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5-2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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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Pinterest

                                                                                   

 사회활동이 왕성한 사람을 소개하는 주간지, 월간지 형태의 출간물들이 있다. 그 중 한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대화 내용을 요약해보면, 우수한 인재로 평가할만한 활동을 충분히 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올해의 인물로 소개하고 상패를 수여하겠다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운전중이던 나는, 눈앞에 쭉 뻗어있는 이 고속도로가 혹시 내 미래의 모습인건가 하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훈훈하게 부풀어 올랐다. 본디, 상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잘 했을 때 그에 대한 인정과 보상으로 받는 것이 아니던가. 맨 땅에 헤딩하며 일궈온 지난 노력의 나날들이 이런 방식으로도 인정을 받는구나 생각하니 기뻤다. 선정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훈훈한 마음을 나누려는 찰나 희한한 말이 시작됐다.

 

비용은 30만원입니다.”

 

그리고 이어 설명하기를 모 협회의 여성 대표도 이 방식을 마케팅에 활용해 인지도도 높이고 사업도 번성했으니, 그 여성대표를 롤 모델로 하다보면 , 너두 할 수 있어.’ 뭐 대충 그런 말이었다돈 주고 사는 인증이라니... 더 이상 매력적이지도 않고, 의미도 없어서 거절했다.

 

전화를 끊고 여러 생각과 질문이 스쳐갔다. 이런 비슷한 종류의 우수함을 부여하는 상패가 돈으로 사고 파는 품목이었다는 것에 대한 충격, 진짜 우수한 인물이 과연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 어디까지가 이런 방식의 마케팅이고 어디까지가 과연 진짜일까에 대한 의문, 이 시대에 이라는 개념은 이래서 더욱 중요하다는 진실, 이런 시스템으로 인해 실력으로 인정을 받고도 오해를 받는 피해자도 발생할 것 같은 걱정, 그리고 내가 정말 우수한 인물이었다면 과연 내게 돈을 요구했을까?’라는 원초적 질문, 나는 더 노력해야 하는 애매한 지점에 있다는 현실 자각. 앞으로는 나의 우수함을 돈으로 흥정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원대한 포부 등등 ...

 

몇 달 후, SNS를 하던 중에 내가 거절했던 그 상패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도록 인증샷을 올린 사람들의 포스팅이 보였다. 000으로부터 이런 사람으로 선정되어 기쁘다, 감사하다, 영광(?)이라는 내용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대단하다, 자랑스럽다.’등의 축하 댓글을 남겼다. 그 어떤 누구도 사실은 내돈내산 (내 돈 주고 내가 산)이라고 밝히지 않았다. 이로써 상패는 원래의 목적대로 구매자 역량의 우수함과 인지도를 증명하는 근거가 되었다.

 

솔직하고 디테일한 상품후기가 후기로 인정받는 시대에 #인증패30만원에득템 #합리적쇼핑 #가성비템 이라고 남기는 것이 적합한 리뷰겠지만, 누가 과연 속을 훤히 내다 비치겠는가.

 

속이 훤히 보이도록 맑은 상태를 투명하다고 말한다. 청정 그 자체의 맑은 물을 마주하는 순간처럼, 투명함이란 얼마나 숭고하고 귀한 가치인가. 그런데 투명하게 살고자하면, 그렇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속삭임이 들려온다. 원래 다들 그렇게 한다는 인식도 가득하다. 불투명함으로 부족하고 불편한 진실은 덮어 보호받고, 적당히 위장할 줄도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모양빠지는 위장술이 안 통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세상이 공정하고 투명한 가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큰 자본들은 투명한 경영을 하는 기업에게만 투자하겠다고 선포했고, 세계로 뻗어진 통신망은 한 개인 뿐 아니라 집단의 위장막을 걷어내는 촘촘한 필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니 생각해보자.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인가, 위장술로 부풀린 진실이 폭로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인가.

 

진정성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개인도, 기업도 진정성의 시대를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이미지라는 허상을 쫓는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러니 껍데기는 가라고 외친 신동엽 시인의 절규를 가슴에 새기며 지금은 알맹이가 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다. 포장을 거창하게 하는 노력이 아닌 진짜 알곡으로 생존하려는 노력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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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정 칼럼] 우수함을 돈 주고 사는 시대가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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