었으며 시장판 같은 시끄러운 소리와 섞여 간이역마다 열차는 시름없이 멈췄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우루루 오른다. 광주리를 이고 오르는 아주머니들도 더러 있다. 그래도 담배를 피우며 바닥에 가래침을 뱉고 고래고래 악을 쓰던, 물건을 사면 잔돈을 집어 던지던, 2011년의 중국 여행보다는 낫다.

 

나는 땅 끝(土末)에서 태어났다.
차를 타면 항상 시발역에서 종착역까지 달려갔다.
남쪽바다 끝에서 완행버스를 타면 비포장 길을 따라 

장흥, 강진, 보성, 벌교, 순천만, 유배지의 땅들을 샅샅히 훓고

다시 바닷가 마을 여수에 닿았다.

 

그 길에서 고산(孤山)을 만나고, 다산(茶山)을 만나며, 초의와 영랑도 만났다.
선인들의 깊은 고뇌에 찬 얼굴도 보았으며

그 사이 버스를 타고 내리던 

수많은 남도의 주름 패인 얼굴들도 보았다.

 

돌고개 따라 펼쳐지던 누런 들판에서 가끔씩 튀던 메뚜기를 보았으며

허기지게 달려가던 또랑물도 역력하다.

천관산 아래로 내달리던 버스에서 본 남도의 모랭이, 모랭이들.
지금도 순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 후 도시로 나와, 다시 기차를 타도 

여전히 시발지에서 종착지까지 줄기차게 달려갔다.
하룻밤을 샌 기차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면 

긴 기적소리를 동백꽃처럼 역두(驛頭)에 뿌렸다.

 

오동도 절벽 위 어디쯤

위태로이 걸린 회집에서 친구와 소주잔을 부딪치며 회를 씹던

설익은 회포들이 문득 떠올랐다

 

밖에서 울어 애이던 파도 소리와 갈매기들의 소리도.

기찻칸에서 만났던 아줌마들의 낯선 음성

한밭 어디쯤에서 새벽시장을 나가기 위해 굽은 허리로 올리던 

밤색 광주리에 대한 기억과 그들의 억센 손가락 마디가 보인다.

 

기나긴 열차 시간에 의자 사이로 기어 들어가 자거나

기차의 선반 위에서 그들의 구수한 사투리에 잠을 깨면

기차는 목쉰 소리를 내면 만경평야나 충청도의 어디쯤을 달리고 있었다.

이제 나는 더 변방으로 밀려 났다.
어제 밤 잠 속에서 새 한 마리 울고 가는 것을 보았다.

 철도원의 목쉰 소리가 플랫포옴의 천장을 타고 울려온다

서울역의 대합실은 언제나 만원이다

수도의 종착역에서도 내려, 다시금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더 달려야만 

내가 사는 곳이 나온다.

 

테크놀러지가 우주로 전파를 쏘아대는 이 시대에도

항상 변두리로 변두리로만 내몰리는 삶들이 있으니

오늘도 그 삶들 몇 서로를 껴안고 문득 지하차도에서 잠이 든다.

 

찬송가를 틀고 노래를 부르면 지나가는 맹인의 낯선 삶도

저 혼자 열차 칸을 맴돌다가 빠져 나간다.

 

오늘 아침 산길을 내려오다, 문득 다람쥐 한 마리를 만났다

내 앞으로 지나가는 어린 시절

이 길을 내려가 오늘도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켜고 달려온

저 지하철을 탈 것이다.

 

-‘땅 끝 인생人生’,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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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 산속에 사는 부모가 한국 불고기 식당에 맡긴 아이들 [촬영=윤재훈]

  

한국인 남성과 미얀마 부인이 운영하는 만달레이 불고기 식당, 고향의 음식이 그리워서일까, 거의 매일 가서 먹었다. 딸도 하나 있었는데, 한국어를 참 잘하고 상냥하다. 이층에 내실까지 있어 제법 규모가 있다. 조용히 앉아 밥 먹기가 참 좋다

 

길 건너에는 샘이 있으며 해 질 무렵이며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세숫대야 같은 곳에 빨래를 담아와 목욕을 하고 옷들을 빤다참 아득한 풍경이다. 한국에서는 사라진 그리운 모습이다. 아직도 우리의 옛 시절이 못내 그립거나, 아빠 엄마의 어린 시절을 궁금해하는 자녀가 있다면, 동남아 가면 다 있다.

 

오늘은 키가 크고 가무잡잡한 피부에 예쁘게 생긴 아마다푸라에 사는 소녀를 만나고 싶다. 부모님과 세 자매가 살며 미얀마 외국어 학교 한국학과를 다니는 그녀.

 

그녀의 부모는 오토바이 하나에 의지하여 세계적인 옥 생산지인 미얀마옥을 들고 다니며 팔아, 금반지로 맞추어 같다 주는 일로 세 자매를 대학까지 보냈다 

 

 

덧붙이는 글 I 자재自在


자재는 자유자재(自由自在)의 자재이다. “환경이 아프면, 내 몸도 아프다”라는 마음으로 30여 년 가까이 일체의 세제와 퐁퐁를 쓰지 않고, 일회용품과 비닐, 비누나 치약 등도 가능한 쓰지 않는다. 물수건이나 휴지 대신 손수건을 쓰고 겨울에는 내복을 입고 실내 온도를 낮춘다. 자가용은 없으며 가까운 곳은 자전거로 먼 곳은 대중교통으로 다니면서, 나의 화석 발자국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홍익대학교를 비롯한 몇 개의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한강 1,300리, 섬진강 530리, 한탄강, 금강, 임진강과 폐사지 등을 걸었으며, 우리나라 해안선만 따라 자전거로 80일 동안 5830km를 순례했다. 다시 세계가 궁금해져 5년 동안 ‘대상(隊商)들의 꿈의 도로’인 실크로드를 따라, 세계오지 배낭순례를 했다. 


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해양 문학상, 전국 문화원 연합회 논문공모 우수상, 시흥 문학상 등 몇 개의 상을 받았다. 2020년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아지트갤러리‘국제 칼렌다 사진전’에 참여하였다. 2016년 ‘평화, 환경, 휴머니즘 국제 영상제’에 <초인종 속 딱새의 순산, 그 50일의 기록>이라는 작품으로, '환경부 장관 대상'을 수상했다. 평생 다양한 기관에서 무료봉사를 해오고 있으며, 연극에도 관심이 많아 십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또, 노원, 영등포 50+센터 등에서 2년여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내 마음에 안식처 서울역사여행’등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